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보이스톡을 차단하는데 사용되는 통신사의 기술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지 검토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를 둘러싼 서비스 논쟁이 이용자들의 인권 문제까지 확산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관계자는 18일 통화에서 “시민단체들이 통신사의 DPI에 대해 진정서를 낸 것에 대해 실무적인 검토는 거의 끝났다”며 “DPI 기술이 인권 침해나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는지 위원들이 결정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카카오나 다음에서 mVoIP 서비스와 관련된 실질적인 얘기를 들었고 사실 관계는 다 알고 있다”라며 “최근에 카카오가 (손실률)데이터를 공개한 것과 관련한 기본적인 데이터는 받았고 추가적인 질의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가 실무적으로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판단에 따라 DPI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시민단체에서는 작년 11월23일 인권위에 DPI 기술의 사용을 규제해달라는 진정서를 보내는 등 DPI 기술을 우려하고 수개월 간 인권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DPI(Deep Packet Inspection)는 데이터 전달의 단위인 패킷을 분석해 트래픽을 관리·통제하는 기술이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지난 2월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 발행하는 이슈리포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DPI 기술은 애초에 바이러스나 웜의 차단, 디도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돼 사용돼 왔다. 보안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기술이 DPI이기 때문에, DPI는 네트워크에서 이동하는 운송물의 내용인 데이터의 영역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오 교수는 “(DPI는) 필연적으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촌평했다. 통신사가 DPI 기술을 통해 데이터의 내용을 보고 네트워크를 이동하는 데이터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데이터가 전화 통화 시 음성 패킷이고 이를 차단할 경우 통신사가 개인의 전화를 ‘감청’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진보네트워크는 작년 11월23일 인권위에 낸 진정서에서 “DPI 기술은 단순히 서비스의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 통신 내용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는 패킷 감청이 가능한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들은 “이는 내용의 필터링이나 차단, 내용의 조작, 감청 및 검열 등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이러한 기술을 채용하는 것만으로도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작년 3월 시민사회단체들은 당시 김형근 전 교사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국정원이 패킷 감청을 한 것으로 드러나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헌재는 패킷 감청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통신사들이 인권 침해, 위헌 소지가 있는 DPI 기술을 보이스톡 차단에 사용한 점은 중대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통신사가 감청을 통해 보이스톡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는지’ 묻자 “DPI 기술이 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기술이)일정한 규칙으로 (통화)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도 “지금 현재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인터넷 전화를 차단하기 위해 DPI 기술을 쓰는 것은 명백하다”며 “확인이 됐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기자와 만나 “KT가 명백히 DPI 기술을 쓰는 것은 확실하다”며 “이 기술로 콘텐츠 내용까지 볼 수 있는 개연성이 기술적으로 열려 있다”고 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통신사가 보이스톡 같은 특정한 앱을 차단하는 것은 이미 통신사가 차단할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게 바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KT는 올해 하반기에 미국산 DPI를 도입해 시범사업까지 나서는 상황이다. KT 홍보팀 관계자는 통화에서 “DPI 시범사업이 6월부터 시작하는데 20~30억 원 규모로 (외국 솔류션 업체인)미국 샌드바인사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 감청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전자신문은 지난 5월25일 기사에서 “800억 원대 패킷 감청 솔류션”이라며 “(이 기술의 도입에 대해)KT 망을 쓰는 국가정보원 등 일부 기관도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통신사 중에서 KT가 나서서 DPI 기술을 대거 도입해 트래픽을 명목으로 스마트 TV, 보이스톡 등의 서비스 차단에 나서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 15일 클라우드 기술 개발 자회사를 찾은 자리에서 보이스톡에 대해 “매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언론은 <무료통화 총대 멘 이석채 회장 “통신망 블랙아웃 올 것”>(오마이뉴스)로 이 소식을 전할 정도로 KT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KT와 SKT의 모바일 인터넷 전화에 대한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 인권위가 DPI 기술의 인권 침해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이스톡의 역무를 결정하는 시점이 조만간 겹칠 것으로 전망돼, 보이스톡을 둘러싼 망중립성 이슈가 또 다시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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