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말들 하지만 보릿고개 옛말되고, 세계에서 G20 안에 드는 나라 되면서 앞만 보고 냅다 달리기보다 살면서 한 호흡 가다듬고 쉬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주말이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전국이 알록달록하다. 그 사람들 대부분 가볍게는 전화기에 달린 내장 카메라든,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똑딱이’ 카메라든, 아니면 어지간한 갓난아이 무게와 맞먹는 DSLR 카메라든 하나씩은 들고 간다. 멋진 풍광을 담든, 그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한 자신과 동행의 모습을 담든, 눈과 마음 뿐 아니라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그렇게 담긴 기록을 예전에는 사진첩에 정리해서 혼자 꺼내보고 즐겼다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온라인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공유한다. 뿌듯한 자랑일 수도 있고, 벅찬 추억일 수도 있는 이 사진들 가운데는 아는 이들끼리 돌려 보기에는 아까운 멋진 작품들도 있다. 그저 구도가 좋거나, 화질이 좋거나, 색감이 좋은 정도를 넘어서서 찍는 이의 마음이 보는 이들에게 울림을 만들어내는 그런 작품들.

지금 제주도 서귀포 해안도로 길가, 한 커피숍에서 그런 사진들을 모아 사진전을 열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산이 좋고 바다가 좋아 카메라를 들고 오르내리다 벗이 된 사람들이 SNS를 통해 함께 산도 오르고 사진도 돌려 보다가, 그 사진들이 그저 자랑이나 추억거리가 아니라 뭔가 귀한 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게 된 전시회다.

전문 사진작가인 유근종, 전문작가의 길을 막 걷기 시작한 강희갑, 순수한 동호인 장동인. 이 세 사람이 찍은 사진은 온라인의 모니터를 벗어나 제주 여행객들에게 분위기 좋은 맛집으로 입소문난 커피 전문점 ‘스테이 위드 커피’ 안에 마련된 ‘갤러리 더 머뭄’에서  6월 7일부터 19일까지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SNS 동호회의 간접성이 ‘페이스 투 페이스’라는 실제 삶과의 직접성으로 바뀐 까닭은 이 사진들의 의미가 ‘나 어디 다녀왔소’, ‘나 이거 보고왔소’ 하는 자랑이나 추억보다 더 귀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한라산의 눈꽃, 천왕봉의 해돋이, 황매산의 철쭉, 산 속 길섶에 피어난 들꽃, 붉게 타오르는 단풍...... 어쩌면 애국가 배경화면이나 기업체 홍보 달력에서 숱하게 보았을 수도 있는 이 장면들은 사실 아무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니다. 그 곳에 직접 가더라도 날씨나 계절이 맞지 않아서, 심지어 딱 그 순간의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놓치곤 한다. 평생 한 번을 갈까 말까한 사람이든, 틈만 나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오르내리는 사람이든 삼대가 복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드문 순간도 있고, 눈 밝은 사람이면 고개 돌려 쉬이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순간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사진에 담는 마음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 때문일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나누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회적 약속’에 의한 기호이듯이, 사진에서 누구나 공감하는 객관적인 의미 속에서 이해되는 문화적 코드를 스튜디움이라고 했다. 보편적이고 분석적인 맥락 이전에 보는 이의 개인적 취향이나 경험, 잠재의식 등과 연결돼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강렬한 자극, 보는 이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경험을 동원하면서 스스로 사진의 의미를 구성해가기에 코드화 될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 감정이 푼크툼이다. 사진의 어떤 작은 요소가 자기의 마음을 찌르는 것 , 작은 구멍, 작은 얼룩, 작은 흠이 바로 푼크툼인 것이다.

   
 
 
   
 
 
그 푼크툼을 들여다보고자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애국가 배경화면이든 계절마다 넘어가는 달력사진이든 유명 작가가 훌륭한 장비로 최적의 순간에 담아낸 사진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자신이 보고 겪은 순간을 직접 찍고자 카메라를 들고 나서게 되는 것이리다.

이번 전시회를 마련한 이들은 그 사진에 담긴 순간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푼크툼을 내보일 뿐 아니라 그 푼크툼에 공감하는 이들로부터 거두게 될 판매 수익금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돌리고자 한다. 사진이 여가에 대한 허세나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산하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며, 지금 사라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운 강정마을을 지키는 마음은 사진을 찍은 이들의 마음에 담긴 진심어린 푼크툼 때문일 것이다.

   
 
 
   
 
 
   
 
 
신혼여행, 수학여행, 효도관광...... 어떤 이름으로 찾아가도 그곳에 사는 이들의 마음으로 그 고장을 보지 못하겠지만, 한번 보고나면 그 고장을 지켜야한다는 마음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제주, 그 제주에서도 또 각별한 강정 바다 구럼비 바위를 누군가 남긴 사진으로만 보게 될 것인지, 두고두고 찾아가 마음 펼치고 보게 될 것인지는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그러니 마침 제주 올레길을 거니는 중이라면, 또는 제주 맛집 투어 정보로 분위기 좋은 커피숍 찾아가던 중이라면 올레10코스(화순 금모래해변 ~ 모슬포항)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사계해안도로에서 산방산까지 가는 길 옆 ‘갤러리 더 머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번쯤 돌아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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