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의문의 사고로 숨진 고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에서 6~7cm의 함몰된 골절 흔적이 뚜렷이 발견돼 타살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으나 KBS와 MBC, SBS 등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저녁 메인뉴스에서 의혹제기 이후 이틀 째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아 ‘언론이길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장 선생의 두개골 유골에서 함몰된 자욱이 발견됐다는 한겨레 보도 이후 정치권에서도 박정희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에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쳤다. 또한 16일엔 최근 장 선생의 시신 이장 과정에서 실시한 유골검사 결과와 두개골의 사진도 공개돼 충격을 줬다. 그러나 이틀 내내 KBS MBC SBS는 이 소식을 철저히 묵살했다.

이를 두고 SBS 등 방송사 내부에서는 리포트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왔다고 SBS 기자는 전했다. 방송 3사는 장준하 공원 개막식이 열린 17일이 돼서야 일부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제치하와 독재치하로 이어지는 동안 박정희와 장준하 두 인물이 지내온 인생역정이 극명히 대비된다는 점에서 37년 만의 장 선생에 대한 타살의혹은 그 자체가 역사적 상징성이 큰 사건이다. 한 사람은 일본장교일 때 다른 이는 광복군 장교였으며, 독재시대를 만든 대통령의 삶과 궁핍하게 지내다 사망한 삶은 대한민국의 역사처럼 상징성을 띈다. 타살의혹을 받고 있는 세력(박정희)의 딸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는 정국의 뇌관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외면하기 힘든 뉴스이다.

최경영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17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팩트를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의미인데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이런 팩트를 일부러 외면했다”며 “박정희라는 독재세력과 그 정적 장준하라는 역사적 스토리에다 그 딸이 대통령에 나서겠다고 하는 정치 사회적 맥락이 담긴 사건인데도 이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간사는 “KBS MBC SBS 간부들이 스스로 저널리스트임을 포기한 것이자 민감한 뉴스에 대해 박근혜에 유리한지 안한지를 기준으로 보겠다는 것”이라며 “끊임없는 정파성을 드러낸 것일 뿐 아니라 권력의 해바라기이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 향배만 지켜보는 것으로 이 정도이면 언론이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최 간사는 “오늘까지도 방송하지 않을 경우 다음주 공방위에서 철저히 따져 물을 것”이라며 “KBS의 경우 전 정연주 사장 때 제작하면서 쓴 자료화면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에서 ‘그림이 없어서 뉴스를 못했다’는 변명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호원 SBS 노조 공정방송위원장은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처음 장 선생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 날 보도했어야 할 문제이며, 역사상 의미를 볼 때도 당연히 보도해야 하는 것은 맞다”며 “아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괜찮은 뉴스분석을 8시 뉴스를 통해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이 제기됐을 때 리포트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다만 담당 부서에서 의혹 제기 당시(15일) 공식 기자회견도 없었고, 쌍방취재도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공원 제막식이 열린 17일에 보도하는 것으로 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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