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MBC <무한도전> PD는 지난 6개월간 그곳에 있었다. 공정방송투쟁을 알리는 여의도 MBC 로비 앞 파업집회, 김재철 사장의 해임을 요구했던 방송문화진흥회 건물 앞 집회, 방송사파업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뮤직비디오 ‘흰수염 고래’ 촬영현장, 김 사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서울 명동의 서명현장, MBC·KBS·YTN 3사 파업의 승리를 염원하며 흥겹게 놀았던 여의도 파업콘서트, 그리고 170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업무복귀를 결정했던 지난 17일 조합원 총회현장까지. 이날 굳은 얼굴로 총회장을 빠져나왔던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방송 재개 여부를 묻는 연예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이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으로 24주간이나 결방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무한도전> 결방은 MBC, 나아가 올해 방송사 파업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김 PD는 2년 전 MBC노조의 39일 파업 당시에도 누구보다 나서 파업을 알렸고, 덕분에 당시 사내에선 경영진을 중심으로 <무한도전> 폐지설이 돌기도 했다. 이번 파업의 경우 김재철 사장이 직접 <무한도전>의 외주제작 또는 폐지를 언급해 김태호 PD를 압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원’ 김태호는 ‘조합원’ 김태호로서 묵묵히 170일을 버텼다.

업무복귀 후 3일 째인 20일 오후, 김태호 PD는 일산MBC에 위치한 <무한도전> 회의실에 있었다. 그는 10여명의 작가들과 함께 굳은 표정으로 아이템을 논의하고 있었다.

김태호 PD는 업무복귀 이후 수많은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업무복귀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사측이 대규모의 보복성 인사발령을 내고 사내 분위기가 흉흉한 상황에서 자칫 인터뷰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김 PD는 어렵게 이뤄진 미디어오늘과의 단독인터뷰에서도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날 김 PD의 얼굴에선 오랜만에 현장에 나온 연출자에게 느껴지는 긴장과 흥분, 그리고 공정방송투쟁에서 결국엔 반드시 승리한다는 다짐과 고집을 읽을 수 있었다. 김 PD와의 인터뷰는 <무한도전> 회의실에서 약 30여 분 간 진행됐다.

6개월간의 파업 기간 동안 김태호 PD는 “노조 집행부를 따르면서 계속 기다렸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그가 재충전을 하며 쉬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파업 중인 조합원 신분으로는 “마음이 불편해서” 쉴 여유가 없었다. 업무복귀 결정이 내려졌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노조 집행부의 판단에 따랐다. 앞으로 겪을 어려움을 감수하고 들어왔다”고 답하며 당시 기분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다만 “파업을 쉬었다고 하면 안 된다. 파업은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업무에 복귀하니 환영해주는 게 서글프다. 우리만 아니라 기자나 아나운서들도 하던 일을 못하고 있었으니 스트레스는 다 똑같았다”는 말로 심경표현을 대신했다.

파업기간 내내 노조와 경영진은 <무한도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질’을 잡지 말라”며 공방을 벌였다. 노조는 불방의 정당성을 알렸고, 사측은 시청자의 약속을 얘기하며 불방을 비판했다. 시청자들 중에서도 업무에 복귀해 방송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김태호 PD와 뜻을 같이하며 파업 승리 이후 <무한도전>을 보자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태호 PD가 갖고 있던 마음의 짐은 어느 정도였을까. 김 PD는 “나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데 프로그램이 걱정됐다”고 말한 뒤 “(노사 양쪽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무한도전’이 노조도 회사도 아낄 정도로 중요한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도중에 올라오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김 PD는 “그런 적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파업 기간중 나왔던 ‘무한도전 폐지설’에 대해선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아래 동영상)지난 5월 12일 파업중이던 언론노조 MBC본부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었던 희망텐트-방송대학에서 김태호 PD가 예능PD로서의 자세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김재철 사장이 여전히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 중에는 MBC노조가 파업에서 패배하고 올라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태호 PD는 “당연히 졌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PD는 김재철 사장 퇴진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김 PD는 “저희들이 들어온 이유는 ‘한 달 뒤’에 어차피 될 것(김재철 사장 퇴진)이라고 믿고 들어왔기 때문에 현재의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 사장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사내 조합원들의 여론을 전한 셈이다. 그는 최근 일어난 대규모 보복성 인사발령에 대해서도 “견뎌내야 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조합원들을 응원했다.

김 PD는 <무한도전> 정상화가 홍보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했다. 무한도전 방송 재개가 곧 MBC 전체의 방송정상화가 된 것인 양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다. 김 PD는 MBC 시사교양프로그램의 방송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회적으로 ‘무한도전=방송정상화’라는 공식을 경계했다.

김태호 PD는 “을 보니까 담당PD들이 반 이상이 다른 쪽으로 가셔서 (의) 정체성도 위험하다. 방송도 올림픽 이후에나 될 것 같다고 한다. 과 <시사매거진 2580>같은 프로그램의 불방이 <무한도전> 정상화보다 부각돼야한다. 이 프로그램들이 더 MBC의 색깔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김 PD는 1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도 “업무복귀 이후 우리만 조명 받는 게 불편하다. 과 <시사매거진 2580>도 불방 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 PD는 파업 기간 중 <무한도전>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관심에 대해서도 적지 않음 부담감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김 PD는 “자주 (무도 멤버들을) 만나는데 언론이 자꾸 비밀연습실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서 저희가 더 이야기도 하기 싫고 교정을 부탁드려도 끝까지 수정을 하지 않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한도전> 결방이 계속 이어지며 타 매체의 경우 기존의 멤버들 연습실을 갖고 굳이 비밀연습실이라고 칭하며 사무실 앞을 직접 찾아와 파파라치식으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제 김태호 PD에게는 무한도전의 정상에 올려놓는 과제가 놓였다. 파업 기간 중 MBC 예능프로그램의 성적은 참혹할 정도로 사실상 곤두박질쳤다.

김 PD는 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PD는 “저희도 차츰 올라가면 된다. 지난주에 (<무한도전> 스페셜방송이) 3%대 나왔다고 들었다.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면 된다. 올해 보니 TV에서 이탈한 시청자 층이 많은 것 같다. 이들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6개월 간 쉬었으니, 6개월 간 회복기간으로 생각하고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약속했다.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웠다. 그동안 토요일 저녁 웃음을 못 드려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갚아나가겠다. 저희들도 사람인지라 일을 멈췄다. 다시 시작하면 초반에는 힘들 수 있지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다시 예전만큼 웃음을 되돌리자고 멤버들도 다짐했고 노력할 것이다.”

한편 오는 21일 방송되는 <무한도전>에선 지난 1월에 방송된 ‘하하vs홍철’ 1·2편의 기억을 되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해당 편 하이라이트를 내보내고 지난 6개월간의 경과보고를 알리는 ‘무한뉴스’를 전할 예정이다. ‘무한뉴스’ 녹화는 업무복귀 첫날이었던 지난 18일 진행됐다. 김 PD는 “업무에 복귀해서는 방송으로 말해야 한다”며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무한도전>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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