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안을 맴돌았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201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언론인들에게 올해는 ‘잔인한’ 한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 총파업이 장기화되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언론인들이 해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쌍용차의 구호대로라면 두번의 살인을 당한 언론인이 있다. 박성호 MBC 기자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 기자회장은 지난 2월 29일 제작 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이후 재심을 청구해 정직 6개월로 감경됐지만 지난 30일 직장 질서 문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재심 절차가 남아있다고 하지만 두번의 해고를 당한 이상 감경 조치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해고 통보 이틀 후 6월 첫째날, MBC 지하식당에서 박 기자회장을 만났다. 예상한대로 그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속이 상한다"는 한마디로 담담한 심경을 전한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가족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두번째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은 장인어른이 간암 수술을 받은 날이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장인어른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박 기자회장은 집에서 둘째 아이를 재우고 있을 때 해고 조치가 내려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두 번의 해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회사로부터 최종 해고 통보 전화를 받을 때 둘째가 무릎팎에 안겨 있는데 이상하게 아이를 세게 안게 되더라고요"

지난 2월 첫번째 해고를 당하고 이튿날에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박 기자회장은 당시를 기억하면서 "묘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첫째 애한테는 회사에서 나쁜 사장님과 싸우는데 아빠가 대장이 돼서 뉴스를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는데 큰 아이는 싸움에서 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부모님은 첫번째 해고를 당했을 때는 옳은 일을 하는 거니까 신념을 갖고 잘 하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몸 좀 사리지 그랬냐고 말씀하셨죠.(웃음)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몸이 안 좋으시기도 하고 조선일보를 보시는데 우리 기사를 잘 다루지 않아서...이럴 때는 조선일보가 좋네요"

넉달 째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생활도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도 아내가 박 기자회장 모르게 끊었다. 어렵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장을 볼 때 걱정 없이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었던 마이너스 통장이 실제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박 기자회장에게 가족들은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두번째 해고를 당한 날 그의 아내는 "신경쓰지마, 어차피 당신이 대세야. 조만간 복귀될 텐데 긴 휴가라고 생각해. 마음 편히 갖자"고 위로해줬다.

"권재홍 보도본부장 괜찮은 선배였는데"

가족을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징계를 내린 MBC와 김재철 사장을 생각하며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박 기자회장은 "첫 번째 징계는 일정 정도 징계를 무릎쓰고 단체행동을 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대표해서 다칠 수 있다고 각오를 하고 있어서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로 해고를 당하니까 화가 난다. 노사 대치 속에서 노조를 제압하기 위해 전술적인 측면이 짙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한 개인을 짓밟아도 되는지 분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꽤심죄가 적용돼 해고를 당한 경우다.

두 번째 해고는 지난 3월 보도국 농성과 지난 5월 16일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퇴근 저지 과정을 문제 삼았다. 특히 지난 16일 상황을 놓고 뉴스데스크 톱뉴스로 권 본부장의 부상 소식을 다루면서 극한 상황이 연출됐다. MBC 기자회는 자사 회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와 2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해둔 상태다. MBC 입장에서는 박 기자회장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야간 상황에 대해 저희들을 완전히 무슨 폭력 노조원들처럼 뉴스에 이미지를 심었다. 권 본부장은 보도국의 제일 큰 어르신인데, 차라기 화가 났으면 내부 입장 발표를 할 수 있고 엄단하겠다고 하던가, 저를 불러서라도 용서치 않겠다고 하던지 여러 방안이 있는데 뉴스데스크 톱으로 보도를 해버렸다. 이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은 미디어의 횡포에 저항하는 피해자로써 법적 구제수단을 호소한 것인데, 바로 다음날 인사위에 회부해버리더라. 정정보도 청구에 이의제기하고 절충점을 찾자고 하면 우리가 거부를 했겠나?"  

지난 16일 노조는 시용기자 채용이 부당하다는 뜻을 모아 권재홍 본부장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보도국 5층 전체 층도 봉쇄해버렸다. MBC 기자회 소속 기자들이 권 본부장의 퇴근길에 대화를 요구했던 이유다.

박 기자회장은 "대답없는 회사 책임자에게 몰려가서 얘기를 듣겠다고 했는데 거부를 했고 길을 터준 것이 해고의 사유가 된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사용자 측에 파리 목숨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법적으로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지만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박 기자회장이 16년 전 MBC에 입사해 수습 기자를 하고 있을 때 사건 데스크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종군기자를 거쳐 편집부로 복귀했을 때 편집부장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지난 16일 박 기자회장이 차창 문 밖에서 "권 선배님이 이런 선배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던 이유도 두 번의 인연을 걸쳐 권 본부장이 '좋은 선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기자회장은 "후배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큰 줄기를 잡아주면서 후배들을 따뜻히 대해줬다. 합리적이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람은 아니었다"며 "파업 기간 중이 아니었으면 기자회장과 보도본부장으로서 충분히 대화를 했을 것이다. 김재철 사장 대 MBC 노조의 극한 대치 속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부당하다며 막겠다는 상황에서 야기한 슬픈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등록금 집회 있다고 하니 “집회 선동하느냐”

이번 해고 조치의 시발점이 됐던 시용기자 채용 논란에 대해서도 박 기자회장은 할 말이 많았다. '1년 근무(시용) 후 정규직 임용'이라는 채용 조건으로 시용기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에 MBC 기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반발을 보고 일각에서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박 기자회장은 이같은 비난은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희가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MBC에 수많은 경력기자가 입사해 있다. 신입 대 경력 비율이 6 대 4 정도 된다. 경력기자를 선발해서 조직 내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경력기자 채용 문제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MBC 대다수 종사자들이 김재철 사장 체제 하에서는 공영방송을 할 수 없다고 일손을 놨고, 애를 쓰고 있는데 그 상황을 뻔히 알면서 MBC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면 동시대 언론인으로서 지향점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채용되면 알게 모르게 편을 가르게 되고 서로 적대시하게 되고 불신하게 된다. 조직 문화에 얼마나 큰 해악이겠나? 지금 응시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린다. 방송이 정상화되고 채용문이 열릴 때 박수를 받고 올 수 있는 장이 있다. 좀 만 참아달라"

애초부터 기자들이 제작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하게 된 이유는 공정방송 훼손과 제작 자율성 침해에 있다. 박 기자회장도 별 이유 없이 정부 비판 뉴스가 누락된 것을 숱하게 지켜봤다. 기자출신이지만 지난해부터 앵커직을 맡았던 에서도 박 기자회장은 참담한 심경을 느꼈다.

"제가 작년 6월 10일 아침 뉴스 클로징 멘트로 대학생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가 야간에 예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24년 전 6월 10일에는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면서 시청 앞에 모였는데 오늘날 대학생은 반값 등록금을 외치면서 서울 광장에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시대 흐름 의 변화와 오늘날 등록금 천만원 시대 고통을 집약해서 표현한 것인데 부장과 부국장으로부터 앵커가 왜 집회 시위를 선동하느냐고 하더라"

지난해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내곡동 사저 문제를 지적하며 대통령을 만나 백지화를 건의하겠다고 한 뉴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누락되는 것도 옆에서 지켜봤다. 박 기자회장은 관련 뉴스가 아침 조간신문 톱으로 장식돼 있는데, 전날 뉴스데스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것을 알고 따져 물었다.

박 기자회장은 "정치부에 문의를 해보니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했다. 그런 것을 왜 요구를 하느냐, 그게 문제가 되느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정말 문제가 아니냐"며 "이런 일이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있었다. 그런 일을 추적하고 따지면 굉장히 편집방향에 비판적이거나 여권이 불편하는 기사를 좋아하는 냥 비쳐지는 것 같더라. 앵커 입장에서는 메뉴판에 뭐가 빠지는 것이 없느냐를 보는 것이 기본인데 그때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앵커를 할 거면 언제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 파업 사태 해결

박 기자회장이 지난 2005년 <시사매거진2580> 기자로 있을 때 김재철 사장은 보도제작 국장을 맡고 있었다. 짧은 기억이지만 당시 아이템 선정 문제나 취재에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박 기자회장 말대로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공정방송이 훼손됐다는 직접적 '실증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박 기자회장이 이번 파업 사태의 해결 중 하나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으면 본인이 어떤 부분이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본인과 후배들 고통을 함께 덜고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데, 본인이 아쉽더라도 통 큰 결단을 하시면 박수 받고 떠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김 사장의 개인적 비리 의혹에 힘을 쏟으면서 이번 파업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지만 김재철 사장과 무용수 J씨의 관계 의혹도 반드시 해소시켜야할 대상이라는 것이 박 기자회장의 생각이다.

박 기자회장은 "노조에서는 근거있고 구체적인 방대한 양을 취재한 의혹을 제기했는데, 회사는 근거가 빈약해보이고 흠집내기라고 하고 있다. 수사당국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서 결론을 내면 된다"며 "제기된 의혹은 무용수 J씨가 많이 등장해서 그렇지, 본질은 회사의 정상적인 사업 추진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고 CEO로서 회사의 해를 끼친 것으로 볼만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있고, 그렇다면 공영방송 사장이 갖춰야할 덕목으로써 보도 공정성 수호와 윤리 도덕적인 자질 측면 모두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언론사 파업 문제 해결 나서야

박 기자회장은 이번 파업은 국내외 언론인 투쟁 역사를 따질 때 의미가 크다고 역설했다.

"김재철 사장 개인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근본은 공영방송사가 정권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래 본연의 전파가 허가되고 부여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시정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프랑스에서는 1968년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보도 누락 지시와 간섭 때문에 총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1975년 이탈리아에서도 공영방송이 정권 편향적이라고 해서 총파업을 한 적이 있다. 공영방송제를 채택하는 나라들에서는 끊임없이 정권과 방송 사이에 근원적 갈등이 있다고 본다.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전리품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행태에 대한 언론인들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저항이 있는 것이다. 이번 언론인 총파업은 모두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 기자회장은 정치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태 해결을 주문했다. 그는 "정치권이 이 문제를 직장 내 문제로 치부할 성질은 아니라고 본다. 해외 사례들도 보면 의회와 내각이 나서서 해법을 모색했었다"며 "저희가 스스로 힘으로 싸우고 있지만 손을 빌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사태 해결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도 본질적인 고민과 관심을 꾀할 때"라고 말했다.

박 기자회장은 마지막으로 넉 달 넘게 방송사 파업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파업이 길어지니까 시청자들도 인내심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저희만 과거에 백번 잘했고 사장만이 잘못이다’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성원과 비판 모두 느끼고 있다. 저희들도 시민들의 지적을 잊지 않고 복귀하면 일하는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양해를 부탁 드린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저녁 6시가 넘기면서 끝이 났다. 지하 식당을 나와 MBC 로비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기자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 기자회장과 헤어지고 저녁 8시경 MBC 구성원 35명이 기습적으로 대기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MBC는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6명이 해고를 당하고, 105명이 중징계 조치를 받았다. 그리고 이날 또다시 언제 징계를 받을지 모르는 35명의 명단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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