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강력하게 손꼽히는 후보가 있다. 재벌의 불법상속과정을 폭로하고 재벌의 후원금이 아닌 시민들이 보낸 성금으로 대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한 후보가 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자신의 대권가도에 방해가 되는 한 소녀를 살인교사 했으며, 권력을 이용해 재판을 조작했으며, 이 사실을 파헤치는 아버지를 수차례 살해하려 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추적자>의 강동윤(김상중 분)의 모습이다.

대선을 앞둔 2012년 방영된 이 드라마는 정치와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정의롭지 못했던 강동윤 후보는 결국 백홍석(손현주 분)에 의해 그 악행이 만 천하에 폭로된다. 대선 날 터진 초대형 이슈에 시민들의 발길은 투표장으로 몰리고, 결국 강 의원은 91.4%의 투표율 속에서 몰락을 맛봐야 했다.

정치권의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고, 재벌문제, 정치검찰 등을 다루고 있어 현실감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추적자는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추적자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 정작 정치인들은 추적자를 어떻게 봤을까?

쏟아지는 정치 이슈 속에서 정치인들이 드라마를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측은 “박 전 대표가 그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측도 “도저히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 역시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추적자가 큰 이슈가 된 만큼, 직접 시청하거나 주변을 통해 내용을 전해들은 정치인도 많았다. 특히 심상정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본방사수’도 제대로 못했지만, 이따금 다시보기로 보기도 했다”며 “하지만 마지막 두 편은 현병철(인권위원장) 청문회 준비에,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 준비에, 아직까지 못 보고 있다”며 ‘팬’을 자처했다. 정세균 민주당 전 대표는 “3분의 1정도 봤다”고 말했고,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도 서울경제신문 칼럼을 통해 “가족과 함께 봤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주변에서 내용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보는 추적자는 어땠을까?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정치권이 너무 현실적’이라는 네티즌들의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일부 정치인들은 추적자가 그리고 있는 정치권이 현실과는 분명히 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은 칼럼에서 “‘추적자’초반부의 녹화분을 가족들과 함께 봤는데 정치인을 가장으로 둬 정치권을 조금은 아는 우리 가족에게는 드라마의 현실이 지나치게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진다고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대표도 “상당히 많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에게도 고민거리다. 전병헌 의원은 “오히려 많은 시청자들은 이 같은 묘사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모습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는 평가가 대세인 것 같다”며 “이는 내가 아직 권력의 실체적 모습을 덜 알고 있거나 시청자들이 권력의 모습을 현실보다 훨씬 추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인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심상정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톱스타가 한 명도 없는 드라마 한 편에 국민들이 몰입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대한 진실의 일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 전 대표는 “누군가 논평하기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전율’이라고 표현했더라”며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 1% 특권층의 행동양식에 대한 해부보고서’ 혹은 ‘특권층의 막장드라마’ 같다. 그들의 말투와 태도, 사고방식 등등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고문은 드라마는 못 봤지만 들은 내용임을 전제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사회를 책임져 온 기성세대의 한 명으로서 미래 세대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 고문은 이 드라마가 사랑받은 이유에 대해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진단했다. 문 고문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정의가 실종되고 국가권력은 정당성을 잃고 사유화됐다”며 “추적자의 높은 인기는 정의가 사라진 대한민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좌절과 희망이 결합된 결과로,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문 고문은 “윗물이 맑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며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정치검찰 청산,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등을 통해 더 맑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을 투명한 국민의 감시대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도 “드라마에서는 특권층과 기득권층이 평범한 가정을 파괴하고, 그 가족들이 맺고 있던 인간관계마저 무너뜨리더라”며 “이 평범한 가정을 파괴하는 데 공모한 세력들을 열거하면, 그것이 한국사회가 지금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재벌, 정당, 검찰, 경찰, 언론 등. 이 중에서 특권을 방조하고, 개혁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은 전적으로 정치의 책임”이라며 “정치가 특권층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막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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