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은 부시 정권의 네오콘적 대외정책이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자멸했음에도, 그 정책을 답습했다.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과 진영논리에 바탕한 한미 동맹 강화 정책이 그것이다.”

권태선 편집인의 한겨레 7월 10일자 30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소동의 교훈>이라는 칼럼 일부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소동은 미국 부시 정권의 네오콘을 흉내 내다 쏟아지는 역풍에 ‘앗 뜨거워’하며 화들짝 놀란 이명박 정부의 현실을 보여준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6개월 후면 차기 대통령이 뽑히게 되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 몰래 일본과 엄청난 약속을 하려 했다는 점이다. 일본과의 군사협정은 한국 국민의 정서를 건드리는 휘발성 강한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보며 이명박 정부를 뿌리부터 흔들었던 2008년 미국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와 연결 짓는 분위기다. 정부의 미숙한 일 처리와 빗나간 소통 의식이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박광희 한국일보 국제부장은 7월 9일자 <친미에 눈먼 MB의 외교>라는 칼럼에서 “한일군사보호협정은 6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슬며시 처리하려다 들통이 났는데 실은 이미 두 달 전인 4월 23일 가서명을 했던 것이다. 국회에도, 정치권에도 알리지 않고 민간의 의견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려 한 것”이라며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미국에만 기대면 뭐든 다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집권 말기에도 변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책 중에서도 ‘네오콘’과 같은 실패한 안보정책을 답습하려다 보니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러면 그렇지” 정도로 냉소적 시선으로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안보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한민국 영토가 북한군에 의해 포격을 당했고, 국민들은 TV 화면을 통해 연평도가 화염에 휩싸인 장면을 경험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강경일변도 외교·안보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적 위상은 오히려 위축되는 분위기다. 근원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선택은 ‘꼬리 자르기’다.

이번에도 대통령 사과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청와대와 외교부 실무 당국자만 경질하더니 후속대책은 감감 무소식이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청와대는 절차 전반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김태효 기획관의 사표수리와 외무부 조세영 동북아국장 교체로 더 이상 문책은 없다는 입장”이라며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몰랐고, 국무회의 밀실처리를 했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김태효 기획관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하라는 대로 한 허수아비였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적당한 선에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취하고 여론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하면 서서히 이슈에서 멀어지는 장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악재 탈출법’이 아닌가. 그러나 언론의 프레임 전환을 통해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 자체이기 때문이다.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은 내일신문 7월 6일자 23면 <역사의식 부재를 드러낸 대통령>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국정을 맡아 많은 사람들이 ‘정부 시스템의 붕괴’라고 걱정하는 혼란상황을 만들어냈다.…‘친일적’인 언행과 정책까지 드러내 국민감정을 건드렸고, 정치력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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