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광경이었다. 지난 18일 오후 7시 서울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한 손에 책이 들려 있었는데, 다들 같은 책을 갖고 있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사태와 22명의 죽음을 다룬 공지영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휴머니스트)였다. 이날 대한문에 모인 시민들은 ‘쌍용차 희망지킴이’가 주관하는 ‘들국화와 함께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 북 콘서트를 함께하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했다.

북 콘서트에는 백기완 선생과 쌍용차 노동자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정혜신 박사, 정동영 전 민주당 의원, 영화 <남영동>을 제작중인 정지영 감독 등이 참석했다. 대한문 앞에서 수백 명의 인파가 몰린 북 콘서트가 열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콘서트 장소 한 쪽에선 공 작가가 사인회가 진행됐다. 50대 여성부터 10대 소년까지 30m가 넘는 긴 줄이 늘어섰던 사인회는 3시간 넘게 진행되며 작가와 책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북 콘서트 사회를 맡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의자놀이>가 발행 10일 만에 3만부 넘게 팔렸다. 서점에선 쌍용차 노동자를 위한 기부에 나서고 있고, 휴머니스트의 경쟁 출판사인 사계절·문학과지성사 등의 직원들이 책을 집단 구매하고 있다”고 말하며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구매 열기는 현장도 뜨거웠다. 이날 <의자놀이>를 판매한 교보문고 관계자는 “정확히 집계는 못했지만 여기서만 500권 이상은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북 콘서트의 첫 손님은 지난 6일 감옥에서 출소한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단절된 시간의 간격(3년)만큼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전철을 타고 오는데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 눈 마주칠 시민이 없었다. 오는 길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한문에 도착해 800여명의 시민과 눈을 마주친 뒤, 부족한 의자에 앉기 위해 옆 사람을 밀쳐내야 하는 ‘의자놀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아마 쌍용차에서 왜 그리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지 많이들 모르셨을 거다. 이제 <의자놀이>를 통해 절망에서 빠져나와 희망을 이야기하자. 우리는 ‘1박2일’에서 봤던 의자놀이를 해야 한다. 지금은, 앉지 못한 동지들을 무릎에 앉힐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그는 “책 한 장을 넘기는 것이 어렵고 참담했지만 <의자놀이>는 노동자의 삶을 바꿔내는 무기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변치 않은 그의 모습에 박수가 이어졌다.

이어진 토크쇼에서는 김정우 현 쌍용차 노조지부장과 이근행 <뉴스타파> PD(MBC 해직언론인), 공지영 작가가 함께했다. 공 작가는 이 자리에서 책을 내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3년 전 뭣도 모르고 쌍차 100인 대책위원회에 갔다. 회의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더라. 전부터 쌍차 문제를 보면서 누가 간결하게 정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써서 전액기부하면 돈도 모으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공 작가는 100인 회의에서 의견을 내비쳤고, “여기 작가가 공지영씨 한 명이고 말을 꺼냈으니 책임을 져라”라고 했던 게 <의자놀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공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주인공을 설정하면 주인공의 몸과 마음이 되어 쓰는데 (이번 경우는) 사흘 동안 글을 써도 전혀 졸립지 않았다. 잘못하면 정신병원에 실려 가겠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한 뒤 “이것이 쌍용차 노동자들이 (옥쇄투쟁) 마지막에 겪었던 초각성 상태였다”고 밝혔다.

옥쇄투쟁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공장에 단전단수 조치를 내렸다. 쌍용차 조합원들은 최루탄 이상으로 본인들의 분뇨냄새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공 작가는 “77일 동안 그 상황을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었다”고 말한 뒤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는 눈물이 나지 않지만, 단전단수 상황에서 조금 남아있는 비상발전기를… 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숭고한 싸움을 알게 해주셔서 제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은 비상발전기로 자동차용 페인트가 굳지 않도록 하는 데 썼다. 마지막까지 회사를 생각했던 것이다.

쌍용차 조합원, “<의자놀이>로 삶에 설레임 생겼다”

2009년 4월 회사는 전체인력의 37%에 해당하는 2646명의 정리해고를 발표했고, 그해 5월 노조는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며 평택 공장을 점거했다. 7월 공권력이 투입됐고, 경찰은 최루액을 쏘고 단전단수 조치가 이뤄졌다. 그렇게 8월, 노사는 해고 대상자 중 ‘48% 무급휴직․영업전직, 52% 희망퇴직’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합의안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2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지난 4월 5일 대한문에 천막을 쳤다가 연행 당하고 (동료들의) 영정을 쓰레기차에 버리는 아픔을 겪고 석 달 넘게 버티다가 최근부터 여의도로 옮겨가 새누리당사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의 근황을 전했다. 김정우 지부장은 “<의자놀이> 첫 페이지를 봤을 때 밀려왔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밝힌 뒤 “스물 세 번 째 죽음만은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가 이어졌다.

이근행 PD는 “쌍용차 강제진압으로 스물 두 명이 죽었지만 사회는 무감각했다. 지금 이만큼 쌍용문제가 환기되는 것은 그들의 죽음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근행 PD는 “현재 쌍용과 SJM, 만도 등의 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이기지 못하는 싸움이 반복되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줄기차게 싸워온 것을 보면 현장에는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PD는 “당장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희망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뒤 스스로 다짐하듯 “즐겁게 싸울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언젠가 이긴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절망과 포기다. 희망의 연대가 늘어날수록 승리는 MBC에도 쌍용차에도 찾아올 것이다.” 다시 박수가 이어졌다.

토크콘서트 이후 이어진 들국화의 공연은 대한문 거리를 압도했다. 들국화는 “좋은 일에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고 짤막하게 답한 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을 불렀다.

이날 북 콘서트를 함께한 쌍용차 노동자들은 힘이 생겼다. 유제선 쌍용차지부 조합원은 “들국화 공연은 생각도 못했다. 날씨도 안 좋은데 모두들 재능기부로 도와주셨다”고 말한 뒤 “많은 분들이 책을 통해 쌍용차 사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제선 조합원은 “4년 째 희망 없이 살아온 날들이 많았는데 오늘 같은 희망을 볼 때 우리의 싸움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삶에 약간의 설레임이 생겼다”며 웃었다.

시민들은 <의자놀이> 열독을 약속했다. 20대 여성인 박세린씨는 “<도가니>를 보고 감동을 받은 뒤 공지영 작가 팬이 됐는데 아버지가 쌍용차 사태를 이야기 해주며 오늘 <의자놀이>를 선물로 주셨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장에 와서 공지영 작가도 만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집에 가서 꼭 책을 읽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날 북 콘서트에서는 지금껏 쌍용차 집회나 문화제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웃음과 여유,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는 27일에는 홍대에서 <의자놀이> 북 콘서트가 또 한 번 진행된다. <의자놀이>를 한 권 살 경우 쌍용차 해고노동자에게는 4200원을 후원하게 된다. ‘쌍용차 희망지킴이’는 현재 쌍용차 가족들의 지원을 위한 장학사업인 ‘바구니 만들기’를 진행 중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된 ‘희망식당’은 오는 10월 ‘해고는 나쁜 짓이다’라는 제목으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밥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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