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없는 땅’

아침에 일어나 우연히 펼친 시가 ‘설정식문학전집’의 설정식의 시, ‘태양 없는 땅’이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시인 설정식(1912~1953)은 이 땅을 ‘태양 없는 땅’이라고 제목을 붙인 시를 썼다. 이승만 독재에 반대한 시인은 월북 이후 1953년 임화 등과 함께 ‘미제스파이’라는 죄명으로 김일성에 의해 처형되면서 민족주의자인 시인의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곡식이 익어도 익어도 쓸데없는 땅/ 모든 인민이 등을 대고 돌아선 땅/ 물줄기 도리혀 우리들 입술 찾아 흐르기도 하고/ 흘러도 그러나/ 벌서 모래 가득찬 아가리/ 황토에 널리기도 한 땅/ 다 못 아는 것은 땅은 영원히 우리들의 것이기/ 숲을 찾는 바람같이 달려갈 역사이기/ 백번 천번 어미네 품속같은 흙/ 갈어 갈어 창끝 번득이듯/ 보삽 어루만지는/ 손가락 매듭만이 굵어진 것을/ 황소 소 너는/ 언제까지 어질기만 하랴느냐/ 가까이 가까이 서로 방불(彷彿)한 그림자들 한군데로/ 남산 어느 고을에도 있는 남산으로/ 바람은 비바람은 어데든지/ 숲 울성(鬱盛)한 곳으로 ㅤㅁㅗㅎ였다./ 땀을 흘여도 쓸데없는 땅/ 태양 없는 땅/ 너이들 무시무시한 무지(無知) 지긋지긋/ 흰 잇발자국 이문살 멍드른/ 아 소같이 둔하다는 무식한 우리들의 등/ 더운 피 흘린 항거를 위해서는 시월은 오히려/ 서리내리기 조차 주저하였다./
태양 없는 땅/ 굵어진 손매듭 손톱 자국 자국/ 꼬즌 감자눈/ 눈 부릅뜬 황소 뉘 배불리기 위해 아/ 성난 남산숲 어데서나 이는 거센바람 일드시/ 버리고 다러난 창끝 같은 보삽들이 꽂인 대로 길게 길게 도라누은 땅/ 곡식이 익어도 익어도 쓸데없는 땅/ 모든 인민이 등을 대고 돌아선 땅. 

미국 마운트유니언대학과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미국통으로 해방 이후 미군정청 여론국장으로 근무했던 설정식은 해방공간의 정치현실에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자신의 시를 통해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다. 설정식의 조카사위인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그의 작품에서 독립 자주의 민족이념, 자유로운 민주주의, 그리고 그것의 실천을 위한 사상적 순수성을 다짐하는 수사의 강렬함이 두드러진다”고 평했다.

   
 
 

시인의 충정(衷情)은 정녕 남한도 북한도 아닌 비극적인 생의 최후로 마감되고 말 것인가?

박근혜 사과의 이중주(二重奏)

지난 24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16, 유신, 인혁당 사건으로 헌법 가치가 훼손됐다"며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런,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60, 70년대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라는 절대빈곤과 북한의 무력위협에 늘 고통 받고 시달려야 했다"면서 "아버지에겐 무엇보다 경제발전과 국가안보가 가장 시급한 목표였다"면서 다만 그는 "기적적인 성장 뒤편에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는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받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의 사과가 5.16 쿠데타나 유신 등이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고뇌 끝에 내려진 결정이란 입장은 그대로이며 결국 지지율 하락에 떠밀려서 이루어진 ‘사죄’가‘ 아닌 ’사과’였음을 여실하게 드러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곧 박근혜의 ‘대통합’은 대통령 후보로서 캠페인의 일환이자 진정성을 결여한 ‘사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문을 당연하게 지니면서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수많은 의문사는 새로운 민주정권의 의문사진상규명을 통해 그 실체규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과거사 사과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유신체제 피해사례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상식이다. 용서에도 ‘사죄’에도 순서가 있고 기준이 있다. ‘대통합’을 한다고 반민족 반민주세력까지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완용도, 잘못이라곤 전혀 뉘우치지 않는 전두환도, 4대강 살상파괴와 민주주의를 압살한 이명박도 용서할 수 있는 조건은 지금 전혀 아니다.

이 땅의 사람들, 철천지원(徹天之寃)으로부터

하늘에서 사무치도록 큰 원한인 철천지원은 지금 해원을 갈구하고 있다. ‘대통합’이든 상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진실’에서 ‘진실’로부터 비로소 간구(懇求)하지 않는다면 다 헛소리다.
임진년 전쟁에도 6.25전쟁 때도 무탈했던 숭례문의 소실(燒失)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미친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끔찍한 희생은 어쩌자는 것인가?

10.3 개천절 날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는

개천절(開天節)은 대한민국의 국경일의 하나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하늘을 열었다’는 날이다. 이 날 10월 3일(수)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탑골공원 정문 앞(서울 종로구)에서는 서울평화 해원(解寃) 굿이 열린다. ‘서울평화 해원굿 봉행위원회(봉행위원장 김형남 변호사)가 주최하는 이 굿은 ’진도씻김굿‘(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이 중심 굿이 된다. 이승에서 풀지 못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굿인 ’진도씻김굿‘은 춤과 노래로써 신에게 비는 무속의식으로 의상은 상복차림이며 망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망자와 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봉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남 변호사는 “그간 순리와 도리에 어긋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회적 강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치루며 약한 노동자와 시민을 짓밟고 말았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로 말미암은 아픈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하늘이 열린 날을 맞으며 여러 해 동안 알게 모르게 생겨난 생채기를 보듬고, 상처 난 마음들을 치유하기 위해 뜻있는 이들이 함께 모여, 해원의 큰 굿판을 마련하였다. 꽃을 심는 것이 나비를 부르기 위함이라 하였듯이, 오늘 여는 해원굿은 망자와 산 자가 하나되어 그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고, 상생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슬픔이 일어나는 일이 없고, 강자들의 횡포가 더 이상은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번 굿은 단군이 정치적 통치자인 군장(君長)이자 천제를 주관하는 제사장(祭司長)을 겸했다는 측면에서 개천절에 이루어지면서 또 무(巫)란 하늘과 땅을 이어 춤추는 사람의 모습에서 나왔다는 의미에서도 수천 년 전 조상의 문화활동의 원형이 가장 잘 살아있는 행사인 굿을 통해 지금 시간의 슬픔을 시민들이 같이 나누자는 의미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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