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말을 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자 카메라 셔터 소리만 요란한 채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26일 여의도 소재 한 빌딩에서 열린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에 대한 MBC 구성작가협의회의 입장 전달 및 규탄 기자회견'는 그야말로 눈물의 기자회견이 됐다.

"PD수첩 작가 단체 해고는 방송작가 전체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식으로 단체 해고를 하면 그 자리를 메꿔줄 작가가 있다라고 믿는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알베르 까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 소감으로 '작가의 의무는 진실과 자유에 대한 섬김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최미혜 방송4사 구성다큐연구회 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띄엄띄엄 자신의 생각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마이크를 놓고서도 서러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는 듯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25일 MBC가 PD수첩 작가 6명에 대해 전격적으로 해고 통보했다. 이 같은 해고 사례는 22년 PD수첩 역사를 통틀어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조치이다. 본인들에게 사전 통보도 없었고 구체적인 해고 사유도 듣지 못했다.

구성 작가들에 따르면 작가 교체는 보통 프로그램 제작진이 새로 구성되거나 담당 PD들의 의사에 따라 이뤄진다. 작가들은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최소한 교체가 되더라도 최소 1~2달 전에 통보해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관례이다.

하지만 PD수첩 작가들은 자신의 해고 사실조차 본인이 통보받지 못했다. 작가들은 교체 사실을 전해듣고 면담을 요구해 만난 김현종 시사제작교양국장으로부터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을 들었을 뿐이었다. 분위기를 바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작가들은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것이 MBC의 주장인 셈이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사회의 진실과 권력의 감시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큰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았던 PD수첩의 작가들이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은 전체 작가들의 자존심이 철저히 짓밟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작가들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분을 삼키지 못한 것은 내용과 절차상 해고 조치가 부당할 뿐 아니라 MBC 경영진들의 노골적인 'PD수첩 죽이기'에 자신들이 희생양이 됐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PD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실질적인 제작 업무를 맡고 있는 작가들도 손을 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PD수첩의 색을 바꾸겠다는 MBC 경영진들의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지적이다.

작가 6명이 PD수첩 팀에서 맡았던 방송 내용을 보면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정재홍 작가) '민간인 사찰'(장형운), '기무사 민간인 사찰'(이소영),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이화정) 등이다. MBC 경영진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김 사장 취임 이후 경영진과 PD 수첩 제작진은 공정보도를 둘러싼 MBC 갈등 문제를 축소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승호 PD는 "PD수첩을 없애고 싶다. 없애야 겠다라고 하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 이런 본심은 감춰둔 채 PD들부터 쫓아내고 이제 드디어 작가들까지 유린한 것은 인간적으로 도리가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이번 해고 사태로 인해 구성 작가들의 자기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작가들은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아이템 선정부터 스토리 틀을 만들고 취재하는 역량까지 발휘하고 있다. 작가들의 능력이 곧 프로그램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번 해고 사태는 단순한 고용관계 문제로만 바라볼 수 볼 게 아니라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질적 문제와도 깊이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기자회견에서 작가들이 "PD수첩과 같은 탐사보도프로그램 본래의 의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PD 수첩 작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역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비판정신과 어떤 탄압에도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양심과 용기"였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재홍 작가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새로운 작가가 우리의 빈자리를 채울 때 과연 용기있게 권력의 비리를 비판하고 사회의 부정을 파헤칠 수 있겠느냐"라며 "바로 눈 앞에서 잘리는 것을 보고 그 수혜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작가 전원 해고 사태는 PD수첩 무력화를 위한 마지막 종결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해고 사태는 또한 'MBC 대 방송작가'들과의 싸움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MBC를 포함해 KBS, SBS, EBS 등 방송4사 구성작가협의회는 오는 30일 MBC 사옥 앞에서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에 대한 규탄 및 대체작가 거부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결의대회에서는 유명 드라마 작가도 참여해 구성작가들을 격려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방송4사 구성작가 협의회 소속 400여명의 작가들은 PD수첩 대체 작가 공모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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