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동조합 파업이 6일로 129일째 접어들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파업 전략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재철 사장 사퇴설이 한달 가까이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사측은 대규모 대기발령과 대체 인력 투입 조치를 내리면서 파업 인원을 배제하고 방송 정상화의 길을 간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현재까지 큰 동요는 없지만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징계의 두려움도 크다. 대량 징계가 현실화될 경우 이탈 움직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MBC 관리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와 방문진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도 무기력한 모습이다.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은 사실상 이번 파업을 '불법 파업'이라고 규정하면서 관여할 게 없다고 발을 뺐고, 방통위는 김 사장의 검찰 수사를 강력히 촉구하는 것(양문석 위원) 말고는 뽀족한 사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야당은 개원 조건으로 ‘김재철 사장 해임’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원구성 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발빠른 사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파업 전략을 재점검해야할 때라는 얘기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다.

▷김재철 사장 비리 의혹, 정말 약한 고리인가?=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 비리 의혹 캐기에 '올인'하고 있다. MBC 노조 측은 파업의 본질은 방송 공정성 훼손과 제작 침해 자율성 문제에 있지만 이 문제를 가지고 장기간 파업 이슈로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파업의 명분을 주장하면 할수록 대중의 관심은 되려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재철 사장 비리 의혹은 도덕적 비난과 함께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퇴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는 이슈라는 것이 MBC 노조의 생각이다.

지난 4·11 총선에서 야당이 참패하면서 불리한 정치 지형에 놓였다는 것도 김재철 사장 비리 의혹에 집중하는 이유다. MBC 노조 관계자는 "김재철 사장 비리 의혹 제기는 총선 이후 불리한 지형에 놓인 상황에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며 "파업 초기부터 김 사장의 약점을 캐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의 비리는 파업 국면에서 가장 큰 약한 고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MBC 노조의 주장과 일반 대중의 인식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김재철 사장 법인카드 유용 의혹, 무용가 J씨 특혜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제기하면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도저히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의혹이라고 규정했지만 국민적 공분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 김재철 사장을 조롱하는 효과 이상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속되는 김 사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 대중들의 체감온도도 떨어진 게 사실이다. MBC 노조는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결정적 비리'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이름에 걸맞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의도에서 만난 한 시민은 "김재철 사장 나쁜 것은 알겠는데요. 그런데 왜 파업을 하는 거죠?"라고 묻기도 했다.

김 사장의 비리 의혹 제기에 사측은 법적 사실 관계가 어긋났다면서 노조와의 논쟁 자체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측 관계자는 "노조가 제기하는 의혹을 100%로 놓고 볼 때 20~30%가 맞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국민 정서를 떠나 우리 쪽에서는 충분히 법적 사실관계로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서 "파업 정당성을 강조한다면 모를까 김 사장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노조 입장에서도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김 사장의 비리 의혹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MBC 노조는 취재력 하나가지고 이만큼 의혹을 제기하고 세 차례에 걸쳐 고발했으면 수사 당국이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수사는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경찰 쪽에서도 언론사 수장을 수사한다는 자체로 부담이 크고, 소명이 부족해 관련 의혹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압수수색을 해야 하지만 언론사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제대로 뉴스데스크'는 파업 뉴스?=파업 국면에서 사측을 대변하는 9시 뉴스데스크에 대항해 진지를 구축한 <제대로뉴스데스크>의 파괴력도 희미해졌다는 내부 비판이 나온다. 현재까지 13회 분량이 나온 <제대로뉴스데스크>의 취지는 “김재철 사장 체제를 떠나 조합원들이 직접 만드는 뉴스는 공정방송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KBS 노조가 만들었던 <리셋 KBS뉴스9>는 민간인 사찰 문건을 확보해 보도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KBS 사찰 동향 내용도 담겨 있어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실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데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정상적인 KBS 9시 뉴스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뉴스를 KBS 노조에서 했다는 것은 파업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데 <제대로뉴스데스크>의 경우 이슈를 선도하기 보다는 파업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제대로뉴스데스크>는 1회에서 MB비리 가계도와 영일목장 현장을 가다, 박근혜와 부산일보를 파헤치다 등의 주제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정치검찰 문제, 나경원 전 의원 남편 김재호 판사 인터뷰 시도, 민간인 사찰 청와대 꼬리 자르기, 4대강 문제, BBK 가짜 편지 작성자 신명씨 단독 인터뷰, 반값 등록금, 광우병 문제 등을 다뤘다.

지상파 방송이 갖고 있는 미디어 파괴력에 비한다면 '선방'했다는 평도 있지만 MBC 파업 보도국 참가 인원 규모를 따졌을 때 '핫뉴스'를 쏟아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제대로뉴스데스크>에서 집나간 김재철을 찾아라!, 김재철은 찾았을까?, 숙박왕 김재철 스페셜 등은 방송분은 흥미성 보도로 흐르기도 했다. 방송 호외분과 12회, 13회에서는 김재철 사장과 J씨의 관계에 따른 특혜 의혹을 집중 제기했지만 노조가 제기한 의혹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차라리 호평을 받은 <파워업 PD수첩> 2회분과 같이 MBC 경영진이 시사교양국 PD 수첩들을 압박했던 상황을 생생한 증언을 통해 고발한 아이템이 MBC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도 나왔다. 결국 <제대로뉴스데스크>가 뉴스데스크와 정면 승부를 겨룰 정도로 정부 비판 이슈를 적극 발굴하고 특종 보도를 해야지만 파업의 정당성을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파업 중 무한도전이 정상화된다면?=시민 경은아(28)씨는 "무한도전을 보고 싶은데, MBC 파업 언제 끝나나요?"라고 말했다. 무한도전 방송 정상화를 곧 파업 종료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무한도전 팬들 역시 하루빨리 무한도전 결방이 끝나길 바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한도전 결방 때문에 MBC 파업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김재철 사장 자택 앞에서 집회 시위를 한다고 하면 수백 명의 팬들이 나올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MBC 파업 국면에서 무한도전이 갖는 의미는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많은 시민들은 김태호 PD가 MBC 파업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무한도전이 프로그램 주제와 자막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것도 사실이다. 무한도전 팬들이 MBC 파업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김태호 PD가 만드는 무한도전이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파업 중에 무한도전이 정상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태호 PD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순식간에 대중들로부터 MBC 파업이 잊혀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C가 MBC에브리원에서 방영됐던 ‘무한걸스’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해 무한도전에서 호응을 얻었던 아이템을 무한걸스에서 보여주겠다는 계획도 섣불리 볼 수 없는 이유다. 

MBC 노조는 연예인을 초청한 파업 문화제, 취업 강좌, 파업 주점 수익금 장애아 전달 등 대중과의 소통 면을 넓히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예와 마찬가지로 대중들과의 소통 방안에만 집중할 경우 자칫 파업 정당성을 알리는 데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지난달 25일 시민단체 각계와 연대해 여의도에서 벌이고 있는 희망캠프에 국민이 동참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연예인이 출연하는 문화제가 끝나고 난 후 1박 2일 희망캠프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소수에 그쳤던 것과 비슷하다. 

장기화된 파업이 고착 국면에 접어들면서 MBC 노조가 던져야할 구질은 '변화구'가 아니라 '직구'라는 이야기다.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방법에 매몰되기보다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비평부터 시작해 공정방송 훼손과 제작 침해 문제를 폭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에 MBC 노조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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