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환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단순히 정보에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사소통과 정치, 경제적인 상호작용도 수행한다. 인터넷은 우리 삶의 플랫폼이다. 그만큼 인터넷은 우리 삶의 공적 영역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인터넷의 망은 국가망도 공공망도 아니며 철저하게 민간사업자의 사유자산이다. 이처럼 삶의 공공적 플랫폼이라는 특성과 사적자산이라는 인터넷의 모순적 성격 때문에 망중립성의 원리가 중요해진다.

인터넷의 통신이용자는 정보의 수혜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보의 제공자이다. 오늘 세계 인터넷 컨텐츠의 80% 이상은 모두 일반 개개인 이용자가 생산하여 제공한 것이다. 인터넷 이용자는 인터넷 접속을 통해서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세계 모든 곳에서 산출되고 있는 정보와 서비스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인터넷 이용자는 이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에 자신이 보유하는 다양한 정보기기, 단말장치를 통해서 그러한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할 것을 기대한다. 실제로 이러한 인터넷 세계의 다양한 정보와 혁신적인 서비스는 바로 이 같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보편성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 인터넷 세계에서 어떤 정보나 서비스의 성공 여부는 바로 그러한 정보나 서비스,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이용자들이 얼마만큼 접근하고 참여하느냐에 의하여 결정된다. 결코 그러한 것들의 성공 여부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접속제공사업자나 규제 당국에 의해서 결정된 적이 없다.

그러나 망사업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망의 보유자라는 이유에서 몇몇 정보나 몇몇 서비스나 몇몇 단말장치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제한하거나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과도한 트래픽 때문에 인터넷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거나 망사업자들이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인터넷 환경은 유선망이나 무선망이나 모두 3대 통신사업자의 독과점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접속서비스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것은 이들 3대 기간통신사업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1995년에 아이네트가 처음으로 전화접속을 통한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대중적으로 보급할 때 아이네트는 국가규제를 받지 않는 부가서비스로 시작했다. 1998년 두루넷이 초고속인터넷서비스(광대역 인터넷서비스)를 시작할 때에도 케이블서비스에서 시작했다. 기간통신사업자인 KT의 가입자선로(local loop)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KT는 1999년에 가서야 비로소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시작했다. 즉, 우리나라 인터넷은 이들 독과점 기간통신사업자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모두 타 사업자들에 의해서 자율경쟁을 통해 시장을 확대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대 기간통신사업자들의 독과점 행태는 변한 적이 없었다. 200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기간 역무로 규정하여 국가규제대상으로 만들 때 당시 정통부는 KT 등이 인터넷망의 상호접속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사업자로서 독과점 행태를 보이는 문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명분을 내세웠으나 기간 역무 지정 이후에 3대 통신사의 독과점형태는 오히려 더욱 강고해졌다.

당초 정통부가 우려했던 이들의 독과점행태는 오히려 기간사업자들의 상호접속을 규정하는 고시 때문에 보장되었다. 이들 3대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인터넷망과 망을 연결하는 상호접속에서 동등접속(인터넷접속고시에서는 직접접속, peering)을 이들 독과점 사업자 상호 간에만 허용할 뿐, 여타 사업자에게는 일방적으로 가격수준을 제시하는 중계접속(transit)만을 허용하고, 자사의 네트워크 구간 안에서는 그것이 인터넷 서버 집중 관리업체(Internet Data Center, IDC)이든 대용량 컨텐츠의 부하를 분산시키는 데 이용되는 CDN(Contents Delivery Network)이든 모두 타사 망의 연결을 거부하고 트래픽량에 비례하여 중계접속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만 접속을 허용하고 있다. 동등접속을 기피하는 이 같은 행위(de-peering)로 인해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은 자사망 경로로만 트래픽이 집중되는 병목을 만들고 타사망과는 독과점 사업자 간의 동등접속구간만을 통해서 트래픽이 오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트래픽 분산을 거부하고 병목구간을 강화시키는 기형적인 네트워크 구성형태를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인터넷망 구성 형태는 가장 혼잡(congestion) 친화적이며, 가장 반경쟁적(anti-competitive)인 망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나라 인터넷망의 트래픽 혼잡의 문제가 있다면 – 사실은 혼잡문제가 있다고 하기 보다 혼잡을 핑계삼아 다양한 컨텐츠나 서비스의 유통을 제한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 그것은 바로 이들 독과점 사업자들이 자초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넷플릭스(Netflix)나 훌루(Hulu)나 아이플레이어(iplayer)와 같은 서비스가 생겨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들 백본 독과점 사업자들이 높은 중계접속료를 부담해야 하는 중계접속만을 고수하여 과도한 원가부담으로 사업채산성이 안 맞기 때문에 관련 서비스가 아예 진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비교적 일찍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전화서비스인 다이얼패드(dial Pad)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에도 우리나라 통신 규제 당국은 별정사업자등록을 요구했고, 유선전화와 같은 통화품질을 보장하지 못하므로 소비자가 피해보상요구를 할 때 배상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라고 요구함으로써 처음부터 (기존 유선전화서비스의) 경쟁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부과함으로써 서비스 혁신을 막았다. 이후 2005년까지 만 5년동안 통신규제당국은 인터넷전화의 착신번호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인터넷전화서비스 보급을 제한했고, 2005년에 인터넷전화 착신번호를 070번호로 부여할 때에는 다시 통화 품질 등을 내세워 “가상 트래픽 점유를 가정”한다는 놀라운 상상력의 전제 위에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초고속인터넷 망이용대가”라는 것을 착신번호 부여조건으로 부과하였다. 이로 인하여 작년까지 바로 이 망이용 대가 때문에 기존 기간 통신사업자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별정사업자들이 시장경쟁에서 패퇴하여 90% 이상의 인터넷전화서비스를 다시 기존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점유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초고속인터넷서비스나 인터넷전화서비스나 현재 우리나라 통신규제제도에서는 모두 기간 역무로서 국가의 강력한 규제대상이다. 현재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이들 기간통신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역무제공을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천만 원 이하의 벌금”(동법 제95조 제1호)에 처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KT가 스마트TV 관련 트래픽을 공개적으로 차단하는 역무제공 거부행위를 했음에도 통신 규제당국은 이를 “강력히 경고”만 하고 있다. 명백한 역무위반행위조차도 업계 자율로 “방치”하겠다는 통신규제당국의 이상한 행태가 현재 “소위 망중립성 논의”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망중립성이란 바로 이러한 망에 대한 집중적 지배력을 통해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거나 초과지대를 수취하려는 반경쟁적 행위를 방지하자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오늘은 슬로우뉴스와 기사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원문 주소는 http://slownews.kr/3683.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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