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차단 논란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 통신사들은 트래픽이 폭증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차별할 수 있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3일 발표한 트래픽 관리 기준 초안에 따르면 통신사들이 카카오톡 뿐만 아니라 방송사의 드라마 다시보기 서비스나 포털 사이트의 동영상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차단 당하지 않으려면 네트워크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게 이 관리 기준의 핵심이다.

망중립성 논쟁과 관련, 방통위와 통신사들이 지금까지 숱한 거짓말을 쏟아냈지만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같은 거짓말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mVoIP(무선 인터넷전화)가 엄청난 트래픽 부담을 유발한다거나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에 이르렀다거나 외국에서도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서비스를 차단한다거나 하는 등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거나 팩트 왜곡이다.

과거의 망 중립성은 통신사 전후방 산업의 독점화를 방지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논의는 트래픽 급증에 따른 네트워크 트래픽 관리가 더욱 중요한 쟁점이다. 통신사들은 유선 통신 가입자 20%가 95%의 트래픽 유발하고 무선 통신 가입자의 10%가 96%의 트래픽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수의 헤비 유저들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통신사들 주장이다.

통신사들 주장은 언뜻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네트워크 트래픽 부담은 유선과 무선을 나눠서 논의해야 하고 네트워크 투자비용을 분담해야 할 필요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트래픽 폭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KT는 지난 2월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차단해 논란이 됐지만 방통위는 아무런 제재 조치도 하지 않았다.

물론 외국에서도 헤비 유저들의 네트워크 속도를 제한하거나 추가 과금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특정 서비스를 차단하는 방식은 아니다. 미국 컴캐스트는 2008년부터 총량제를 도입, 최대 한도를 250GB로 제한하고 있다. AT&T는 유선은 지난해 5월부터 무선은 올해 3월부터 총량제를 도입했다. 유선은 150GB가 상한인데 초과할 경우 50GB에 10달러씩 추가 과금된다. 무선은 3GB까지는 3G 속도로, 이를 초과하면 2G 수준으로 낮아진다.

일본에서도 NTT와 소프트뱅크는 유선 서비스에서 1인당 업로드를 하루 30GB로 제한하고 있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은 피크 타임에 헤비유저의 네트워크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무선 인터넷 전화를 차단하는 곳도 일부 있고 전반적으로 고품질 프리미엄 서비스(QoS)의 경우 추가 과금을 인정하는 추세인데 50개 사업자가 경쟁하는 영국 등의 경우와 3개 사업자가 독과점을 형성하고 담합하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트래픽 관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최근 논의는 결국 경쟁 서비스 차단이 핵심이다. 카카오톡은 통신사들 음성통화 서비스의 경쟁 상대고 스마트TV는 IPTV의 경쟁상대다. 통신사들은 무임승차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 말은 곧 너희가 하는 서비스를 우리가 하고 싶으니 너희도 하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의미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방송사도 포털도 P2P 사이트들도 동영상 서비스를 하고 싶으면 통신사에 돈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통신사들이 특정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과정에서 통신을 감청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통신사들은 트래픽 관리라는 명분으로 수천억원을 들여 DPI(심층패킷검사, Deep Packet Inspection) 장비를 구입했다. 통신사들은 이 장비로 이용자들이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다. 패킷의 헤더만 들여다본다는 게 통신사들 주장이지만 패킷의 내용이나 패턴까지 들여다 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통신사들이 내가 보낸 메일을 들여다 볼 가능성은 없을까. 내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고 누구와 메신저를 하고 어떤 게시판에 어떤 글을 남겼는지 누군가가 모니터링할 가능성은 없을까. 통신사들은 이미 그런 기술을 갖고 있고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방통위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이들은 다만 트래픽 관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네트워크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서비스를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통신사들이 동영상 서비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음성통화 기반의 전통적인 수익모델이 붕괴하면서 통신사들은 콘텐츠 사업자로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료 유선방송 가입자들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가는 코드 컷팅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유선방송 월 이용료가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기도 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완하는 웹하드 서비스가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최근 통신사들 특히 KT의 움직임을 보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성장하기 전에 싹을 자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카카오톡 차단 논란 과정에서 엄살을 부렸던 것도 음성통화 서비스를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동영상 서비스에서 추가 과금을 해야겠다는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통신사들이 영리기업이라고는 하지만 공적 인프라인 네트워크를 자사 이해에 따라 자의적으로 차단하는 건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

통신사업자연합회(KTOA)라는 곳에서 대용량 콘텐츠 서비스를 대상으로 1GB에 75~100원의 이용 요금을 부과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한 증권사에서 이를 기초로 매출 예측을 했다. 동영상 트래픽은 다음이 월 2억7271만분(111.8PB). 네이버가 2억3806만분(97.6PB). 유튜브가 1억3715만분(56.2PB) 정도인데 1GB에 100원씩 과금을 하면. 다음은 연 1342억원, 네이버는 1172억원. 유튜브는 675억원을 통신사들에 내야 한다.

미국에서도 동영상 서비스가 전체 네트워크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업스트림의 경우 P2P 서비스인 비트토렌트가 47.6%, 넷플릭스가 7.7%를 차지한다. 다운스트림은 넷플릭스가 32.7%, 유튜브가 11.32%, 비트토렌트가 7.6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TV 서비스가 확산되면 네트워크 트래픽 부담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그룹으로 변신을 선언한 KT가 동영상 콘텐츠 사업에 직접 뛰어들 경우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망중립성의 기본 원칙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있다. 대용량 콘텐츠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네트워크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서비스를 선별 차단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통신사들이 이용자들의 통신을 감청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상황이 이런데도 방통위는 일방적으로 통신사들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네트워크 비용 분담을 요구하기에 앞서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에 이르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서비스를 차단 또는 차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프리미엄 서비스에 추가 과금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이 경우에도 프리미엄 서비스를 한다는 이유로 기존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그걸 감시하고 규제하는 게 방통위가 해야 할 일이다.

네트워크 자원이 제한돼 있는 무선 인터넷의 경우도 주파수 자원이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통신사들은 주파수 대역이 부족하다며 지상파 방송 주파수까지 욕심을 내고 있지만 2G에서 3G, 4G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주파수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필요하다면 공유 주파수 대역을 만들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강장묵 동국대 교수는 “통신사들이 통신감청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콘텐츠의 내용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는 말만 믿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메일을 보낼 때 (표준이 공개되지 않은)아래아 한글로 작성하고 알집으로 압축을 한 뒤 암호를 걸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기업의 경제 논리에 국가 및 시민의 망이 관리된다면, 장래에는 특정 정당과 정치인의 신념에 따라 망이 통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병선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사는 "통신사들이 트래픽 관리 현황 등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원칙이 세워지면, 약관 변경만으로 제한과 차별을 정당화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방통위가 통신사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면서 “방통위의 트래픽 관리 기준은 망중립성 원칙 폐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트래픽 관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네트워크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으며 비용 분담이 필요하다는데도 모두가 동의한다. 다만 방통위 기준안처럼 통신사들이 자의적으로 이용자들의 트래픽을 감청하고 트래픽 혼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쟁 서비스의 시장진입을 차단하는 방식은 시장 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도 크다. 사안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대부분 언론이 논란을 단순 중계하는데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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