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대통령후보가 선출되며 본격적인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기간에는 후보만큼 주목 받는 곳이 여론조사기관이다. 1987년 대선에서 한국갤럽이 노태우 당선자를 예측해낸 것을 시작으로 여론조사는 한국 사회 정치지형을 만드는 한 축을 담당했다. 대규모 선거 유세에서 군중을 동원하던 관행은 여론조사와 함께 사라졌다. 여론조사는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 민심을 외면할 때 국민의 의견을 드러내며 ‘상시적인’ 선거도구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선거기간 때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여론조사는 여러 문제를 낳았다. 우선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형태의 여론조사가 이뤄지며 다른 지지율이 나올 경우 사회적인 혼란을 일어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생산하는 여론조사기관과 여론조사 결과를 소비하는 대중은 언론사에 의해 연결되는데, 유통자로서의 언론보도는 기본적인 매뉴얼을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론과 정치의 한계 속에 국민들은 여론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ISO) 조사분석실장은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민주당 후보와의 후보단일화가 불가피해보이고 단일화의 주요 방식은 여론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에 버금갈 정도로 여론조사가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선거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언론인들이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한다”며 주의사항들을 지적했다.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여론조사가 질문을 선정하고 프레임을 구축해 유권자의 자유로운 사고를 발현시키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부실한 보도가 확산됐을 때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이 여론조사 보도에서 흔히 저지르는 문제로 반드시 공표해야 할 △조사방식 △조사 시기 △조사 샘플 규모 △표본의 오차허용범위 △질문지 △응답률 등을 밝히지 않는 것이라 지적했다.

만약 ‘표본이 1000명에 95% 신뢰구간, 오차범위가 ±3.1%’라고 언급한 경우에는 부연설명도 필요하다. “오차범위에 대한 설명을 빼놓고 1% 차이인데 앞서나가고 있다든지, 다시 1% 차이로 역전했다든지 단정적 해석을 할 경우 과잉보도라 볼 수 있다.” 윤 실장은 “여러 여론조사 기관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것을 단순 취합해 여론의 흐름을 평가하는 식의 보도 역시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후보 지지의 경우 대부분 명확하게 답변을 못해 재질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재질문 여부에 따라 부동층의 차이가 발생한다”며 “재질문 여부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질문 순서 역시 중요하다. 대통령 국정지지도 조사를 예로 들면 현 정부가 잘못한 일을 먼저 물어본 다음 지지도를 묻는 경우와, 잘한 일을 물어보고 지지도를 묻는 경우는 지지도가 달리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 실장은 “언론이 질문순서와 같은 정보 대신 단순 결과만 전달하는 것은 불완전한 정보이며 온전한 여론조사 보도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권자들 또한 선거 기간 중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윤희웅 실장은 “우선은 오차범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어느 곳에서 의뢰를 했는지 보고 결과를 의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들이 설문지와 설문 통계표까지 함께 읽으며 설문 수치만으로 경도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거여론조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시스템의 변화도 필요하다. 윤 실장은 “가령 하루 만에 조사를 요구하는 관행이 많은데 짧은 시간에 조사를 제공하는 경우 지역·성·연령은 인구비례로 맞춘다 하더라도 주부와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게 나와 직업군별 성향이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예측 한계를 보이며 여론조사업체들은 등재율이 50%수준밖에 안 되는 기존의 KT 전화번호부 표본 대신 RDD임의번호걸기(Random Digit Dialing, 가능한 번호를 무작위 생성 및 추출)를 선택하며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또 집전화가 없는 휴대폰 사용자의 여론 반영을 위해 휴대폰 RDD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윤 실장은 “이상적인 RDD기법은 1단계 가구 추출, 2단계 응답자 추출, 3단계 다시걸기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한국에선 의뢰기간이 비용을 너무 싸게 의뢰한다던가, 조사기간을 충분히 잡지 못하는 경우 1단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윤 실장은 지나치게 여론조사에 기대는 정치권과 사회분위기는 성찰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실장은 “정치권 경선의 경우 오차범위 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아닌데도 100% 여론조사만을 통해 1위와 2위를 결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뒤  “정당 내에서 후보를 결정할 때 단순히 여론조사를 갖고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적극적 시민의 참여 욕구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정치권은 도구적 맹신주의를 반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 실장은 이어 “한국사회는 대중들이 정책결정에 오랫동안 소외된 탓인지 해외에 비해 여론조사의 파급력이 높다”며 “다수 의견과 최다 지지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사회의 다양성과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어떤 이슈에 대해 7:3이 나왔으면 3도 중요한 의견인데 이를 무시하면 사회 변화의 가능성이 축소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는 선거결과의 예측이 아닌 단순한 스냅 사진”(조지 갤럽)으로 보는 게 유권자에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언론인은 여론조사를 보도할 때 △조사 의뢰자 △조사기관 △피조사자의 선정방법 △표본의 크기 △조사지역 △일시 △방법 △표본오차율 △응답률 △질문내용을 여론조사 보도 시 공개해야 한다. 아래는 한국조사연구학회에서 마련한 ‘여론조사 보도에서 언론인이 던져야 할 20가지 보도지침’이다.

1. 누가 여론조사를 실시했는가?
2. 누가 여론조사의 비용을 지불했으며, 조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3. 조사응답자의 수는 몇 명인가?
4. 조사대상자들을 어떻게 선정했는가?
5. 조사대상자의 모집단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조사대상자를 어느 지역 혹은 어떤 집단에서 구했는가?
6. 여론조사 결과는 모든 응답자들의 대답에 근거하여 산출한 것인가?
7. 응답률은 얼마인가?
8. 언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가?
9. 어떤 조사방법을 사용했는가?
10. 인터넷이나 웹 상에서의 여론조사는 믿을만한 것인가?
11. 여론조사에서 표집오차란 무엇인가?
12. 누가 선두인가?
13. 조사 결과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는가?
14. 어떤 질문을 사용했는가?
15. 어떤 순서로 질문했는가?
16. 여론조사를 가장한 ‘푸시 폴’(Push Poll)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7. 동일한 주제에 관한 다른 조사들이 있었는가? 그 조사들도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가? 다르다면, 왜 다른가?
18. 묻고자 하는 질문은 모두 물었다. 대답 또한 매우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 조사는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19. 잠재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결과를 보도해야 하는가?
20. 이 여론조사 결과는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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