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부터 일본 도쿄의 사진 갤러리 니콘 살롱에서 열리기로 했던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이 취소돼 논란이 일고 있다.

재일사진가 안세홍씨에 따르면 안씨가 준비한 사진전 <重重(겹겹)-layer by layer>이 지난달 22일 돌연 취소됐다. 안씨가 준비 중이던 사진전은 2001년부터 5년간 중국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한 사진 38점으로 구성돼 있다. 안씨는 '신뢰와 창조'를 경영이념으로 하는 90년 전통의 카메라 메이커 니콘이 후원하는 니콘 살롱에서 이 전시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일본 나고야에 머물고 있는 사진가 안세홍 씨와 11일 오전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사진작업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사회평론 길>에서 사진화보 지면을 맡고 있었던 지난 1996년에 ‘나눔의 집’ 취재를 갔다가 할머니들을 알게 됐다. 사진을 찍으며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 분들의 아픈 삶과 처지를 이해하려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원봉사도 하고 소식지도 만들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던 중에 2001년에 있었던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중국 위안부 할머니들 실태조사에 동행하게 됐고, 그 때부터 5년간 7차례 방문해 중국에 계신 할머니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2001년 까지는 60mm 렌즈를 장착한 니콘 F4 카메라를 주로 사용했고 2002년부터는 여기에 28mm 렌즈를 끼운 라이카 M6 카메라를 함께 사용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안세홍 사진가의 누리집에서 '겹겹'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http://ahnsehong.com/gallery/layerbylayer_2012/

- 니콘 살롱에서 전시를 하게 된 계기는?
"5년 전 재일교포 3세인 아내와 결혼한 후 3년 전에 일본 나고야에 정착하면서 그간 기록해온 작업들을 전시할 갤러리를 찾던 중에, 민감한 주제지만 니콘 살롱에서 하는 것이 사진전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알리는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돼 응모했고 전시허가를 받았다.(선정위원회 위원장-아카모토 야수유키) 그때까지만 해도  ‘니콘 살롱이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사진 자체만을 보고 전시를 결정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5월 18일에는 오사카 니콘 살롱에서도 앙코르 사진전을 해달라는 연락까지 받았고 전시 홍보 엽서도 4,500부 인쇄한 상태였다."

- 언제 사진전 취소통보를 받았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22일 오후 7시경 니콘 살롱 사무국 오바타 씨로부터 ‘니콘 사내 사정으로 사진전중지가 결정됐다’는 통보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니콘에 대한 우익단체의 항의와 불매운동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니콘 본사와 니콘 살롱 사무국과 관계가 깊은 지인의 전언에 의하면 미쯔비시나 보수 정치권의 외압이 니콘 사장 쪽에 직접 전달됐다고 한다. 그 후 사장이 직접 니콘 살롱 쪽에 전시중단 명령을 했다고 한다."

- 우익 단체들의 위협이 있다고 하던데.
"나를 뺀 가족들은 나고야의 집을 떠나 안전한 곳에 피신중이다. 우익 단체들은 우편물, 팩스, 때를 가리지 않는 발신자표시 없는 전화 등으로 위협하고 시비를 건다. ‘왜 이런 일을 하냐? 위안부는 없었던 거다. 집주소가 어디냐? 빨리 이 땅을 떠나라.’ 등의 말로 협박한다.재일 조선인 등 우익단체의 협박을 받아 본 분들 얘기에 의하면 이럴 경우 보통 ‘죽은 고양이’를 우편물로 보낸다는 말도 들었는데 아직 그런 일은 없었다. 지난 주 요카이치 시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강연회를 열었는데 우익단체 회원 20여명이 몰려와 강연 내내 시끄럽게 집회를 했다. 경찰에 보호요청을 했더니 간부급의 경찰은 이미 이 사안을 파악하고 있었고 50여명의 경찰이 출동해 강연회장을 보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익단체의 시비는 줄어들고 있다. ‘주권 회복을 위한 일본인’ 등의 우익단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비춰지는 이번 사안에 자신들이 관여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단순한 우익단체의 위협과 불매운동 때문에 전시가 취소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 이번 사건에 대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의 반응은?
"일본에서는 아사히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보도가 됐다. 한국에서는 한겨레, SBS, 중앙일보 이데일리 등이 보도했다. 지난 6일 CNN이 보도한 후 영국 등 세계 곳곳에서 사진가들이 뜻을 모아주고 있다.
( 6일자 CNN 보도 http://edition.cnn.com/2012/06/05/world/asia/japan-comfort-women/index.html)

영국의 저명한 보도사진가들 120여 명은 니콘 영국지사 요지로 야마구치 사장에게 ‘정치적 외압으로 인한 전시취소결정을 되돌려 줄 것을 촉구’ 하는 공개서한을 보내주었다.
  (http://www.users.globalnet.co.uk/~sibarber/iamcensored/iamcensored.html)"
 
- 이번 사태의 본질은 뭐라고 보는가?
"내 개인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례다. 나와 단 한 차례라도 상의를 한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한 거다. 내가 여기서 전시할 뜻을 거둔다면 이후에 다른 사진가들의 다양한 주제를 담은 사진들도 니콘살롱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싸울 거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대부분 80~90대 후반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들의 얘기를 많이 알려야한다는 생각도 변함없다. 일본군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저질렀던 과거의 죄에 대해 전체 일본인들의 0.1%도 모른다. 일본정부에 의해서 정보와 교육이 차단되고 있다.

- 전시 예정일에 니콘 살롱 앞에 작품을 들고 갈 거라고 했는데
"지난 주에 법원에 ‘전시 중지 통보 철회’ 가처분 신청을 냈고 오늘(11일) 니콘 살롱이 법원에 ‘안세홍의 사진전이 정치적인 활동으로 판단돼 중지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변호사로부터 들었다. 지금까지 무작정 사죄의 뜻을 밝혔던 니콘 살롱의 표변은 적반하장이다. 원래 전시 일정대로라면 25일 오후 세시에 사진을 전시장에 반입해서 설치해야 된다. 공식적인 문서에 정당한 취소 사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25일 오후에 전시장으로 작품을 갖고 갈 거다. 서울에서는 보도-다큐 사진가들의 자발적인 니콘 본사 앞 항의 기자회견(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앞, 26일 11시 30분)이 준비 중이고, 민족미술인협회, 민족예술인총연합 등에서는 곧 항의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해 나갈 계획인가?
"니콘 살롱의 전시가 결정되고 나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전시를 한번으로 끝낼 게 아니라 일본 전역과 전 세계를 돌자고 마음먹었다. 그 뜻에 동의하는 주변 사람들을 모아 ‘겹겹 프로젝트( http://juju-project.net/  )’라고 이름 짓고 홍보, 자금 담당, 아트디렉터 등 7명의 실행위원회를 꾸려 3월부터 강연회, 기금 모으기 등의 활동에 들어갔다. ‘겹겹’이란 말은  ‘겹겹이 쌓인 할머니들의 주름들과, 70년 전에 당했던 고통이 풀리지 못하고  겹겹이 쌓여 큰 덩어리가 된 현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작은 관심이 겹겹이 쌓여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시회 취소 결정으로 제작비 천 이백여 만원 등의 금전적인 손실이 예상되고 이 일에 매달렸던 실행위원들의 삶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며 향후 5년 동안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대만, 중국, 일본, 북한, 필리핀에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기록을 계속할 거다. 그리고 3년 후 쯤에는 나 이외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세계 유수의 사진가들의 작품을 모아 도쿄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 겹겹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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