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명 서명의 무게 

2008년 1월, 일주일 앞으로 예정되어있던 제65회 골든그로브 시상식이 취소됐다. 아카데미상과 더불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시상식이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가져온 원인은, 다름 아닌 작가들의 ‘파업’. 할리우드의 영화와 방송 작가들이 제작자 연맹과의 재계약협상에서 뉴미디어로 판매되는 작품에 수익지분권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파업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브레드 피트는 파업 참가중인 작가를 교체 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했고, 다양한 배우와 감독들의 파업에 대한 지지로 방송 및 영화 촬영이 중단됐다. 조지 클루니, 톰 행크스, 안젤리나 졸리 등이 시상식 불참을 선언하면서 골든 글로브 시상식까지 기자회견으로 대체되고, 결국 100일간의 투쟁 끝에 작가들이 뉴미디어 부가판권의 수익 배분을 획득하며 파업이 마무리됐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내심 부러웠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쓰는 우리 구성작가들도 작가들의 작업 환경이나 처우, 원고료 문제로 방송사와 협상 하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심정이 들 때마다 ‘전면 파업이라도 한 번’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구성작가’의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지만, 각자 방송사, 외주 제작사, 프로그램, PD등에 따라 서로 너무 다른 조건으로 일하고 있기에 함께 뜻을 모으지 쉽지 않은데다가, 일부만 파업을 했다가는 또 누군가 그 자리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미국 작가들의 파업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미국 작가협회(WGA; 미국 TV 방송 대본과 영화시나리오 쓰는 작가들의 노동조합)는 그 100일간의 파업을 위해 6~7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고, 3년 전부터는 조합원들의 개별 면담을 위해 가정방문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단 며칠 만에 920명의 시사교양작가가 서명을 했다. PD수첩이 일하고 있던 작가를 몰아내고 새 작가를 찾는다는 말에, 결코 그 자리에는 부역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몇 개월의 MBC 파업 중에 ‘시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아나운서, PD, 기자들이 들어오는 마당에 말이 900명이지, 교양작가라는 이름으로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 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숫자가 흔들리지 않고 서명을 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미국작가협회의 파업 못지않게 더 큰 무게로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있다.  
 
우리가 끝내 내어줄 수 없는 것
 
다른 건 몰라도 난 이 사태에 책임 있는 해당 국장과 본부장이 작가의 해고가 이렇게 비화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은 믿는다. 결과는 PD수첩을 불방 시키고, 그 원인을 작가로 돌려서 오히려 원하는 대로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작가 6명 해고하면서 곧 자신들의 뜻에 맞는 작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투입한 작가를 통해 아이템 관리하고 PD들 견제하면서 모양새 갖추어 방송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다시 MBC가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여기고, PD수첩이 다루지 않는 사건은 없던 일로, PD수첩이 비판하지 않는 아이템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눈속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부장과 국장, 본부장이 바로 그렇게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제작 업무를 떠나 있다가 후배와 동료들이 파업을 하는 동안 그 비운 자리를 대신해서 돌아왔다. 그래서 자신을 중용하고 자리를 맡겨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자리를 지키는데 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파업이 아니었으면 오지 않았을 기회. 이렇게 얼마간 자리를 지키다보면 영전할 수도 있고, 또 아니면 시사 교양 PD로 나섰으니 부장이 되어, 국장이 되어 펼치고 싶은 포부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PD수첩 하나는 내어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고 작가들도 얼씨구나 그럴 줄 알았던 것일까?

어쩌면 920명 우리 구성 작가들에게도 그런 미혹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시사교양작가로 뜻을 세운 사람치고 PD수첩 작가라는 자리,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자리다. 이력서에 한 줄 써놓으면 어느 프로그램 작가로 간다한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경력이다. 나 역시 작가로 일한 20년 가까운 시간 중에 고작 1년 PD수첩을 해놓고도 주요 이력에 PD수첩을 빼놓지 않고 쓴다. 고되고, 힘들고, 치열해야 하며, 냉철해야 하는 그 자리에서 일했다는 것은 그만한 자질과 가능성을 가졌다는 자격증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욕심나는 걸로만 치자면 작가들이 더할 수 있다. 일자리가 보장된 안정된 직장인도 아니고 돈이나 명예도 방송국 부장, 국장에 비하겠는가. 하지만 920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그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서명을 한 데에는 시사교양 작가로 살아가는 데에는 그런 이력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정의와 신념을 담아 원고를 쓰고 그 원고로 시청자와 소통하며 이 사회를 건강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지켜 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있다는 ‘소명의식’. 돈도 명예도, 안정된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 작가들에게 그 소명의식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가장 큰 가치이며 아무리 내로라하는 프로그램이라도 그 소명의식을 지킬 수 없다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자리’에 의한 장악 그 끝 
 
2009년 아직 보수언론과 재벌기업의 종편 진입을 위한 방송법 개정이 논의 중이던 무렵, 방송 3사 종사자와 지식인들이 이를 강력히 반대하자 그 이유가 바로 올해(2012년)를 2002년처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편 신문기사가 있었다. 또 한 번의 대선이 있는 올해가 10년 전인 2002년과 비슷한 ‘정치 일정’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2002년에 지방 총선거와 한일 월드컵이 있어 정치와 스포츠가 절묘하게 결합됐듯이 2012년 또한 국회의원 총선거와 런던 올림픽을 치른 후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종편 없이 방송 3사 중심의 방송 구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MBC 등 기존의 방송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를 이끌어낸 후 런던 올림픽 한국 대표단의 선전으로 고조된 열기를 등에 업고 제 2의 ‘효순, 미선이’ 혹은 ‘광우병 공포’를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대권 창출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한낱 보수언론의 음모론이라고 치부해버렸던 것을 한 쪽에서는 상당히 신빙성 있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 후 권력에 의한 언론 장악의 수순은 그 가상 시나리오대로 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점철되어온 듯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된 방법은 바로 ‘자리’ 혹은 ‘권력’을 쥐어줌으로서 ‘소명의식’을 빼앗는 일이었다. 다수의 뜻과 맞지 않더라도 자신의 뜻을 잘 따라줄 누군가에게 방송 사업자의 자격을 주고, 또는 방송사의 사장 자리에 앉히고, 본부장 자리에, 국장, 부장 자리에 앉히고 시용 PD와 기자를 채용하기까지. 대의 대신 ‘권력’으로 자리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신념이나 소명의식 대신 권력에 굴복하고, 그 권력을 가지고 똑같은 방식으로 아래를 지배하려고 했다. 900명 작가의 서명은, PD 수첩의 불방은 이 정권 내내 유용했던 그 ‘자리’에 의한 지배의 첫 번째 좌절인지도 모른다.            

 PD수첩 없이도 ‘사랑’과  ‘눈물’이 계속 될 수 있을까?     

해고된 작가 6명이 복귀되기 전 PD수첩은 다시 방송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걸 놓고 소가 뒷걸음치다가 뭐 잡은 격이라며 안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이것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일 수도 있다. 우리 작가들은 PD수첩의 작가 자리가 비어있는 동안 끊임없이 그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돌아오지 않는 PD수첩이 시청자들에게 이 정권이 언론 장악을 위해 여전히 ‘자리’의 꼼수를 쓰고 있음을 일깨우는 증거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PD수첩 6명의 작가를 잃고 제작현장에 남은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PD수첩이 있는 MBC였기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천착하여 휴먼다큐 ‘사랑’을 제작할 수 있었고, 머나먼 오지의 ‘눈물’을 촬영해올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나 작가 모두 권력이나 자본이 아닌 사람을 향할 수 있는 시선과 열정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PD수첩을 버리면 나머지도 지킬 수 없다. 무엇보다 언젠가 내가 소명을 다해 취재하고 글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 그 누군가의 뜻과 다를 때 무참히 중단되고 버려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이런 야만적인 퇴출이 PD 수첩 6명 작가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이 싸움에서 일개 작가들이 거대 방송국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사교양 작가인 우리는 시대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자리’는 길어야 몇 년이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양심과 소명을 다해 쉼 없이 써내려갈 것이며, 결국에 더 많은 이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방송’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그 ‘자리’의 미혹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용기를 보여주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걸까? 돌아온 6명 작가들과 함께 그런 정의로운 이야기를 방송으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노경희 작가는 2001년 1년 동안 PD수첩을 집필했으며, <휴먼다큐 사랑>의 '너는 내운명' '풀빵엄마'편 등과 창사특집 <지구의 눈물-'북극의 눈물'>을 집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