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 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 그 지위만큼 영향력이 큰 것이다. 말과 글의 바른 쓰임새를 늘 궁리하는 필자는 박 후보가 옳지 못한 낱말과 숙어들을 되뇌고, 언론 등은 생각 없이 이를 받아써서 잘못을 더 키워나가는 요즘의 모습을 크게 저어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먼저, ‘금도’라는 말, 그의 발언의 한 조각을 인용한다.(…) 박 전 위원장은 “김 지사는 당원 아니냐. 방송에서 마치 모든 국회의원이 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당원으로서 금도를 넘는 것 아닌가”라며 “이번 금품수수 의혹도 개인 간 사안이지 당에서 헌금을 받은 게 아니지 않냐”고 반박했다.(매경 8월15일)

금도(襟度)는 아량이고 도량이다. ‘남의 허물까지도 품을 수 있는 낙낙한 마음’으로 사람이면 무릇 가져야 할 착한 가치다. 더 뜻을 늘려 보면 관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며 들먹이는 프랑스말 똘레랑스와도 비슷하다.

마지노선 같은, ‘넘으면 안 되는 마지막 한계’를 이르는 부정적인 말이 아닌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 중 일 어느 나라 말에도 없는 禁道라는 허깨비 한자까지 써 가며 ‘금도타령’을 해댄다. 무식하면 약이 없다. 이들이 퍼뜨리는 말글의 오염, 바로잡아야 한다.

다음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로서 말뜻도 맞지 않은 ‘유감’이란 단어다. 정확하지도 적확하지도 않은 말이다. 이 말, 박 후보 두뇌의 언어창고에 너무 오래 더께 되어 엉겼다. 아예 말투로 자리 잡은 듯. 일본 일부 정치꾼들이나 하릴없이 그들의 뜻을 따르는 일본 왕 등이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의 뜻’이라며 한국과 중국에게 하는 투의 얘기다. 무례 무도한 이들.

인용한다.(…) 박 전 위원장은 ‘경선 부정’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는 당원명부 유출 사건에 대해 “참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경위가 어떻게 됐는지 밝혀야 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프레시안 6월22일)

유감(遺憾), ‘내 마음에 좀 찝찝한 게 남았다’는 뜻,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다. 박 후보처럼 ‘국민을 섬기겠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는 이 말 지금 머리에서 지우는 것이 낫다. 혹시라도 건방진 마음이 ‘유감’이란 말로 무심코 삐져나오는 사태를 막아야 할 터다.

사례의 다음은 박 후보가 요즘 습관처럼 쓰는 ‘역사의 판단’이란 말에 대한 지적이다. 그의 가족사 등 사실 관계나 가치판단의 논의는 오롯이 다른 숱한 전문가들의 몫으로 돌린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얘기는 왈가도 왈부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박 씨의 생각이 진하게 묻어나는 그 말의 본디를 도마에 올리자는 것이다.

그의 경험과 성장 배경으로 보아 박 씨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막강한 권위’의 독재가 ‘윤허’(允許)한 전문가들이 만든 보고서 같은 것을 합법적이고 정통적인 ‘역사의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그 시절, 청와대 사는 이에게는 너무 당연했다. 거기에 익숙한 것은 자연스럽다. 같은 말에 대한 그와 ‘우리’의 뜻 새김이 다른 이유겠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대통령이 된 다음) 좋은 팀을 짜서 그 ‘역사의 판단’을 보여주리라 하는 속마음이 그런 용어를 불러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역사의 판단’은 그의 아버지의 ‘작품’ 중 하나인 국민교육헌장같이, 정책적인 의도에 의해 고액의 연구비를 받은 학자들이 짜 맞추는 기획안 따위가 아니다.

‘역사의 판단’은 사람과 시간의 몫이다. 그 논의는 시민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있다. 여러 성향의 언론과 학자들에게도, 독재라면 치를 떠는 이들과 함께 그 가족사를 옹호하는 이들에게까지 역시 활짝 열려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 또한 선거의 한 과정일 터다.

‘나의 성스러운 아버지’와 관련한 부분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박 후보의 뜻이 순진하다 여겨질 만큼 억지스러운 막말로 들리는 까닭이다. 박 후보의 정치도 역시 아버지를 향한 효심이 아닌, 시민을 향한 충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금도’ ‘유감’ 단어의 오용 또는 남용은 무심 무식의 탓이라 치자.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역사의 판단’이란 숙어에서는 시민들을 겁주고 으르는 속뜻이 읽힌다. 장본인들은 물론 아니라고 펄쩍 뛰겠으나, 말과 글의 뜻을 짐작하는 시민들은 그 말 뒤편의 무의식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겠다.

혹 무심의 소치로 언어의 순수성을 망가뜨린 것이라면, 마음 비우고 말과 글을 공부하라. 어쩌면 용서를 받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시민이 세상의 주인임을 몰랐거나 이를 잊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면, 민주주의라는 그 무대는 이미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말뜻도 통하지 못하는 이들은 즉시 내려오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권력 잃은 이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복수혈전’에 측은지심으로 함께 애태우거나, 독재자의 아바타를 원하는 것은 물론 아닐 터다. ‘박근혜의 새로운 리더십’을 내다보는 것이겠다. 세상은 달라졌고, 날마다 변한다. 이치를 벗어난 속셈이 있다면, 말의 쓰임새에서 문득 그렇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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