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을 제작하다보면, 방송 당일까지 취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다 오늘 방송을 못 내보내는 것은 아닐까, 소름끼쳤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땐, 팀원들 머리털이 모두 쭈뼛 서 있다. PD는 혀를 깨물고 편집을 하고, 작가는 심장을 멈추고 원고를 쓴다. 이미 애가 다 타버린 PD수첩 팀장은 편집실로 스튜디오로 종합편집실로 막 날아다닌다. 그래도 방송은 늘 제 시간에 나갔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무사히 방송을 내보내도, 팀장의 분노는 계속된다. 제작진은 팀장에게 밤새 욕먹고, 다음 날 또 욕을 먹는다. 방송이 제 시간에 나갔지만, 방송이 제 시간에 못 나갈 뻔했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PD수첩이 내부의 사정으로 시청자와의 약속을 깨고 결방 되는 참변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담당 PD와 팀장은 물론 해당 국장까지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제, PD수첩이 결방됐다.

MBC 노조가 파업을 잠정 중단한 뒤, PD수첩은 8월 21일 방송을 재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 때 제 시간에 방송을 못 내보냈다. PD수첩 22년 역사에 이렇게 또 한 번, 오점을 남기게 됐다.

나는 ‘나의’ PD수첩 8년 역사의 여러 팀장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마치 제 자식 지키듯 PD수첩을 지켰다. 이상했다. 말랑말랑 온순할 것 같은 PD도 PD수첩 팀장 자리에만 오면 가슴 속에 머리띠를 둘러맸다. 온갖 종류의 외압을 막아냈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내부의 복잡한 사정들도 어떻게든 해결해냈다. 그렇게, PD수첩은 제 때 제 시간에 제 목소리로 방송됐다. 그들이 지금 PD수첩의 팀장이라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적어도 PD수첩이 결방된 어젯밤, 쉽게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결방이 예상 된 한 달 전부터 쉽게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PD수첩이 결방된 어제, PD들이 PD수첩 배연규 팀장에게 “결방 사태를 어찌할 거냐”고 물었단다. 팀장은 “이 문제는 작가들이 풀어야지, 내가 어떻게 하냐”는 취지의 대답을 했다고 한다.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은 후배 PD들이 작가들의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는 성명서를 낸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단다. 그 팀장과 국장은 PD수첩이 결방된 어젯밤, 어쩌면 그 섭섭함에 잠을 설쳤을지도 모르겠다.      

야만에 대한 분노

PD수첩 작가 여섯 명을 한꺼번에 내쫓은 지 한 달째다. 결국 작가들을 집단 해고하고 새 작가를 구하지 못한 PD수첩은 결방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주, 그 다음 주 방송 재개도 불투명하다. 이미 900여명의 시사교양 작가들이 PD수첩 대체 작가로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한민국 시사교양 프로그램 구성작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숫자다. 그러니, 어디서 작가를 구해 방송을 재개 하겠는가.  
 
예전, 한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던 일을 방송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해고보다, 해고를 문자 메시지로 통보해 버리고 마는 그 야만이 믿기지 않았다. PD수첩 작가들에겐 그마저 없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을 일한 작가의 밥줄을 끊어놓고 알리지도 않았다. 뒤꽁무니로 새 작가를 물색하다 들켰다. 시사교양 작가들이 PD수첩 대체 작가를 거부하는 것엔 그런 야만에 대한 깊은 분노가 깔려 있다. 누구든 밉보이면 그렇게 내쳐질 수 있다는 데 대한 아찔함도 배어있다.   

PD수첩이 결방된 어제, MBC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의 정책 발표회가 있었다. 노조 파업 와중에 승진, 임명된 김현종 국장이 PD와 기자들에게 국 운영에 관한 생각을 내놓는 자리였다. 궁금했다. 김현종 국장은 PD수첩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김 국장은 한 달 전, PD수첩 작가 사태에 대해 PD들에게 “작가 교체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 일이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다. 부디 김현종 국장에게 뱀 같은 지혜가 샘솟아 사태를 해결하고, PD수첩이 정상화되길 바랐다. 정말 진심이었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복수의 PD와 기자들에게 전해들은 김 국장의 정책 설명회의 주요 내용을 보면 PD수첩은 아마도 그냥 이 상태로 쭉 갈 모양이다. 김현종 국장은 PD 수첩 작가를 전면 교체한 이유로, 노조 파업에 작가들이 지지 성명을 냈기 때문이라고 재차 확인했다고 한다. PD들은 노조원으로 직접 파업에 참가했다. 파업에 참가한 PD가 PD수첩을 하는 것은 괜찮고, 단지 파업 지지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PD수첩을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인가? 정책 설명회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PD, 기자들과 김 국장 사이에 논쟁이 이어졌던 모양이다. ‘논리적 모순’이라는 PD와 기자들의 지적에, 김 국장은 ‘모순이 아니다’라고 했단다. 모순이냐 아니냐, 문자 투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김 국장은 정책 설명회에서 한겨레21 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작가가 편향돼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고도 한다. 해당 기사는 정재홍 작가가 해고된 이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PD수첩 팀장과 담당 국장은 정권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아이템은 갖은 핑계를 들어 못하도록 막았다. PD수첩 작가들이 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성명서에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담긴 인터뷰다. 불편부당하고 싶다는, 어떤 권력, 어떤 세력, 어떤 집단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방송하고 싶다는 PD수첩 12년차 작가의 바람이 왜 김 국장에겐 편향돼 있는 것으로 보였을까? 누가 가운데 서 있고, 누가 한 쪽 귀퉁이에 서 있는가? 

김현종 국장은 어제, PD수첩 작가 해고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판단’이었다고 했다고도 한다. PD수첩 PD들 뿐 아니라, MBC PD협회, PD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PD 수첩 작가 해고의 부당함을 지적했었다. 시사교양 작가들뿐 아니라 드라마, 라디오, 예능 등 각 분야 방송작가 2500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한국 방송작가협회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이 사태에 직접 대응하고 있다. 방송작가협회 소속 회원들이 장르를 망라해 거리 집회에 나선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PD수첩 대체 작가를 하겠다는 작가를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해 결국 PD수첩이 불방 되는 사태에 이르렀는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판단’이었다니... 나는 역사의 교훈과 시대의 상식을 품지 못한 리더가 외치는 ‘정의’가, 그 ‘정의’가 이루려는 일들이 두렵다.

‘이러다 정말 대선까지 방송을 못 할 수도 있다’는 PD들의 호소에 김 국장은 ‘PD수첩 PD들이 작가 충원에 적극 나서달라’ 했다고 한다. PD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애처로울 따름이다.

역시 우리는 낚인 것일까?

작가들이 집단 해고 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잠깐 상상했었다. 당분간이라도, 가능하면 대선까지 PD수첩을 결방 시키려는 것 아닐까. 어제의 정책 설명회에서 김현종 국장은 “결방 사태까지 이르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차라리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PD들에게 ‘작가 충원에 적극 나서달라’고 하는 국장에게서 PD수첩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작가협회가 액션을 철회해야 사태가 해결 된다’고 하는 팀장에게서 PD수첩에 대한 애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이 보이콧 선언을 하고, PD수첩이 결방 되는 상황을 웃으며 지켜보는 누군가는 존재하는 것일까? 역시 우리 모두는 ‘어떤 그들’에게 낚인 것일까?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역사를 믿고, 시간을 기다린다.

이 글을 쓰느라 인터넷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봤다. 378465번의 제목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파업 끝났으니 모든 걸 파헤쳐 주세요!”

아무래도 시청자는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이제는 PD수첩을 떠난, 일개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괜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아미 작가는 2002~2010년까지 PD수첩을 집필했습니다. MBC스페셜과 휴먼다큐 사랑, 성공시대 등에서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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