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영·유아의 양육 및 보육비를 국가가 전액 지원할 것을 약속했던 정부와 돌연 '재벌아이는 안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전면 무상보육에 제동을 걸었다. 몇몇 언론들도 비슷한 논리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3차관은 3일 "내년부터 부모들에게 보육과 양육 간 선택권을 주는 방향으로 현행 보육지원 체계를 '재구화'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지금과 같은 제도에서는 재벌가 아이들에게도 정부가 보육비를 대주게 되는데, 이것이 공정한  사회에 맞는 것이냐"며 "고소득층에게 가는 양육수당을 더 주는 것이 오히려 사회정의에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을 이 소식을 4일 1면에서 전했다. 이번 방침에 영향을 받은 가구가 한 두가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언론의 관심은 당연하다.    

김 차관의 말은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무상' 시리즈는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는 이명박 정부 인사의 인식이라고 본다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제도가 시행된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전면 무상보육를 추진한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정부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었다. 2012년 예산안 심의에 한창이던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는 2011년과 마찬가지로 만 0~2세 영·유아 보육료 지원은 부모 소득 하위 70%만 지원받는 안을 제출했고 이 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던 12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갑자기 보육료 3697억 원 증액안이 올라왔다. 당정이 낸 안으로 만 0~2세 영·유아 보육료 지원을 소득과 상관없이 전액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결정으로 집행될 금액은 1조8600억 원이다.

하지만 만 0~2세 영·유아 가정에게는 양육비를, 어린이집 등을 다니는 만 3~4세 가정에는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이 상식이다. 당시 이를 두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야권·시민사회에 톡톡히 망신 당한 당정이 총선을 앞두고 복지 정책을 급하게 내다보니 현실과 맞지 않은 정책이 나왔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찌됐든 한나라당은 올해 예산안에  0~4세 무상보육과 든든학자금 금리인하 등 이른바 '박근혜 예산' 8000억 원을 배정할 수 있었다. 보수 언론에서는 2012년 예산안에 "박근혜표 민생예산이 반영됐다"고 주요하게 전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1월 15일 정부는 만 0~2, 5세 아동에게 집중된 무상보육 혜택을 2013년부터 만 3~4세 아동에게도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만 0~2세 차상위계층 가구까지만 지급되던 양육수당을 2013년부터 전 계층에게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사달이 난 쪽은 지자체였다. 이제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서로 절반 정도씩 (서울시는 지자체 80%, 중앙정부 20%) 보육비를 분담해왔다. 당정이 지자체와 상의 없이 덜컥 보육비 지원 대상을 늘려버리자 지자체들을 328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판에 몰렸다.

그 결과가 바로 부자동네로 손꼽히는 서울 서초구가 무상보육을 중단할 위기에 몰린 사태다. 경향신문은 4일자 머리기사 <서초구 무상보육 10일 중단 위기>에서 "서초구에 이어 구로·송파·중구 등도 8월이면 당장 무상보육 재원이 소진되는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된다"며 "'영·유아 무상보육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고 전했다. 그리고 재정부는 무상보육을 선별지원 방침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정부와 여당이 총선 승리라는 현실 정치 과제에 급급해 지자체의 재정 상황과 영유아 가정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벌인 데 있다.

그런데도 재정부는 뜬금없이 '재벌아기'라는 해묵은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일부 언론들도 이 프레임에 동조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 소식을 12면에서  <부잣집 아기는 무상보육 지원 제외 추진>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하며 정부의 변명에 손을 들어줬다.

중앙일보도 이번 방안이 나온 배경이 '재원 부담'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보육비 지원은 지방정부가 절반 부담해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보육지원 대상 확대로 지방정부의 보육비 재원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지적하지 않은 채 '부자 아이까지 지원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편 결과 재정에 부담이 왔다'는 논리를 은근슬쩍 짚어넣은 셈이다. 조선일보도 이 소식을 1면에서 <고소득층은 무상보육 제외>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 선거캠프는 대선을 앞두고 각종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쏟아낼 것을 예고했다. 이들 언론이 앞으로 나올 정책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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