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파업의 핵심화두인 제작자율성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법 제4조 4항을 개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방송법 4조 4항에 따르면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 등 내외부 압력으로부터 제작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한 취지로 '편성규약'이 법으로 명시돼 있지만 갈등 분쟁 시 조정 장치와 이행조치가 없어 선언적 의미로만 그치고 결국 제작 자율성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 개정안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낙하산 사장을 통해 정권 비판적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MC가 축출되거나 방송이 불방되는 등 사실상 관제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것도 제작 자율성 침해를 막을 수 있는 방송법이 유명무실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문제 의식이다.

25일 국회 신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작자율성 보장과 확대를 위한 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박영선 언론개혁연대 대외협력국장은 기존의 방송법 4조 4항에 편성위원회 구성, 중재 기구 설치 등 의무조항이 들어간 개정안을 발표했다.

방송법 개정 어떻게?

현재 방송법 제4조 제4항은 '종합 편성과 보도전문 편성을 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포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 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햐여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개정안에는 제작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방송편성규약'이라는 용어를 '방송제작 편성규약'으로 하고,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라는 전제조건도 '취재, 제작 및 편성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로 변경됐다.

특히 기존 방송법에는 '취재 및 제작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제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편성규약 제정의 주체가 어디에 있는지, 노사간 합의 여부로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 등이 명확치 않아 각 방송사마다 편성규약 제작 과정을 놓고 오히려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따라 개정안에는 취재 및 제작 종사자 대표를 ‘방송사의 임원을 제외한 기자와 프로듀서 총회를 거치거나 민주적 방법으로 선출된 자’로 명확히 하고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통해 방송 편성규약을 제정하도록 했다.

개정안에는 편성규약이 실제 집행될 수 있는 장치로 '방송 제작 편성위원회'를 신설하도록 했다. 편성위원회는 방송사 사장과 제작 종사자 대표로 해서 각 5인씩 구성하도록 했고, 회의가 결렬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시는 방송사업자 추천 2인, 방송제작종사자 대표 추천 2인, 시청자 위원회 위원 3인 등 총 7인으로 구성된 방송제작편성조정위원회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조정위원회 위원장은 시청자 위원회 추천 위원이 맡도록 해 방송의 편성권은 국민에게 있고 방송사는 이를 위임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송사업자 측 2인과 제작종사자 대표 측 2인의 의견이 합의되지 않을 때 실제 결정권이 시청자 위원회에 있는 셈이다.

개정안에는 조정위원회 조정 결정에 따르지 않거나 이행하지 아니한 자에 대해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는 처벌 조항도 뒀다.

박 국장은 "그동안 수많은 공정방송위원회와 편성위원회 등 회의가 있었으나 이명박 정권 들어 낙하산 사장에 의해 공정방송과 관련된 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거나 지연됐다"며 "회의가 열려도 제작 현장에서는 시정되지 않고 사실상 사후 약방문이거나 회의를 위한 회의여서 방송의 공정성은 개선되지 않고 제작 자율성 또한 개선되지 않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처벌 조항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제작 자율성 침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한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강력한 법제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현실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는 반론도 나왔다.

임장혁 YTN 공정방송실천 위원장은 "공정방송위원회는 어떤 결론을 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정말 큰 단점은 공방만 벌이는 사태가 되면서 낙하산 사장들에게 오히려 성적표가 돼버린다는 현실"이라며 "내곡동, 4대강 문제 등 사내 논란이 벌어지면 청와대 입장에서는 참 잘하고 있는 사장이고, 밀어붙이라는 결론 밖에 안 된다"고 토로했다. 임 위원장은 "공방위가 무엇인가 결론을 낼 수 있는 재판정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사내에 맡기지 않고 법제화로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 방송사 국장 직선제-임명동의제 도입 방안 적극적

이날 토론회에서는 방송법 개정 이외에 국장의 직선제 혹은 임명동의안을 도입해 제작 자율성 침해 문제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됐다.

성재호 KBS 본부 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은 "신문사에서는 국장에 대한 직선제가 도입돼 있지만 방송사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뉴스, 시사, 제작 부문의 주요 국장에 대한 직선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호원 SBS 공정방송실천위원장도 "국장급에서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며 "본부장이 아닌 국장이 실무를 맡고 있어 평가 받고 비전을 제시하면 검증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장혁 위원장은 "보도국장을 사장이 뽑았는지 후배들이 뽑아줬는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며 "일선 취재 부서의 부장급은 친한 사람으로 둘 수밖에 없고, 현장 기자는 성향에 따라 포진을 시켜버린다"고 토로하면서 "최소한 보도국장에 대해서는 사장 임명이 아니라 구성원 민의를 의무적으로 언론사들이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안전장치"라고 지적했다.

장지호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언론사의 문제를 인사권, 경영권 등 상법의 영역으로 스스로 규정하면서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민형사상 손해배상 등과 같은 공세를 당하고 있다면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상당한 부분에 있어서 경영진과 자본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는 투쟁적, 실효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제작 자율성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본부장 중간 평가제도 개선 ▲편집회의 제작종사자 대표 참석 ▲공정방송위원회 긴급조정제도 도입 ▲뉴스, 프로그램 원고 초안 기록 유지 등이 제기됐다.

박영선 국장은 “구체적인 방송법 개정안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국장 직선제를 도입하는 안을 개정안에 담는 방안이 오늘 새롭게 제안됐다”며 "민주통합당 신경민 의원을 중심으로 오는 7월 개정안을 보강해서 발의해 대선 전까지 법안 마련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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