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수구보수세력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정치적 무기 가운데 하나로 매카시즘이 있다. 매카시즘은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950년 “국무부에 고용된 공산당원들과 스파이단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라고 발표하면서 미국을 ‘빨갱이 공포증’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매카시는 트루먼 행정부의 국무부, <미국의 소리> 방송, 미 육군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다고 계속 비난했다.

매카시즘의 광풍은 꼬박 4년 동안 미국의 정계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계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매카시는 ‘마샬 플랜’의 창시자인 국방장관 조지 마샬이 205명의 ‘알려진 공산주의자들을 품고 있다’고 공격했다. 중공군이 북한을 도우려고 한국전쟁에 참여했을 때,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중국 땅에 원자폭탄을 터뜨리자”고 정부에 건의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단호히 거부하고 맥아더를 해임했다. 그때 매카시는 트루먼을 향해 “그 개자식은 탄핵 당해야 한다”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매카시는 1953년에 ‘정부활동조사위원회’ 책임자가 되어 육군 안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려고 나섰으나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반격에 나선 육군이 1954년 초에 매카시를 고발하자 그는 4월에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간염을 앓다가 1957년 5월 세상을 떠난 그가 미국과 세계에 남긴 ‘유산’은 매카시즘이라는 파괴적 ‘정치공학’뿐이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6개월 남짓 앞둔 한국 사회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석기·김재연 씨가 ‘주사파’이자 ‘종북주의자’라는 주장이 2012년에 매카시즘 망령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술자리에서 청년탈북자에게 했다는 ‘폭언’이 매카시즘에 기름을 퍼부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이석기·김재연·임수경 의원을 ‘종북 주사파’로 몰아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 상임고문의 ‘사상을 검증해야 한다’고 나섰다. 그는 새누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북한인권법안’에 대해 “남북한을 고려한 법안이 아니라 일부 극우 보수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돕는 ‘삐라 지원법’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 상임고문은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가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한 국가의 큰 당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상대당 의원의 사상과 국가관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망언’”이라고 공격했다. 황우여 대표는 이해찬 상임고문의 발언을 두고 “과연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느냐 심사하는 데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번의 ‘종북 공방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주장 가운데 하나는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6월 1일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제명해야 한다”라고 공언했다.

나는 이번에 되살아난 매카시즘의 망령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먼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일어난 부정행위와 관련해서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사퇴 권고, 그리고 서울시당의 제명 결정을 받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 여부는 두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그들이 어떤 ‘종북행위’를 했는지에 관한 명확한 증거도 없이 ‘주사파’라고 보면서 국회에서 제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매카시즘이다.

다음으로, 임수경 의원이 술자리에서 백 아무개라는 청년을 상대로 탈북자들을 비하하는 말을 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북한 땅을 버리고 남한으로 온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망명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인권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임 의원이 폭언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1989년에 북한을 방문해서 통일운동에 헌신적으로 기여한 일까지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매카시즘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교육부장관, 집권당의 정책위 의장,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햇볕정책’ 실현과 남북 화해에 힘을 쓴 이해찬 의원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 뿐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대표 경선에 참여한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매카시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2012년 판 매카시즘’을 보면서 1972년 5월 4일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떠올렸다. 그는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청산가리를 몸에 감추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김 주석을 만났다고 말했다.

당시의 반공법 제5조 1항은 “반국가단체나 국외의 공산계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그 구성원 또는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또는 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을 하거나 금품의 제공을 받은 자는 징역 7년에 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이적행위’가 될 수도 있는 이후락의 비밀방북을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행위’라고 옹호했다.

만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재가 없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행위’라고 보고 침묵했을까?

박근혜 의원은 이번의 ‘종북 논란’에서 사상을 의심받는 국회의원의 제명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색깔론’이라는 보수세력의 해묵은 매카시즘을 대변하고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공직자들의 사상을 일일이 검증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뜻인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2002년 5월 10일 박근혜 예비후보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김 위원장이 보낸 특별기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 그는 김 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통해 남북 스포츠 교류, 남한 방문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 등 여러 가지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는 그때 경험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북한에 다녀온 이후 나는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현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의 눈치를 살피거나 정치적 계산에 밀려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만난 횟수나 대화 시간은 무의미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식의 만남이 많아질수록 양측이 신뢰를 쌓을 가능성은 적어질 것이다”(203쪽)

박근혜 의원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민주통합당, 그리고 통합진보당도 ‘진심을 바탕으로’ 북한과 ‘상호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는가? ‘내가 쌓는 신뢰는 로맨스’이고 ‘남이 그렇게 하면 불륜’이라고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형적 매카시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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