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년의 역사에서 배울 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 것도 없이 암흑 속에서 있어라. 그날 그날 산다 해도...”.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지 않고 되새겨야함을 일깨워주는 J. W. 괴테의 말이다.

한․일 군사정보비밀보호협정 밀실 추진 파문을 통해 드러난 정부와 여당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독도와 과거사 문제를 놓고 건듯하면 침탈의 망언을 되풀이하는 일본과 군사동맹의 손을 잡겠다니 말문이 막힌다.

새누리당은 “국가안보를 위한 외국과의 군사협력을 괜한 반일감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일 군사협정과 과거사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고 강조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단순한 ‘반일감정’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협력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 침략사와 관련한 사죄는 ‘자학사관’이라며 제대로 된 반성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식민지근대화론’ 따위로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망언을 거듭 해왔다. 독도 문제도 틈만 나면 침탈의 야욕을 드러낸다.


일본이 과거 잘못된 역사를 뉘우쳤다고 하더라도 사정이 달라지면 언제라도 침탈의 야욕을 드러내는 게 엄혹한 국제사회다. 하물며 일본이 반성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은 언젠가 기회가 오면 침탈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부리겠다는 속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과거사 문제와 별개의 것이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군사강국이 된 일본이 침탈의 야욕을 더욱 노골적으로 부리게 되면 어쩔 텐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이 이미 심상치 않다. 일본은 지난 6월 20일 원자력기본법을 고쳐 핵무장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동북아시아의 핵 경쟁이 촉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은 핵폭탄 1만기를 곧바로 만들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터다.

지난 2008년 5월 우주기본법을 마련한 일본은 이번에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법도 개정했다. 우주 관련법 정비로 우주기술의 군사적 이용을 위한 우주 개발을 본격화할 태세다. <마이니치신문>의 2008년 5월 22일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고성능 정찰위성, 통신 감청위성 등 첨단 군사위성을 자유롭게 개발해 독자적인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할 구상이라고 한다.

일본이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왜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서겠는가.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일본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상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 군사정보협정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위한 중요한 토대로서 일본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이렇게 도와줘야할 의도와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번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문에서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가 봐도 국가의 중차대한 안보의 문제임이 분명한데도 가서명 단계에서부터 국무회의 의결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국회 몰래 숨긴 채 마치 쫓기기라도 하듯 밀실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라도 있었는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오래 전부터 한․미․일 3각 군사동맹 차원에서 한․일 군사협력 확대를 강력하게 주문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담에서도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을 강조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빨리 체결하라고 촉구했다는 보도다.

이런 미국의 재촉에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일 군사협정의 경우 국민 정서상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채 협정 체결을 서둘러 추진하다 끝내 일본과의 서명 체결 1시간 전에 보류하는 외교 망신을 당하는 일까가지 벌어졌다.      

미국이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담에서 한국 쪽에 도대체 어떤 내용의 압박을 가했는지, 그 강도가 얼마나 강했는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회담 공동성명의 핵심이 한․미․일 3각 동맹의 구축이었으며, 그 목적이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방어체제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부는 파문의 경위를 국민에게 낱낱이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동북아의 신냉전 기류나 구도와 관련이 없다지만,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기만적인 주장일 따름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턱이 있겠는가

중국의 반응은 벌써부터 전례 없이 민감하다. 한․일 군사협정은 중국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므로 중국이 모든 영향력을 이용해 막아야 한다며  “한국이 벌집을 건드렸다”는 투의 강경한 발언들이 터져 나온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아직도 최소한의 보고 절차 형식만 갖춘 채 협정 체결을 강행할 기세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협정을 국회의 비준, 동의도 받지 않고 처리하겠다니 도대체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일본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등 침탈의 야욕을 버리고 진정한 평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 한,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침탈의 화란을 자초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어찌 도와줄 수 있겠는가.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나 3각 안보동맹 체제의 추진도 한민족의 재앙이 될지도 모를 동북아의 신냉전을 불러일으킬 게 너무나도 뻔하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전략적 과제는 오로지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의 실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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