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의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내용의 신문 기사들이 등장했다. 혁신학교와 아파트 값 상승을 연결짓는 기사들이다. 머니워크의 “8학군도 싫다" 강남떠난 '맹모'들 어디로?”, 매일경제의 “혁신학교 덕 좀 볼까…김포·수원 등 분양 잇달아” 같은 기사들이 그것이다.

이 기사들에 따르면 요즘 강남권 부동산 시장의 침체의 원인은 혁신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부동산 수요가 옮겨갔기 때문이다. 강남권의 학교와 학원이 좋아서 사람들이 몰려와 부동산 값을 상승 시켜왔는데, 혁신학교가 강남권 학교보다 더 좋다는 것이 알려져서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있는 지역으로 몰려가서 강남권 집값은 떨어지고, 혁신학교가 있는 지역 아파트 값이 폭등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에서는 '강남보다 혁신학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기사들이 모두 예로 들고 있는 학교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에 있는 보평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60~80분 단위로 수업을 진행하는 블록 수업제, 분기 단위로 학업을 편성하는 4학기제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면 학교 주변에 유해시설이 없고, 인근 보평고가 과학고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학군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모든 것들을 연결해 보면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에 다른 학교보다 좌우간 뭐가 달라도 남다른 학교도 있고 하니 여유 있는 중산층들이 이리 몰려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기자는 경기도는 혁신학교 덕분에 혁신학교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아파트 분양 붐이 일고 있으니 투자를 고려해 볼 만하다고까지 거들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과정은 강남권이 부촌이 되어간 과정과 동일하다. 강남권은 1980년대만 해도 비교적 신도시라 번잡하지 않고 깨끗했다. 지금도 송파구 같은 경우는 서울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거주 환경이 깨끗하고 깔끔하다. 당시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아직까지는 중심부에 비해 저렴한 강남권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러시를 일으켰고, 여기에 경기고등학교를 필두로 서울, 휘문, 중동, 보성, 창덕여, 배재 등 시내 중심부에 있던 명문 학교들이 대거 강남권으로 이전하면서 서울 각치 부유층의 강남권으로의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졌다. 이로써 8학군벨트가 조성되고, 이게 다시 학부모들의 수요를 부추기면서 집값이 폭등하고, 이게 다시 부동산 투기심리를 자극하여 오늘날의 강남이 형성되었다. 이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보평초등학교와 판교신도시의 사례와 거의 같다. 그러니 이 기사대로라면 “혁신학교는 경기도에 새로운 강남권, 새로운 8학군을 만들고 있다”가 된다. 그리고 혁신학교 덕분에 죽어가던 토건 공화국, 무너지던 아파트 신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예찬하고 있다.

이렇게 그 동안 진보진영을 가장 증오하던 부동산 토건족이 혁신학교를 예찬하고 있다. 진보의 가치는 전혀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혁신학교를 신자유주의, 부동산 토건진영의 논리로 예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대가 자신을 칭찬할 때는 그걸 듣고 헤벌쭉 거릴 것이 아니라 그 저의를 의심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우선 이 기사들이 예로 들고 있는 혁신학교들이 죄다 경기도에 있는 혁신학교라는 점에 주목하자. 이 기사들이 진보와는 정 반대 진영에서 작성된 기사이니 만큼, 경기도 혁신학교에는 다른 지역 혁신학교와 달리 토건족, 신자유주의 진영을 즐겁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기사들이 소개하고 있는 혁신학교 개념이 어처구니 없다. 이 기사들에 따르면 혁신학교는 △학교에 자율권을 주고 운영비를 지원해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프로젝트이며 △작은 학교를 지향하고 △영어와 예·체능, 과학 등의 분야에서 특화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며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일반 교육비로 사립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같은 지역 혁신학교라고 해도 교육과정, 운영방식 등이 모두 다른 만큼 미리 커리큘럼을 확인해 자녀에게 맞는 학교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이 네 가지를 살펴보면 이 기사들은 혁신학교란 “1992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 교육 시장론을 충실히 이행하는 학교”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교육론에 따르면 각 학교들은 자율권을 가져야 한다. 이들에게는 정부는 악, 민간은 선이라는 신앙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을 스파르타식으로 잡건, 입시교육을 하건, 아니면 예술중심 교육을 하건 정부보다는 학교가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럼 이 중 어느 것이 좋은 교육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시장의 힘, 즉 소비자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들은 각자 자기들 나름의 교육을 하면서 학부모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러니 학교들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교육보다는 학부모 눈에 띄기 좋은 “특화된 교육”을 해야 한다. 이 특화란 말 자체가 자유시장경제의 용어라는 것은 경제학 원론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영역과 교과를 고루고루 균형 있게 가르치는 학교보다는 영어면 영어, 과학이면 과학 하나를 찍어 놓고 특화시키는 쪽이 시장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규 교육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특화는 고스란히 교사들의 초과 노동, 학교의 초과지출로 나타난다. 즉 정규수업 다 하고 나서 특화된 영어, 특화된 예술, 특화된 과학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특화까지 포함해서 표준이 되며, 특화의 특화, 특화의 특화의 특화까지 해야 한다. 결국 교사들은 물론 학생들도 점점 오래 학교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잠자기 직전까지 아이들 관리하지 않아서 편해서 좋고, 학교가 오래 붙잡아 두니 학원비 절약되어 좋은 이런 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니 신문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가? 커리큘럼을 잘 살펴보고 선택하라고.

이게 혁신이고, 이게 진보인가? 여기에는 어떤 가치도 지향도 없고, 다만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한 애처로운 마케팅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입시에 유리한 학교, 스펙관리에 유리한 학교를 선택하려는 학부모들의 욕망에 대처하지 못하는 한, 혁신학교들은 결국 또 다른 종류의 저렴한 특수목적 학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값 운운하는 기사야 말로 그 전조인 것이다. 도대체 전셋값으로 4억원 내외를 덥썩 지불할 수 있는 가정, 그리고 한 달만에 5~6천만원씩이나 올라가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나 다닐 수 있는 학교가 혁신학교라면 이게 도대체 진보교육감의 정책으로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기사의 대상이 된 경기도교육청은 혁신학교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초심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혁신학교의 취지가 강남 8학군과 경쟁하는 것이었나? 그래서 강남 8학군보다 더 8학군 스러워져서 또다른 강남 8학군을 형성해서, 다양한 8학군들 간의 경쟁체제를 만들자는 것이었나? 그래서 경기도의 아파트 값을 높여서 토건족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지고, 부동산 중독증에 걸린 중산층들의 지지표를 얻어서 제2의 뉴타운 광풍이라도 만드는 것이었나? 아니면 사교육과 경쟁하는 것이었나? 그래서 학부모들이 학원 대신 학교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었나? 거기에 과연 “진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만약 경기도의 혁신학교가 진보교육감의 이름에 값하는 그런 본질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이 기사들이 그것을 왜곡하고 호도한 것이라면 경기도 교육청은 즉시 해당 신문사에 항의하고 기사의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경기도에 혁신학교 덕분에 또 다른 8학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등의 주장은 진보교육감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 학부모들이 서울에 있는 혁신학교가 아니라 경기도에 있는 혁신학교로 몰려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동안 우리 교육을 망쳐왔던 강남 알파맘 모델이 갈수록 서울에서 발 붙이기 어려워져서 경기도 혁신학교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는 뜻이 되며, 곽노현의 교육 개혁이 성공하자, 교육의 구세력이 김상곤의 혁신학교에서 피난처를 구한다는 뜻이 되니 욕도 욕도 이런 욕이 없는 것이다. 혁신학교의 의미를 왜곡하는 언론사들의 균형있는 시선 회복과, 그러한 왜곡과 모욕에 대한 경기도 교육청의 단호한 대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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