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사들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의 삼성가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쪽에 부정적인 기사 제목을 수정하거나 기사 자체를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언론사쪽에서는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고, 삼성쪽에서는 해당 기사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 전화를 했지만 ‘일상적인 홍보 활동’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언론이 재벌총수 일가의 보도에 유독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7일 열린 삼성가 유산 상속 관련 2차 재판을 전한 온라인 기사와 다음 날 일간지 기사를 분석한 결과, 국민일보와 이데일리는 기사 제목이나 부제목이 애초 온라인에 송고된 기사와 달리 수정됐고 아시아경제는 아예 기사가 삭제됐다. 세 언론사들이 기사 제목이나 부제목에 공통적으로 표현한 단어는 “이건희, 도둑놈 심보”였다.

당시 재판에서 이맹희 전 회장쪽 변호인은 상속회복 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지나 상속 권리가 소멸됐다는 이건희 회장쪽 변호인을 상대로 “몰래 숨겨놓고 감추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논리는 시쳇말로 ‘도둑놈의 논리’”라며 “도둑놈 심보로 (차명재산을) 은닉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 바 있다. 재판이 끝나자 일부 언론들은 이맹희 전 회장쪽 변호인의 “도둑놈 논리”, “이건희 도둑놈 심보”를 기사 제목 등에 담아 보도했지만, 현재 온라인에 남아있는 기사에서는 이 같은 제목이 모두 사라졌다.

아시아경제는 <“도둑놈 심보”.. 과한 표현도 등장한 삼성家 소송(종합)>기사를 보도했지만, 현재 네이버 등 포털 뉴스에서 기사 제목만 남고 기사가 삭제된 상태다. 이데일리는 애초 <“이건희, 도둑놈 심보” vs “이맹희도 알고 있었다”> 제목으로 기사를 송고했지만, <삼성家 상속소송 2차 변론기일..날선 공방 이어져>로 제목이 바뀌었다.

국민일보의 경우에는 두 차례나 기사 제목이 수정됐다. 국민일보는 애초 <삼성家 상속재산 분쟁 두 번째 재판>에서 <삼성家 재산 분쟁 2차 공판도 막말>로 바뀌었고, 최종적으로는 <삼성家, 이번엔 ‘참칭 상속인’ 공방>으로 지면에 보도됐다.

특히, 부제목이 <이맹희측 “이건희, 도둑놈 심보”>에서 <맹희측 “이건희, 참 나쁜 심보”>로 바뀌었고, 지면에는 <맹희측 “돈 숨기면 자기 것 되나”>로 보도됐다. 반면, 이건희 회장쪽 주장을 담은 부제목은 <이건희측 “참칭상속인으로 봐야”>에서 <건희측 “참칭상속인으로 봐야”>로 바뀐 뒤 제목에 ‘참칭상속인’으로 반영돼 보도됐다.

이를 두고 해당 언론사측은 삼성쪽과의 관련성을 일체 부인했다. 아시아경제 이규성 사회문화부장은 “나도 정확하게 어떻게 됐는지 (기사 삭제 경위를)알 수 없다.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며 “(삼성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지) 그런 점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노석철 사회부장은 “참칭 상속인이 핵심 쟁점이어서 이를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기사가 바뀌었다”며 “삼성쪽 전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정동근 정치사회부장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 쪽에서는 일부 언론사에 전화를 건 사실을 시인했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김성홍 부장은 “(도둑놈이라는) 발언은 법정에서 판사가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제지를 했고 CJ 변호인측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철회한 내용”이라며 “이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이데일리 출입 기자에게 전화해 선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일상적인 홍보 활동으로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사에서 삼성의 요청을 거부한 경우도 확인됐다. 한국일보 하종오 사회부장은 이번 재판 보도와 관련해 “삼성쪽에서 전화는 왔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하 부장은 “‘도둑놈 심보’라는 말은 기사에 처음부터 들어가 있었고 초판부터 최종판까지 수정 없이 그대로 나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사례는 삼성 쪽이 이번 기사와 관련, 국민일보, 아시아경제, 이데일리 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사에 전화 등으로 기사 수정 등을 요청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28일 전국단위 일간지에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아예 관련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일간지 9곳에서 한겨레만 <“이건희쪽 말은 도둑놈 논리” 이맹희쪽, 차명주식 맹비난>이라고 삼성쪽에 비판적인 제목을 뽑아 보도했을 뿐이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주요 광고주인 재벌 기업들은 자사에 불리한 기사는 빼달라고 회유 또는 압력을 넣고 유리한 기사는 크게 써달라고 요청하는 게 일상적”이라며 “이와 관련해 삼성은 거대 광고주로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정임 교수는 “재벌들은 오너의 집안, 신상 관련 일을 굉장히 민감해 하고 있다”며 “이번 재판 사례는 기업의 문제나 부조리에 대해 비판을 해줘야 하는 언론이 이 기능을 포기하거나 타협해 일정 부분 외면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문 중에 아시아경제 박희준 사회부장을 이규성 사회문화부장으로 수정합니다. 7월3일 오전 10시27분.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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