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에게 2천만 원의 가욋돈이 생겼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여행을 가거나 새 차, 새 옷, 새 가구 등을 구입할 것이다. 골칫거리였던 빚을 갚는 데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빚을 갚는 만큼 미래의 소비는 늘어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소비가 늘어나면 수요도 늘어난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2천만 원의 가욋돈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너무 적은가? 그러면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 때문에 200억 원이 생겼다고 하자. 그는 무엇을 할까. 아무것도 안 한다. 담당 회계사에게 회계 처리 하라고 당부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증가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은행 잔고밖에 없다. 이게 바로 부자에게 가욋돈이 생기는 것과 여러분이나 나와 같은 사람에게 생기는 것의 차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적 라디오 진행자로 꼽히는 톰 하트만의 2006년 작 <중산층은 응답하라>가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톰 하트만이 머리글에서 인용한 사례를 조금만 바꿔봤다. 서민에게 생긴 2만 달러의 가욋돈을 2천만 원으로, 조지 부시의 감세 정책 덕분에 빌 게이츠에게 생긴 2000만 달러의 가욋돈을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으로 이건희 회장에게 생긴 200억 원의 가욋돈으로.

톰 하트만은 이런 사례를 두고 “경제 상식 수준의 이야기”라며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소득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는 부유해지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1981년 집권한 레이건은 이른바 트리클다운 경제학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부자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경제와 사회 구조 전반을 재편하면 그 부가 흘러넘쳐 노동자에게로 서서히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부자 감세를 실시했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철폐했다.

동시에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노동조합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그 부가 흘러내린 적은 결코 없었다. 소득을 창출하기는커녕 미국을 역사상 유례없는 재정 적자의 늪에 빠뜨렸다. 정부는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사회 안전망을 파괴했다. 기업 권력이 언론 매체를 장악한 탓에 이 같은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드물었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있는 80년대 미국의 모습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중산층이 중흥했던 시기로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집권했던 시기를 꼽았다. 토머스 제퍼슨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독립선언서에 넣었고,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추진해 중산층을 재건했다. 이 때부터 40년 가까이 중산층의 황금시대가 계속됐다. 하지만 1980년대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조지프 쿠어스(쿠어스 맥주의 창립자) 등의 부유층과 거대 기업에게서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던 로널드 레이건은 홍보 전문가를 동원해 세금은 나쁜 것이고 정부도 좋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 레이건은 또 1980년 이래로 기업 권력의 공세를 저지해 왔던 셔면독점금지법의 효력을 정치시켜 언론 시장에 거대 독점 매체가 등장하는 바탕을 마련했다.”

이렇게 생긴 언론 재벌이 전국 단위로 창간한 신문들은 하나같이 노동 문제를 다루는 지면을 빼고 기업 섹션으로 채웠다. 이후 미국에서는 노동 문제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저자는 ‘작은 정부’란 보수 사기꾼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도입했던 “정부는 반드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여야 한다”는 핵심 원리 대신, 보수 사기꾼들이 말하는 ‘작은 정부’는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정부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수 사기꾼들의 속마음은 다음과 같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국민이 아닌 기업을 위해 일하게 만들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고 그 비용은 국민이 부담하게 만들자. 더불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업을 벌일지, 직원에게 임금을 얼마나 줄 것인지 기업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자.’

저자는 민주주의와 중산층을 ‘DNA의 두 가닥 나선’에 비교했다. 어느 한 가닥을 파괴하면 다른 가닥도 살아남지 못하듯, 민주주의와 중산층 가운에 어느 한쪽이 파괴되면 다른 한쪽도 파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보수 세력이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있는 지금 상황을 나 몰라라 하고 지켜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미제’의 상징이었던 리바이스 청바지는 2004년부터 더 이상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고 있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렸던 리바이스 생산직 노동자는 ‘어디서 다시 이런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산층이었던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이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으로, 또는 기획파산으로 대규모 정리해고되는 한국의 현실 또한 중산층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중산층은 어떤 조건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 저자는 △정부가 이윤 추구 규칙을 만들어 기업을 규제할 때 △정부가 합리적인 관세·무역 정책으로 국내 일자리를 보호할 때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할 때 △대학 교육에 이르는 교육의 전체 단계에서 공공성을 확대해 사회 이동을 활성화시킬 때 중산층이 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CEO의 평균 연봉은 직원 평균 연봉(2만 7460달러)의 431배에 이른다. 미국 시민단체인 공정경제연대가 발간한 보고서 ‘경영자 과잉 대우 2005’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최저임금이 CEO의 급여만큼 빠르게 상승했더라면 미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5.15달러(2006년 기준)가 아니라 23.03달러가 됐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미국 중산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또 일원화된 건강보험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사회보장제를 더욱 강화하는 데 힘쓰고 질 높은 무상 공교육을 제고해야 한다. 이 때 반드시 짚어 봐야 하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구실이다. 노동조합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을 때 앞서 이야기한 정책들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노동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노동조합 운동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중산층 재건에 가장 핵심이 되는 일”이라며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정치인을 공직에 선출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의 화두는 ‘붕괴된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떠나 경제민주화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분노’의 중심에 선 중산층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몰락하는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 세울 주체는? 바로 그들 스스로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중산층이 응답해야 할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중산층은 응답하라 / 톰 하트만 지음 / 한상연 옮김 / 부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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