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이자 대북사업가인 장기수씨가 북한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해 넘겼다는 간첩사건에 대해 언론이 일방적인 경찰발표 받아쓰기와 추측·과장보도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수 이아무개(74)씨와 뉴질랜드 교민 김아무개씨가 정체미상의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GPS 교란장치 등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한 혐의(간첩)로 경찰에 구속된 사건과 관련, KBS는 지난달 30일 “지난달 말부터 보름간 북한의 GPS 공격에 국내 간첩조직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갔는지, 북한이 이 정보로 GPS 공격에 활용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은 1일 뉴스에서 “노무현 정부때는 통일부가 법무부나 국정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종북인사들의 방북을 여러 번 허가했고, 김대중 정부때는 종북주의자들을 민주화인사로 둔갑시키는 것도 모자라 보상금까지 퍼줬다”며 “간첩행위, 사회주의혁명행위, 반국가이적행위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면서 종북세력은 자유와 돈까지 얻어 세력을 확장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비슷한 취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2005년 당시 이씨와 함께 대동무역에서 전무로 일했던 김영미씨는 “이미 94년부터 해오던 사업이었다”며 “유리병에서 페트병으로 바꾸기 위한 사업승인을 받았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씨의 전향여부와 관련해 ‘비전향장기수’였다는 서울경찰청 보안2과 발표와 달리 이씨는 1990년 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경찰은 이를 알고도 ‘비전향’이라고 발표했다.

이씨가 탐지수집한 자료가 군사기밀인지 여부에 대한 이견도 제기됐다. 한겨레는 군관계자를 인용해 “군에서는 이씨의 수집 자료가 군 기밀 사항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군사비밀은 아니지만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명백한 ‘군사기밀’ 사항”이라며 “기밀이 아니면 법원이 왜 영장을 내줬겠느냐”고 반박했다.

언론은 구속된 이씨 측 반론을 대부분 반영하지 않았다. 이씨 변론을 맡고 있는 황교안 변호사는 “기밀인지 여부도 따져봐야겠지만, 이씨는 전혀 무관하다며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며 “아무 것도 확정된 사실이 없다. 통상 이런 사건의 경우 언론도 잘 모르면서 한 쪽 얘기만 듣고 쓰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5일 인터뷰에서 “(이씨 대북사업 승인은) 경협 교류가 정점에 이르렀던 때 이뤄졌던 것으로, 당시 법무부는 전과자에겐 의례 반대해왔기 때문에 참고로 삼았을 뿐 의무사항은 아니었다”며 “이것을 문제삼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벌이는 저열한 매카시즘이자 종북장사이다. 이런 종북장사는 그만둬야할 때”라고 성토했다.

6·15 남측위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일용 연합뉴스 심의위원도 5일 “이번 사건은 장기수의 전향여부, 대북사업가 활동의 실체 검증, 사업의 합법성 여부 등 경찰발표와 달리 확인해봐야 할 것이 많은데 언론이 반론도 없이 단정적으로 받아쓰기만을 하고 있다”며 “종북 광풍에 편승하고자 한다면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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