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의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 서비스인 보이스톡이 등장하자, 통신사들은 카카오톡을 ‘무임승차자’에 비유했다. 통신사들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깔아 놓은 망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과부하를 유발하는 음성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달 19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KT경제경영연구소 김효실 상무는 “수익자 부담원칙에 기반해 유무선망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는 사업자는 정당한 대가를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등 mVoIP 사업자들을 겨냥한 대목이다. 언론들도 이 같은 통신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왔다. 

*관련기사
<카톡 무료전화 쓰려면 요금 40% 더 내라고?>
<“통신비 인하해달라는데, 기자들이 너무 공격적이에요”>

 
 
“보이스톡? 이동통신사랑 카카오톡 싸움 아닌가요?”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서 이용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적지 않은 통신요금을 부담하고 있는 이용자들은 요금제에 따라 보이스톡 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트래픽이 폭증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통신사들이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트래픽 관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역시 이용자의 목소리는 끼어들 틈이 없다. (관련기사: <방통위의 무시무시한 음모를 폭로합니다>)
 
30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 주최로 열린 ‘망 중립성 오픈세미나’에서 블로거 ‘민노씨’는 “망 중립성은 단순히 통신요금이나 보이스톡 문제보다 훨씬 더 거대한 이슈”라며 “이용자는 일방적으로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가 주인이어야 할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이 이용자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민노씨는 “웹(Web)이 점점 닫혀가고 있다”며 현재의 인터넷은 ‘절반 쯤 닫힌 웹’이 됐다고 지적했다. 거대 기업들이 인터넷 곳곳에 장벽을 쳐두고 ‘가두리 양식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89년 인터넷(www: 월드 와이드 웹)을 구상한 팀 버너스리가 꿈꿨던 열린 공간으로서의 ‘인터넷’과는 정 반대 되는 상황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터넷이 위험하다”…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한 이용자
 
“만약 우리 웹 사용자가 이러한 흐름을 용인한다면, 웹은 조각조각 떨어진 섬들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웹사이트를 연결할 수 있는 자유를 잃을지 모른다.” (팀 버너스리, 2010년 11월22일, 기고문. 원문보기)
 
민노씨는 “언론들은 망 중립성 논의를 거대 기업들 간의 싸움으로 한정짓고 있다”면서 “모바일혁명이든, SNS혁명이든, 어떻게 우리가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20년 뒤에는 소수의 손에 의해 인터넷이 작동하는 ‘디지털 양극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용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진행되는 보이스톡 논란처럼, 이용자들이 점점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인터넷을 “혁신과 자유와 평등의 공간”으로 규정한 뒤, “이 같은 망을 이통사가 통제하는 권한을 방통위가 허락했다”고 비판했다. 방통위가 지난 달 15일 발표한 ‘트래픽 관리안’의 문제점을 짚은 대목이다. 민노씨는 이 같은 시도가 결국 혁신·자유·평등이라는 인터넷의 속성을 파괴해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으로 망 과부하? 트래픽 자료 공개하면 될 일!”
 
이어진 발제에서 강정수 뮤즈얼라이브 전략이사는 “공공재로 만들려는 노력 없이는 공공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Peter Linebaugh)의 말을 인용했다. 인터넷을 사회 전체에 유익이 되는 ‘공공재’로 만들기 위한 원칙들을 세워 나가고, 이를 위해 사회적인 개입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망 중립성의 핵심 원칙을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으로 인해 망 과부하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제한하기 전에, 트래픽 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이사는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도 트래픽 현황 자료를 구할 수 없다”며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 트래픽은 2~3년 내에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앞으로 증가할 트래픽 양을 고려한 사회적 (관리)원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트래픽을 ‘차별’하려는 망사업자(ISP: 통신사)들에 의해 ‘망 양극화’가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이사는 이미 인터넷 망은 ‘예약된 망(Reserved IP)’과 ‘열린 망(Open Internet)’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IPTV 같은 VOD 서비스나 인터넷 전화(VoIP) 등의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별도로 구분된 망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열린 망’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과부하로 인한 속도 저하나 끊김 현상이 없다. ‘우선권’이 부여된 트래픽인 셈이다. 같은 속도의 인터넷 전용선을 쓰더라도, 콘텐츠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트래픽이 폭증할 경우다. 강 이사는 “망사업자들이 자사 서비스 보호를 위해 ‘열린 망’에서도 특정 트래픽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나 망을 차별하려는 구조가 탄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칫 서비스에 따라 데이터 패킷을 ‘등급화’하고 망을 ‘구별’하는 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프리미엄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의 ‘계층화’는 필연적 수순이다.
 
 
“‘투명성’이 망 중립성의 핵심”
 
이미 카카오톡은 ‘통신사들이 고의로 보이스톡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KT는 ‘비상식적인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변칙P2P 공유 서비스’의 트래픽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트래픽 관리안을 이처럼 통신사들에게 트래픽을 차단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강 이사는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 강화보다는 정치적 로비에 집중하는 ‘Rent-Seeking’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인위적으로 망에 대한 투자를 지연시켜 망 과부하를 극대화 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고 비판했다. 유무선 망을 사실상 독점한 국내 통신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망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인터넷 트래픽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통신사들은 보이스톡으로 인해 망 과부하가 우려된다면서도, 이와 관련된 자료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인 방통위도 들여다보지 못할 정도다. 김 이사는 “망 과부하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서는 누구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트래픽 현황이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망 중립성 기본 원칙을 법제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언론개혁시민연대, 인터넷주인찾기, 진보네트워크센터, 오픈웹, 참여연대, 청년경제민주화연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이 참여하고 있는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은 다음 달 13일(목)과 27일(목)에도 같은 장소에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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