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실시된 나주 초등생 A양 성폭행 사건 피의자 고아무개씨의 현장검증에 대해 경찰이 실질적인 검증을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언론에 과시하거나 언론을 통한 일종의 공개처형쇼였다는 적나라한 비판의 제기돼 주목된다. 현장검증의 현장 자체가 아수라장이었으며 검증조차 대충 실시됐을 뿐 아니라 검증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범행사실관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지 취재를 했던 박세용 SBS 기자는 3일 오전 SBS 홈페이지 ‘취재파일’에 올린 글에서 고씨의 현장 검증에 대해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고 혹평했다.

취재진만 100명을 넘었을 뿐 아니라 분노한 이웃들의 뜨거운 관심까지 포함돼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는데도 경찰은 폴리스라인도 치지 않아 취재 경쟁에 의해 순식간에 뒤죽박죽 전쟁터가 됐다고 박 기자는 묘사했다.

현장검증 자체에 대해서도 박 기자는 “대충 대충 진행됐다”며 고씨가 범행 직전 들른 PC방엔 주인이 문을 잠그는 바람에 (경찰과 현장검증단이) 들어가지도 못해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A양의 집 앞에서는 “더 대충 했다”며 아이 마네킹과 납치할 때 썼던 이불을 경찰이 들고 뛰어다녔을 정도였다는 것.

박 기자는 성폭행 현장인 다리 밑에서는, 경비 병력도 없어서 말그대로 완전 난장판이 됐다며 영상 취재기자가 밀리고 밀리다 다리를 다쳤고, 카메라 부품은 떨어져 나갔으며, ‘과학수사’한다는 경찰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느라 바빴다고 전했다.

이런 “엉터리 현장 검증”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박 기자는 “경찰의 과욕 때문”이라며 “이런 극악무도한 범인을 잘 잡았다는 걸 과시하려는 욕망”이라고 비판했다.

박 기자는 현장검증을 하는 필요성을 두고 ‘범죄 수사에 필요한 때’라는 형사소송법 215조를 들어 “대략 피의자 자백만 갖고 범죄를 입증하기 어렵고, 결정적인 물증이 필요하다거나, 피의자 진술에 모순이 있다거나 할 때”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피의자가 입고 있던 속옷에서 피해 아동의 혈흔을 발견’하는 등 현장 검증 전날, 이미 피의자의 자백과 ‘결정적인 물증’까지 확보하고 있었으며 피의자 진술도 일관됐을 뿐 아니라 범행 과정도 단순했다고 박 기자는 지목했다. 그는 “자백, 물증, 진술의 일관성, 이 모든 걸 확보해놓고 현장 검증, 왜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박 기자는 이번 현장 검증을 두고 “범죄 수사의 목적과 무관하게, 경찰과 시민과 언론이 합동 진행하는 공개 처형쇼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흉악범이 거치는 한국적 통과의례”라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사법 재판을 받기 전, 피의자를 수많은 카메라와 대중 앞에 세움으로써, 일차적인 여론 재판 겸 망신주기를 하는 셈”이라며 “‘이 죽일 놈의 XX!’ ‘염병할!’ 피의자에 대한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가운데, 특히 ‘모자 벗겨버려라!’ 그러니까, 얼굴을 드러내 공개적인 망신을 주자, 비난을 퍼붓자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박 기자는 또한 “경찰이 수갑과 포승을 채운 죄인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은, 서양의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며 “지루한 사법 재판 이전에 화끈하게 공개적 여론 판을 하는 것, 돌만 안 던지지, 옛날과 똑같다”고 경계했다. 그는 “언론의 현장 검증 보도도 여론 재판 중계에 그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현장 검증 결과, 새로 드러난 팩트는 단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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