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방영예정이었던 KBS <추적60분> ‘제미니호’편이 방영 하루 전 사측의 일방 통보로 결방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추적60분> 제작진은 5일 오전 긴급 성명을 내어 “김인규 사장의 한마디에 프로그램이 결방됐다”며 윗선에 의한 압력의혹을 제기했다.

KBS <추적60분> 제작진은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495일째(5일 현재) 피랍된 싱가포르 선박 ‘제미니호’ 소속 한국인 선원 4명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취재에 나섰다. 제작진은 “500일 가까이 해적에게 피랍되어 있는 국민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이들이 아직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다”며 취재 배경을 밝혔다.

제작진은 특히 “이번 (장기피랍) 사태의 원인이 지난해 있었던 ‘아덴만의 여명작전’에 대한 해적들의 보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추적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30일 선원들을 납치한 해적들은 아덴만 작전에서 체포된 해적과의 맞교환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방송은 3일 밤까지만 해도 방영이 확실시 되고 있었다. 제작진은 지난주 토요일(1일) 피랍선원의 가족들을 만난 뒤 방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제작진은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 선원 가족들과 신뢰를 쌓았고 간부진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 문제는 방송에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월요일(3일) 저녁 합의했다”고 밝혔다.

9개월간 이어진 외교통상부의 ‘보도유예’ 요청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사가 이미 취재를 시작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지난주(8월 말)를 기점으로 ‘시사인’, ‘서울경제’, ‘미디어오늘’ 등이 최근 4명의 선원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해 문제가 해소됐다”고 밝혔다. 이미 관련보도가 나가는 상황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단의 ‘보도유예’ 판단을 따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은 갑자기 불방통보를 받았다. 제작진은 “김인규 사장에 의해 (방영이)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김인규 사장은 4일 ‘본인이 듣기에는 선원 가족들 중 방송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다고 들었다’며 사실상 방송 보류를 지시했다”며 “권순범 시사제작국장도 사장의 지시가 불방사유라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방송 일정이 확정되고 제작도 끝난 프로그램의 결방 배경을 두고 ‘아덴만의 여명작전’을 지목했다. 제작진은 “우리는 취재를 통해 ‘아덴만의 여명작전’과 이번 선원 피랍사건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작진은 이러한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질 것을 걱정한 외부의 입김이 회사에 작용한 것이 아닌지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이어 “방송이 확정되자 이를 보류시키기 위해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앞 다투어 회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밝힌 뒤 “‘제미니호’ 편 방송이 나가지 않는다면 회사는 제작진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모두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불방은) 사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선원 가족들이 보낸 내용증명서가 뒤늦게 발견되며 방송이 못 나간 것”이라 해명했다. 배재성 실장에 따르면 선원 가족들은 지난 8월 15일자로 보도유예를 요구하는 문서를 제작진에게 전달했다.

배 실장은 “(문서에는) 방송으로 인해 선원 생사에 영향을 줄 경우 책임을 지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제작진은 내용증명이 온 사실을 보도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뒤 “4일 부랴부랴 법률자문을 받았더니 변호사들이 (방송) 안 된다고 하더라. 제작진이 무리하게 방송을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미니호’편의 연출을 맡은 KBS 강윤기 PD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용증명과 상관없이 가족들이 (방송에) 반대하고 있던 부분은 이미 (보도본부장에게) 보고가 되어있었다”고 반박했다. 강 PD는 이어 “지난 3~4주간의 시간 동안 가족들 대표와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족들에게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15일 내용증명을 보냈던 상황과 현재 상황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제작진은 피랍선원 가족들의 방영 반대가 이번 불방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강윤기 PD는 “4일 오후 권순범 시사제작국장에게 항의방문을 갔을 때 가족 동의를 받아오면 방송이 되는 것이냐 물었더니 (권순범 국장이) 가족의 동의를 받아와도 안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번 방송 불방을 놓고 피랍 가족의 동의여부에만 초점을 맞춰 볼 경우 자칫 사건의 본질을 빗겨나가게 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아덴만 작전 이후 해적 피랍사건이 불거질 경우를 우려한 외교통상부가 보도유예를 원하며 피랍 선원 가족들의 입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강윤기 PD는 “최근 공무원들이 선원 가족들에게 자주 접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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