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면 깔끔하게 접겠다.”

김혁 SBS 정책팀 차장은 향후 서비스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변했다.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푹’(POOQ) 출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푹’은 MBC, SBS가 지분을 50%씩 투자해 만든 콘텐츠연합플랫폼(주)의 서비스를 뜻한다.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 프로그램이 주로 제공된다. ‘푹’은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N스크린으로 손쉽게 포털처럼 한 곳에서 시청할 수 있는 유료 동영상 서비스(OTT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이 같은 서비스가 어울릴 법한데 서비스를 출시하는 날부터 “접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이 같은 서비스가 국내에서 성공하기까지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는 방증이다. ‘푹’은 내년부터 정상 가격으로 서비스를 할 예정이어서, 이때부터 서비스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푹’이 작년에 이미 이용자가 2700만 명을 돌파한 미국의 동영상 서비스인 훌루처럼 한국판 ‘훌루’가 될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달려 있다.

우선 관건은 ‘푹’의 유료 서비스 모델이 얼마나 시장에 통할지다. 적정한 이용자들이 적정한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김혁 차장은 “정말 걱정이 되는 것은 연말에 할인 이벤트가 끝나고 내년에 정상 가격으로 서비스 했을 때 얼마나 이용자들이 남아 있을지”라며 “이용자들이 할인 이벤트만 드시고 남는 분이 없다면 할인 금액 이상으로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 서비스인 ‘티빙’(TVing)을 운영 중인 CJ헬로비전의 최병환 상무는 지난 5월25일 한국미디어경영학회에서 발표한 ‘N스크린 서비스의 10가지 키워드’에서 콘텐츠 유료 구매의 조건을 △콘텐츠의 전문성·희소성 △고화질 △가격 할인 △다운로드 가능 여부 등으로 꼽았다. 이 조건을 고려해 볼 때, ‘푹’의 현재 할인 가격은 저렴한 수준이다. 실시간 채널과 VOD 무제한을 결합한 풀 패키지 상품은 웬만한 케이블 요금보다 낮은 4900원(월 자동결제 시)이다.

그런데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은 ‘저가 시장’이라서 정상 가격(풀 패키지 9900원)으로 갈 경우 이용자들이 얼마나 지불 의사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화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올해 1분기 방송콘텐츠의 월평균 구입 비용은 5187원이었다. 방송콘텐츠 월구입비는 콘텐츠 분야별 비용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또한 4900원이라는 낮은 금액의 할인 서비스가 시장에서 서비스 경쟁보다는 가격 경쟁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할인 가격’으로 이용자들을 유인하기보다는 사업자끼리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 될 수도 있다.

‘푹’이 경쟁 서비스의 이용자를 얼마나 뺏어 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작년 3월 출시한 ‘티빙’은 현재 유료 가입자가 10여만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푹’과 ‘티빙’의 가입자 추이가 연말까지 어떻게 변하는지가 양 사업자 중에서 승자를 가늠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푹’과 ‘티빙’이 실시간 서비스, VOD에서 일부 차별되는 점도 있지만, ‘티빙’은 선발 주자로 서비스 안정성이 있다는 점, ‘푹’은 지상파 연합 플랫폼으로 콘텐츠 저작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강점이다. 양측이 경쟁 과정에서 콘텐츠 유통과 제휴를 둘러싼 계약 관계의 문제도 불거질지도 주목해볼 대목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이 ‘푹’과 ‘티빙’으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통신사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대상이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통신사가 ‘푹’과 ‘티빙’을 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올해 초 KT가 삼성 스마트TV를 과다 트래픽을 이유로 망 이용을 중단하게 해 서비스를 중단하게 한 바 있다. 통신사가 mVoIP(모바일 인터넷 전화)도 차단하는 상황에서 트래픽이 큰 동영상 서비스를 차단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더군다나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망 혼잡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과다 트래픽이 없더라도 통신사가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트래픽 관리안을 검토 중이다.

통신사들은 ‘푹’이나 ‘티빙’이 자사의 경쟁 서비스를 잠식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차단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 ‘푹’과 ‘티빙’의 경쟁도 치열하겠지만, 이들 방송사의 동영상 서비스와 통신사의 서비스 간에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혁 차장은 “올레 티비 나우나 새로 나오는 (통신사의)N스크린의 화질이 ‘푹’보다 낮지 않은데 ‘푹’의 트래픽 높다고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며 “‘(통신사인)나는 되고 (방송사인)너는 안 된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소비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혁 차장은 “음원 제작자들이 CD에서 MP3로 넘어가는 시장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종속되면서 음원 시장은 황폐화 됐다”면서 “‘푹’을 통해 콘텐츠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시장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푹’은 지상파의 광고 매출이 감소하고 스마트 환경에서 지상파의 플랫폼 영향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위기 타개책으로 등장한 서비스다. 하지만 이미 선발 주자인 케이블의 ‘티빙’이 버티고 있고, 통신사의 차단 움직임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푹’의 성패는 국내 유료 동영상 서비스 시장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싸움의 첫 시험대는 이달 말 런던 올림픽이며, 성패 여부는 ‘연말 성적표’에서 여실히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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