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전북 정읍 제3산업단지 내 LS엠트론 캐스코에서 20대 노동자 두 명이 쇳물을 뒤집어 쓰고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2년 전 환영철강에서 청년 노동자가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재발한 것이다.

19일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211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4대강 건설현장에서 숨진 굴삭기 기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산재사망 노동자는 이보다 더 많다.

2010년 기준 산업재해 사고사망률(업무상사고 기준)은 노동자 10만 명 당 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터키·멕시코에 이어 최하위 수준이다. 산재 사고사망률이 가장 낮은 영국에 비하면 무려 14배나 높은 수치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1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노동건강연대가 주최한 ‘용광로 사망, 막을 수 없었나’ 긴급토론회에서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공인노무사)은 “지난해 법원에서 판결된 주요 산재사망 사건의 형량을 살펴보면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됐다”며 “심지어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사건에도 벌금형이 선고됐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주요 산재 사망사건에 대해 법원이 판결한 7건을 분석한 결과, 건설현장에서 1명이 사망한 사고의 경우 하청 업체 대표자 벌금 150만 원, 원청 업체 건축부장 벌금 250 만원이 전부인 사건(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도 있었다.

창원지법의 또 다른 판결(2011노756)에서는 1명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 하청 현장소장이 벌금 300만 원, 하청회사가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받고, 원청 현장소장과 원청회사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008년 4월부터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시행되고 있는 영국에서는 산재사망을 단순한 과실치사로 보지 않고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의회 지침에 따르면 이 법을 위반했을 경우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2.5%에서 10% 범위 내에서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매출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벌금을 더 내는 구조다. 법을 심각하게 위반했을 경우에는 벌금 상한선이 없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처벌 수위는 똑같다. 2011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8년 사이에 대형 건설사의 중대재해에 대해 원청 또는 하청 업체 사업주를 구속한 사례는 7건에 불과했다. 유성규 편집위원장은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사업체의 대표자 내지 실질적 권한을 보유한 자가 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민 변호사(민변)는 산재사망 책임이 있는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악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해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피해자가 입은 손실 외에 추가적으로 징벌적 의미의 손해배상을 추가해 배상하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민법개정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보다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도입이 현실적으로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에 산업재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가하는 방법이나 산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규율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으로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처벌형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재가 발생했을 때 문제 삼을 수 있는 토대인 안전보건기준이 사각지대 없이 씨줄 날줄처럼 촘촘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며 “검찰에서 기소하려고 해도 규정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과장은 “우리나라의 안전보건기준은 양적으로만 비교했을 때 미국에 비해 10배, 일본에 비해 3배 적다”며 “사업주가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 준수하는 것에 비해 불리하다는 생각을 갖게끔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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