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유무선 망에 장애를 유발하지 않았는데도 관련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을 두고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통신사의 이해 관계에 편중돼 있고,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이스톡 등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를 차단해 발생한 논란이 다른 서비스 차단까지 우려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병선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사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트래픽 관리, 무엇이 문제인가?’(주최 망중립성 이용자포럼) 토론회에서 “최근 보도로 알려진 방통위의 트래픽 관리안에는 망 중립성 원칙을 훼손하는 문장이 나오거나, 내용의 앞뒤가 안 맞고,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 뒤섞여 있어 ‘이게 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정말 통신사들이 다른 장난을 치지 못하게, 이용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게 관리안이 투명하게 규정되고 있는지 방통위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선 이사는 트래픽 관리안에 △통신사가 약관으로 공지하면 모든지 할 수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 △‘망 혼잡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같은 애매한 표현 △일정한 기술 표준을 따르지 않는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차별하는 조항 등을 문제 삼았다. 통신사가 망을 이용하는 이용자나 콘텐츠 사업자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망 중립성의 ‘투명성, 차별금지, 차단금지’ 원칙을 통신사가 ‘트래픽 관리’라는 명목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방통위의 ‘인터넷 망에서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안)’에는 망 혼잡, 트래픽 과부하 등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트래픽이나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관련 미디어오늘 6월25일자 기사<대선 앞두고 스마트폰 ‘앱 차단’ 규제 추진>)

“기술 특성상 망에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대해 혼잡 또는 장애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외 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표준을 준수할 것을 사전에 권고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따르지 않는 콘텐츠 등을 망 혼잡 시 우선 차단”, “망 혼잡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P2P 트래픽에 대해 특정 조건하에서 제한” 등의 조항이 다음쪽이 우려한 내용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망 중립성을 훼손하는 가이드라인이자, 통신사에게 자의적으로 트래픽 관리를 허용하는 위험한 내용”이라고 밝힐 정도로, 시민단체나 학계쪽의 우려도 제기됐다.

방통위가 트래픽 관리안에 ‘P2P(peer-to-peer) 서비스’가 아니라 ‘P2P 트래픽’이라고 명시해, 파일 공유 서비스 이외에 컴퓨터 간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대해서도 트래픽을 명목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은 올해 하반기부터 KT가 미국산 패킷 솔류션 프로그램 DPI(Deep Packet Inspection)기술을 도입하고 ‘변칙 P2P’를 차단하는 것을 두고, “KT가 지금은 분명하게 불법적인 웹하드 업체를 차단하겠다고 얘기하는데, 점점 확대되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P2P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원철 실장은 “KT의 궁극적인 목적은 웹하드 업체를 고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용량 트래픽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 게임 업체들에 과금을 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클 것”이라며 “특정 서비스만 골라서 차단을 하고 그리고 나서 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네이버의 스포츠 중계, 포털의 음원, 게임 업체들 모두 P2P 방식”이라고 밝혀, ‘선 서비스 차단, 후 과금’ 방식을 전망했다. 올해 초 KT는 삼성 스마트TV가 과다 트래픽을 차지한다며 일방적으로 망을 끊고 망 대가를 요구한 바 있다. 향후에는 통신사가 포털 서비스를 상대로 이 같은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KT는 2017년부터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올레TV스카이라이프와 KT IPTV 등으로 방송을 보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다”며 “이런 계획에 가장 위협이 될 한국형 동영상 서비스인 웹하드를 차단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정환 국장은 또 “지난 2008년 미국의 컴캐스트는 데이터 총량제를 도입하면서 자사 동영상 서비스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며 “통신사들이 자사 서비스의 경쟁 우위를 위해 경쟁하는 타사 서비스를 제한하는 반시장적 행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신사가 보이스톡 등 타사 서비스 차단에 수익 하락, 비즈니스 모델 훼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에 대해 “통신사 설립은 허가제인데,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했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이익이 났겠나”라며 “통신사가 비용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도 안 하고 돈이 없다고 하는 건 문제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통신사가 이 같은 서비스를 차단하면서 감청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DPI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오병일 활동가는 “통신사가 이용자의 트래픽을 통제하는 것은 통신 비밀을 침해하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잠재적 요인이 있다”며 “이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현행법 위반 문제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7조에 따르면 ‘감청이라 함은 전기통신에 대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전자 장치·기계 장치 등을 사용해 통신의 음향·문언·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는 것’으로, 통신사가 DPI 기술로 사용자 동의 없이 패킷을 보고 차단하는 경우 법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장묵 동국대 전자상거래연구소 교수는 “통신사가 DPI로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은 디도스 공격, 바이러스 위협,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을 경우 등으로 한정돼야 한다”며 “지금은 통신사가 끊임없이 망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고, 이용자들의 이익은 논의에서 배제돼 있다”고 우려했다. ‘DPI 장비가 어떤 장비인지, 패킷을 얼마나 깊이 볼 수 있는지,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면 어떻게 차단이 되는 것인지’ 등 통신사가 이용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프라이버시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되자, 청중석에서 김보라미 변호사는 “이용자 입장에서 볼 때 트래픽 관리안이 악용될 여지가 상당하다”며 “합리적 트래픽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라고 지적해, ‘트래픽 관리안’ 폐지를 주장했다.

한편, 방통위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오는 11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학계 전문가, 업계, 소비자 단체 등이 참여하는 ‘트래픽 관리안’ 관련 토론회를 연다. 방통위는 보도자료에서 “토론회 개최 결과 등을 토대로 합리적 트래픽 관리방안에 대한 정책 방향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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