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월 6일, 포드자동차 공장 앞은 ‘포드맨’이 되기 위한 노동자들로 북적였다. 전날 헨리 포드는 기자들을 불러놓고 하루 최저임금은 5달러로 인상하고, 노동시간은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한다고 선언했다. 연말에는 이익분배금으로 10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도 말했다. 당시 다른 제조업체의 일당은 평균 2.34달러였다.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대신 포드를”을 외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이날 폭탄선언은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포드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직률은 380퍼센트에 달했다. 노동자들은 시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생산라인을 이겨내지 못했다. 헨리 포드는 훗날 “일당 5달러는 우리가 고안해낸 최고의 비용 감축 조치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간, 현대를 발명한 헨리 포드. 열두 살 때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회중시계와 읍내에 나갔다 자동차를 본 경험은 평생 그의 삶을 좌우했다. 그의 꿈은 값싸고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게 해준 것이 바로 T형 모델. 헨리는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조금의 틈도 없이 맞물린 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계 태엽 장치를 공장의 생산 시스템에 적용”했다.

헨리는 고임금을 미끼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노동자들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출퇴근시간을 기록하는 체크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조립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생산이 중단되지 않도록 휴식시간을 제한했다. 노동자들은 작업 기계에 앉거나 기댈 수 없었다. 이를 감시하기 위해 공장 안에는 감시자들을 배치했다. 노동자들은 감시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복화술로 대화를 나눴다. 복화술을 하는 풍경까지는 아니더라도 100년 후 한국의 노동현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이제 공장이며 사무실 안에 노동자를 감시하는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헨리에게는 외아들 에드셀이 있었다. 에드셀은 25세였던 1919년 포드자동차 사장에 올랐는데 1943년 아버지보다 빨리 세상을 떠났다. T형 모델을 고집한 아버지와 변화를 추진한 아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특히 아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못마땅했다.

1935년 미국에서는 노사관계법인 와그너법이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반노동조합주의자였던 헨리는 어떻게든 노동조합 설립을 막으려고 했다. 1937년 5월 포드자동차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공장 앞까지 행진해 모여들었다. 헨리는 조직폭력배를 고용해 그들을 막았다. 많은 사람들이 구타를 당했고 기자들은 필름을 빼앗겼다. 몇 명의 노동조합 운동가는 숨지기까지 했다. 그 중에는 에드셀과 친분이 있는 지식인도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자는 완전히 틀어졌다.

최근 출간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던 헨리 포드의 소박한 꿈은 포드주의라는 생산 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공장제 노동에 종속된 인간과 시간이라는 새로운 일상의 풍경을 창조했다”고 밝혔다.

포드자동차를 세운 헨리 포드부터 AK-47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유통혁명의 근원 월마트를 세운 샘 월튼,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은 과학적 여론조사의 선구자 조지 갤럽, 콜라를 세계화한 로버트 우드러프, 세계인을 고객으로 호텔 네트워크를 건설한 호텔의 제왕 콘래드 힐튼, 포르노 제국을 건설한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 등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러시아의 무기설계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나치의 침략에서 조국을 방어하기 위해 27세의 나이에 AK-47 소총을 만들었다. AK-47 소총은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전쟁터와 학살의 현장에서 사용됐다. 반동이 적어 다루기 쉽고, 견고하다는 장점 때문에 어리고 약한 소년들까지 전쟁의 도구로 끌어들이게 됐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 만든 소총이 인류의 가장 잔인한 무기 ‘소년병’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이 책의 기본 골간은 인물 열전이다. 하지만 다른 인물 서적과 비교되는 것은 “인물과 그가 속한 시대를 아울러 성찰하는 데” 더 집중했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그간 기업을 창업한 이들의 성공담을 전파하는 데 급급했던 자기계발류의 찬사와, 개인의 업적에만 치중했던 위인전류의 한계를 소박하게나마 극복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시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의지가 왜 스스로를 배신하게 되는 것일까”하는 물음에 “자기계발에는 홀로 생존의 본능만 있을 뿐 사회적 공적 주체로서의 비판 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물의 삶과 시대적 상황을 이처럼 꼼꼼하게 다룬 책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은 저자 특유의 꼼꼼함과 잡학때문인 것 같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저자를 두고 “날 보고 별 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라 하지만, 전성원은 그런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꼼꼼한 디테일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역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현대적 일상의 발명자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과 이 세계를 좀 더 잘 알게 된 건 그의 놀라운 잡학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88만원세대’ 공동 저자 박권일씨는 “거대한 인물의 삶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정통파 평전 내지 열전은 아니지만 기획과 발상, 인물선정, 주제의식이라는 면에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인물열전”이라며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교양도서로서는 최고 수준의 엄밀함과 꼼꼼함도 갖췄다”고 평가했다. 저자 전성원은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다.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운영자이기도 하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전성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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