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공개한 트래픽 관리안이 감청 논란까지 빚을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 포함돼, 졸속 처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1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이 참여하는 망중립성 이용자 포럼은 방통위가 지난 13일 발표한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이 △투명성·차단금지·차별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망 중립성을 위배했고 △통신사들이 광범위하게 자의적으로 트래픽을 차단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고 비판했다.

이번 기준안이 ‘합리적 트래픽 관리’라는 명목으로 트래픽을 차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이런 기준안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고 위험하다는 게 시민단체쪽 입장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통신은 소통을 서비스하는 것인데 통신사가 소통을 막는 일을 하면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통위는 또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를 비롯해 P2P 트래픽, 애플리케이션, 콘텐츠, 서비스 등도 통신사들이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유진투자증권은 16일 보고서에서 △mVoIP와 관련한 통신사의 현행 제한 방식을 공식 허용 △삼성·LG전자의 스마트TV, CJ헬로비전의 TVing, MBC·SBS의 POOQ 등 대용량 동영상 트래픽에 대한 차단 근거 마련 △과다 이용자(헤비 유저)에 대한 트래픽 제한의 허용 등으로 차단 범위를 예상했다.

특히, P2P 트래픽 제한 규정 등은 통신사가 감청 논란이 있는 패킷 솔류션 기술인 DPI(Deep Packet Inspection)의 사용을 전제한 것인데, 방통위가 이를 사실상 인정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따르면, 통신사가 DPI 기술로 사용자 동의 없이 패킷을 보고 차단하는 경우 감청이라는 법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프라이버시 침해도 우려된다.

그러나 방통위는 방통위 산하 관련 기구에서도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외부 여론 수렴도 사실상 부재했다. 망중립성 포럼에 참여 중인 NHN, 다음, 삼성전자, 녹색소비자연대 등은 지난 13일 토론회에서 ‘이번 트래픽안을 12일에 처음 봤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시민단체에서 이 트래픽안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에 미리 공개하자 오히려 삭제를 요청했고, 민주당 보좌진을 대상으로 한 업무 보고에서도 트래픽안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방통위는 합리적 트래픽 관리라는 명목으로 규정된 부분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며 “트래픽 관리안을 만들기 전에 통신사가 어떻게 트래픽을 관리하고 있는지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방통위 통신경쟁정책과 관계자는 “트래픽 관리안에 사례를 넣은 것은 통신사들이 자의적으로 차단하려는 부분을 사전에 제어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지난 3~4개월 동안 정책 자문 위원들이 논의한 의견을 반영했고, 이용자나 CP(콘텐츠 사업자)들의 우려도 고민했는데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경식 대변인은 16일 ‘트래픽안의 처리 시점’에 대해 “이번 달 상정은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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