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프로그램 막기에 바빴다. 그곳엔 미래가 없다. 다들 갈 곳이 없어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 TV조선에서 일했던 이의 말이다. 개국 9개월을 맞은 TV조선이 제작비 부족과 조선일보와의 불협화음 속에 침몰 위기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종합편성·보도전문PP 승인 백서’에 따르면 TV조선은 2012년 매출 2433억 원 달성 및 1만6000여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예상했었다. 2년 전 오지철 TV조선 대표는 몇 년 안에 SBS를 뛰어 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1등 신문’의 힘을 믿고 시작한 TV조선은 개국 9개월이 지난 지금 공공연하게 ‘퇴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 처했다.

8월 현재 TV조선의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은 0.4~0.5%로, 종편 4사 중 최하위다. 재방송 비율은 종편사 중 제일 높은 70%대다. TV조선은 방통위의 의무편성비율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수개월 전부터는 드라마편성을 포기하고 값싼 다큐멘터리와 해외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적자폭을 줄이려 노력중이다. 1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대작 <한반도>는 지난 4월 1%대 시청률로 조기 종영했다. 조선일보가 방송 개국 9개월 만에 이같은 성적을 내고 있는 배경은 뭘까.

보도에 집중하며 시청률을 높일 계획이었던 TV조선은 개국 당시 150여명의 보도본부 인력으로 출발했다. 보도본부장과 조선영상비전 대표 등 간부진은 대부분 조선일보 출신이었다. TV조선 직원들은 개국 방송 당일 방우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앵글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며 윗선으로부터 크게 혼이 났고, 방상훈 사장의 금연을 이유로 사내 흡연실이 사라지는 경험 등을 겪으며 ‘조선DNA’에 적응했다.   

TV조선 직원들은 황정민·김정은 주연의 블록버스터 <한반도>가 성공하면 TV조선에게 기회가 올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반도>는 저조한 시청률로 기대에 못 미쳤다. 그 뒤 사내 분위기가 크게 꺾이고 경영악화도 현실로 드러났다는 게 내부 의견이다. <한반도> 이후 제작비가 적게 드는 정치 토크쇼나 협찬을 받기 쉬운 생활정보프로그램들이 편성을 차지했다.

시사교양프로그램 <현장추적 WHY>가 사라진 것은 <한반도>가 죽을 쑤던 3월 중순 무렵이었다. 제작진은 2012년 2월 ‘4대강의 그늘’이란 주제로 부산과 목포 등 전 지역의 4대강 공사현장을 돌며 한 달간 취재에 나섰다. 기획단계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보도본부장이 “정확한 사실이 없으면 건드리지 말라”며 제작중단을 지시했다. 4대강 아이템과 함께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방송이 무산되며 회사를 그만 둔 이만 6명이었다.

TV조선 내에서는 ‘제작 자율성 침해’를 외치는 것이 사치에 가까울 정도로 직원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제작에 나서고 있었다. 인력이 부족해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AD(보조PD)의 경우 한 달 기본금 131만원을 받으며 주말도 없이 6시 출근 10시 퇴근을 반복했다. 인력이 없어 AD가 촬영을 나갈 때도 있었다. 하루 1시간짜리 데일리 프로그램에 AD 1, PD 2, 작가 3, 기자 1명이 인원의 전부인 적도 있었다. 업무강도 불만이 나올 때마다 간부들은 “조선DNA가 부족하다”며 다그쳤다.

3월 이후 회사는 취재차량을 대폭 줄이고 취재진에게 렌트나 대중교통이용을 지시했다. 야근 수당은 택시비 15000원이 전부였다. 휴일근로는 수당 4만원과 심야교통비 15000원이 나왔다. 이마저도 프리랜서는 제공받지 못했다. 조선영상비전 소속 카메라기자들은 자차로 운전을 해가면서 취재기자와 촬영을 했다.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TV조선은 기업협찬을 통해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TV조선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반지원정대>의 경우 조선일보가 SK그룹에게 협찬하지 않으면 (비리를) 터뜨리겠다고 협박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고, 모 생활정보프로그램의 경우 현대·기아차를 전문적으로 홍보하는 기자들이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TV조선 직원들에게 가장 큰 난관은 역설적이게도 조선일보였다. 우선 TV조선에서 취재를 왔다고 하면 조선일보의 수구 보수적 이미지 때문에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빈번했다고 했다. 또 조선일보 기자들의 협조가 없는 경우 경찰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출입처에서 취재에 어려움을 겪었다. OBS나 YTN 등 타사에서 온 TV조선 기자들은 아무리 부탁해도 경찰서 출입이 어려웠다. 이를 두고 타사 종편의 한 기자는 “TV조선과 조선일보는 따로 노는 느낌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TV조선을 배척하면서 (TV조선 때문에) 우리까지 발목 잡히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라고 귀띔했다.

TV조선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TV조선은 늘 조선일보보다 아래 취급을 받으며 무시당했다”고 말한 뒤 “TV조선은 조선일보로부터 버려졌다. 이제 TV조선 출신이라고 하면 이력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DNA’를 견디지 못해 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간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사원확장대회’도 TV조선 직원들에겐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조선일보는 전 계열사 직원들에게 신문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한 판촉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판촉 성과는 곧바로 부서평가와 인센티브로 이어졌다. 사원들은 조선일보 정기구독 한 명을 데려오면 3만원을 받았다. 판촉 1등은 유럽항공여행권을 줬다. 사원들은 “조금만 분발해 달라”는 총무과 문자도 받았다. PD든 카메라기자든 상관없이 ‘실적’을 내야만 했다.

TV조선은 콘텐츠 미비와 제작비 부족이라는 필연적 실패 요인 외에도 신문과 방송이 불협화음을 내며 무너지는 모양새다. 더욱이 TV조선의 요직에 있는 조선일보 간부들이 창발성과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방송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선일보만의 작업방식을 고수하며 방송사의 성장에 장애가 됐다는 지적이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조선일보는 자사의 힘을 과신해 신문 독자가 그대로 방송 시청자로 넘어 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한 뒤 “방송은 신문과 달리 채널 이동이 굉장히 쉽다. 시청자들은 지금 TV조선을 볼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관계자는 “광고주들은 신문의 영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TV조선에 광고를 주는 상황”이라 귀띔한 뒤 “TV조선은 앞으로 매매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조선일보는 꽤나 골치가 아플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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