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경제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사다. 지난 5월 출시된 기아자동차의 ‘K9’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아차의 플래그쉽 모델인 K9은 출시 첫 달1500대 가량을 판 데 이어 6월에는 1703대를 판매하며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이후 판매량이 꾸준히 하락해 8월에는 800대 수준으로 곤두박질 쳤다. 기아차의 당초 판매 목표치(월 평균 2250대)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서울경제는 기아차의 전략 실패를 판매부진의 원인으로 꼽았다. “명품 소비패턴 잘못 읽었다”는 게 첫 번째 분석이다. K9이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프리미엄 수입차를 겨냥했지만 “6,000만원대 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기아차의 3.3 또는 3.8리터급 대형차(K9)를 선택하는 대신 2리터급 중형 BMW 5시리즈를 선택하는 현상이 엄연히 벌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기아차가 경쟁관계의 ‘타깃’을 잘 못 잡았다는 이야기다.

 
이어 이 신문은 “영업도 K9의 실패를 부른 중대 요소”라고 지적했다. 경차인 ‘모닝’과 ‘레이’ 등이 기아차 승용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프리미엄’ 자동차를 팔기 위한 노하우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는 “수년째 ‘모닝’(경차)을 주력으로 팔다가 누구에게 갑자기 최대 8500만원짜리 차를 팔겠느냐”는 한 기아차 영업사원의 말과 “기아차 영업조직이 프리미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K9 판매에 나선 것으로 본다”는 익명의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의 분석을 전했다.
 
그 밖에도 서울경제는 “전형적인 포지셔닝 실패 사례”라고 지적하는 한편 “K9의 고가격 논란은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점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K9의 ‘실패’는 기아차의 ‘전략 실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24일 아침 배달된 종이신문에는 정 반대의 기사가 실렸다. 17면에 <기아차, K9 띄우기 나섰다>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다. 이에 따르면, K9의 ‘실패’는 “판매부진”이고, 그 이유도 기아차의 전략 실패가 아니라 “자동차 내수시장의 침체 여파” 탓이다. 이 신문은 이어 “기아차의 K9이 국내 대표 프리미엄 승용차라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반전의 시동을 걸었다”고 소개했다. 같은 신문, 같은 기자의 이름이 달린 기사다. 기사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도 똑같다.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는 홍보성 내용 일색이다. 이 신문은 “기아차의 ‘K9 띄우기’ 마케팅은 수입차 판매 1위인 BMW의 중형차 ‘5시리즈’와 비슷한 가격에 대형차 ‘7시리즈’급 상품성을 다시 부각시키면서 수입차 돌풍을 잠재우겠다는 당초의 전략에 집중될 전망”이라며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로 인해 “소비자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앞서 ‘포지셔닝 실패’를 지적했던 대목은 “기아차는 명품전략을 다시 가다듬는다는 계획으로, 대기업 등에 대한 타겟 마케팅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의사와 변호사 등이 리스를 통해 세금 절감 효과와 함께 신차 구매를 노리는 연초가 될 경우 K9 의 진정한 소비자 판단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라는 다소 낯 뜨거운 대목도 새로 포함됐다.
 
이에 대해 서울경제 편집국 산업부 관계자는 24일 “입장이 그 쪽(기아차)에서 전달이 와서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측에서 “‘잘 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기자와의 협의를 거친 것이었느냐는 질문에 “그걸 안 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기아차 홍보 담당 관계자는 관련 사실관계 확인 요청을 거부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아무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희의 의견은 이렇다’고 피력할 수는 있는 것”이라며 “(기사를) 바꿔달라고 바꿔주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기사에는) 저희 회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며 “설명 자료를 드리면 그걸 읽어 본 해당 기자가 판단해서 바뀐 것 아니겠냐”고 에둘러 관련 사실을 시인했다. “특별히 이것만 이렇게 한 게 아니라 어느 기사든 설명드릴 필요가 있는 부분은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24일자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는 애초 온라인에 출고됐던 기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일부 대목에서 기아차의 입장이 반영돼 보강된 수준이 아니라, 전체 기사의 얼개가 달라졌다. 인쇄에 앞서 기사를 새로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적극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든,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했든,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종이신문에서 빠진 기사는 서울경제 홈페이지와 주요 포털에 걸려 있다. 해당 기사에는 기아차의 판매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로 기사 취지에 공감하는 내용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6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종이신문 독자들은 이와는 정 반대의 기사를 읽은 셈이다. ‘두 개의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해당 기자는 “아무것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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