1. 세간에는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1987년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가도록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민주통합당 이석현 의원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자신이 주도했다며 역사의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의원은 1986~1987년 개헌논의가 한창일 때 자신이 직선제개헌 전문위원이었다고 밝히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은 야당에서 만들어 놓은 (경제민주화가 포함된) 헌법 초안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자기가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 왜곡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2. 헌법상 경제민주화 조항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 헌법상 경제민주화 조항은 헌법 제119조 2항을 말하는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3. 1987년 당시 야당 간사 역할을 했던 박찬종 전 의원도 이 의원과 비슷한 증언을 했습니다.

⇨ 박찬종 전 의원도 최근 <신동아>(2012년 9월호)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진술입니다.

4.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6~1987년 개헌국면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 과거 신문들을 검색해 보면,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 헌법 조항과 관련하여 처음 신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6년 7월 2일 <경향신문>입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그는 이날 민정당 헌법개정특위 전체회의에서 “비대해진 경제력의 횡포를 방지하고 자유경제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며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경제에 관한 규제 조항이 삽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4일이 지난 7월 26일에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의 말을 합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등 경제에 관한 규제조항을 헌법에 명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동아일보 7월 26일)는 것입니다. 또 그는 며칠 뒤 “헌법에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이냐는 방향만 그릴 것”이라며, “하위법을 대폭 손질하는 편이 낫다”(경향신문 7월 29일)고 말했습니다.

5. 당시 여야 정당 지도부는 경제민주화 헌법 조항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 <매일경제신문>은 1986년 6월 10일 경제민주화에 대한 3당 대표의 견해를 기사화했습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정치적, 사회적 분야의 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시대적 요청이 바로 경제의 민주화”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개정헌법에) 주식분산과 종업원 지주제, 종업원의 경영참여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에는 지금의 헌법 제119조 2항보다 더 적극적인 경제민주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6. 당시 김종인 위원장은 종업원의 경영참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나요?

⇨ 당시에 그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근로자의 경영참여권이나 이익균점권을 헌법에 직접 명기한 나라는 없다”(경향신문, 2007년 7월 23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7. 어쨌든 김종인 위원장이 당시 민정당의 보수파들과 재벌들을 설득해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가도록 애쓴 것은 사실 아닐까요?

⇨ 김종인 위원장의 노력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1987년 헌법에서 빠질 뻔한 경제민주화 조항을 그가 살려놓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6.29 선언이 있기 1년 전인 1986년 6월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정치, 사회의 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시대적 요청이 경제의 민주화”라고 강조할 정도였다면, 김종인 위원장의 노력은 다 차려진 밥상을 방안에 들고 온 정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개헌 분위기는 훨씬 더 좋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8. 최근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는 야당들의 것과 어떤 점들이 다릅니까?

⇨ 경제민주화의 층위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해관계자자본주의로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근로자 경영참여, 다른 하나는 대기업들의 과도한 중소기업 시장잠식을 막기 위한 경제력 남용 방지,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대기업 조세부담 확대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두 번째 층위에는 관심이 많으나 첫 번째와 세 번째 층위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9. 세 가지 층위와 관련하여 1987년 7월 민정당과 민주당은 어떤 태도를 보였나요?

⇨ 첫째, 근로자 경영참여에 대해서는 1986년 신민당은 관심을 보였으나, 1987년 신민당의 후신인 민주당과 민정당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둘째, 경제력 남용 방지에 대해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야 정당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 독과점과 경제력 남용이 가져온 소득불균형 시정에 대해서는 1987년 민주당이 헌법에 명기하기를 희망했으나, 민정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금도 법인세 등 기업들의 세금 인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10. 김종인 위원장은 "세금을 통해서는 탐욕을 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그 발언은 올해 연초에 민주통합당이 '재벌세'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들과 만나 한 말입니다. 그는 이 때 "특정 계층에 대한 세금 부과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세금을 통해서는 탐욕을 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1.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OECD 평균에 비해 과도하게 많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GDP 대비 법인세액 비율은 4.2%(2008)로 OECD 평균(3.5%)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각국의 기업들이 법인세만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들은 기업부담 사회보장세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2008년 기준 OECD 회원국들의 기업부담 사회보장세 비율은 5.4%로 2.6%인 우리나라의 두 배에 달합니다. 두 가지를 합쳐서 이것을 기업부담 직접세라 부른다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업부담 직접세 비율은 6.8%로 OECD 회원국 평균 8.9%보다 2.1% 포인트 낮은 수준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부담 사회보장세를 높이는 것이 시급합니다. 다만 이것만 대폭 상향할 경우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지므로 법인세 부담률과 기업부담 사회보장세 부담률을 동시에 점진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12. 김종인 위원장이 추구하는 경제민주화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요?

⇨ 근로자 경영참여나 대기업들의 세금 인상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기업 경제력 남용 방지를 통한 중소기업 보호는 경제민주화의 필요조건임은 분명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근로자의 경영참여에 참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주주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제도가 무용지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또 법인세 등 대기업들의 세금 인상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 경제가 중소기업 보호와 대기업들 세금 인상을 별개의 과제로 인식하거나 선후관계로 인식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는 병행과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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