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최근 민주통합당 핵심 당직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미디어오늘 기자와 관련해 피해자측에 대한 사실 확인도 없이 이를 언론에 알려, ‘2차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언론은 새누리당과 가해자의 거짓 주장을 주요하게 전달하면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신의진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1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근래 민주통합당의 주요 당직자가 택시 안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해당 언론사와 민주통합당에서는 이를 숨기고 함구령을 내린 상태”라며 “이번과 관련된 성추행 사건은 낱낱이 밝히”라고 말했다. 신 원내대변인의 국회 브리핑을 통해 해당 사건은 처음으로 공개됐다.

해당 사건은 지난달 5일 밤 국회 민주통합당 당직자 A씨가 취재 이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미디어오늘 여기자를 성추행한 일이다. 민주당은 감사국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 동석자들 진술 등을 취합한 진상조사를 했고 지난달 31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A씨를 해임 처분했다.

사건 발생 직후 해당 기자는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해당 사건 및 기자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와 비방 등으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비공개를 요청해 왔다. 이에 따라 미디어오늘은 사건 다음날부터 회사 차원의 진상조사를 시작했고 지난달 24일 진상조사 결과와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상담확인서를 민주당 감사국에 제출했다. 미디어오늘은 민주통합당에 △철저한 진상 조사 △가해자의 사과와 직위 해제·출당 이외에도 △해당 사건에 대한 내·외부 발설 등으로 인한 ‘2차 피해’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동석자들 진술을 받았으며 지난달 31일 인사위원회에서 A씨를 해임 조치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건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건을 언론에 알렸다. 신의진 원내 대변인은 10일 백브리핑에서 ‘회사와 민주당이 사건을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 대변인은 사건 발생 시점이나 장소, 동석자 등 기본적인 사건 경위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여기자가 해당 사건의 공개를 원치 않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정말 공개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여기자가) 회사에 공개를 했을까요?”라고 말했다. 

신 의원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부터 틀렸다. 미디어오늘과 민주통합당은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했으며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공식적으로 진상조사 보고서가 작성됐고 민주통합당 당직자는 해임 처분을 받았고 동석한 미디어오늘 남자 기자는 정직 5개월 처분을 받았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브리핑 이후 언론은 새누리당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며 ‘은폐’ 의혹을 주요하게 제기했다. 연합뉴스는 10일 <신의진 “민주, 당직자 여기자 성추행사건 은폐”> 기사를 실었고, 1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미디어오늘을 특정해 “은폐 논란”, “은폐 의혹”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민주, 여기자 성추행 사실 숨겼다” 파문>, 데일리안은 <여기자 성추행 민주-언론 사실 은폐에 급급> 등으로 보도했고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관련 기사를 올렸다. 중앙선데이는 12일 사설에서 “미디어 오늘은 성추행 사건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실상 은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언론은 이번 성추행 사건을 “성추행 논란”, “성추행 의혹”이라고 보도하며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성추행한 이는 내가 아니라 동석했던 미디어오늘의 남자 기자”,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무고죄로 고소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는 A씨의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 미디어오늘이 새누리당의 브리핑 직후 해당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이들 언론은 피해자측의 입장은 담지 않고 가해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은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가해 사실을 전면 부인하거나 거짓 정황을 퍼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쌍방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언론이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 가해자의 변명을 기사화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임혜경 한국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난달 31일 민주당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나쁜 사회적 평판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가해 행위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제1의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지적했다.

정하경주 사무국장은 통화에서 “새누리당은 성폭력 상황을 왜곡하고 있고, 언론은 피해자측보다는 가해자를 주로 인터뷰해 기사를 써 피해자 소외 방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며 “2차 피해에 대한 고려 없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가해자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는커녕 가해 사실을 전면 부인해 왔고 그동안 비밀 유지를 어기며 2차 피해를 발생시켜 왔는데 이번엔 새누리당과 언론이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미디어오늘은 정치권과 언론의 왜곡으로 발생되는 해당 기자의 피해를 엄중한 사태로 판단하며 향후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2차 피해’를 유발한 새누리당과 해당 언론사 등에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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