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한국일보는 이충재 편집국장을 전격 경질했다. 이상석 한국일보 사장이 직원들에 돌린 이메일에 의하면 그 사유는 ‘경영실적 부진’, 경영실적을 놓고 사장이나 광고국장이 아닌 신문을 만드는 편집국장을 경질한데 대해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인사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젊은 기자들 중심으로 연이어 발표된 기수별 성명 등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사측은 인사를 철회하지 않았고 갈등이 불거졌지만 8일 노사 양측은 ‘편집권에 관한 노사협약 개선안’에 합의함으로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사측이 취임 후 1년이 안된 편집국장을 해임할 경우 편집국 구성원 2/3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논란의 중심의 선 사람이 이영성 신임 편집국장이다. 한국일보 안팎에서는 ‘경영상의 이유’로 전임 편집국장을 경질하고 새로 이영성 국장을 선임한 만큼, 신임 편집국장이 신문의 질이 아닌 경영성과에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이영성 국장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민주주의, 인권, 권력에 대한 견제 등 3가지 원칙과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기반으로 ‘원칙있는 중도신문’을 만들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일 오후 한국일보 편집국장실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일보 기자들의 집단지성을 발견했다”며 “한국일보의 기자정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경영상 이유로 편집국장 교체가 이루어져 내외 비판이 많았다. 젊은 기자들은 기수별 성명까지 발표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 기자들이 문제제기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경영의 책임을 편집국장이 져야 한다는 것은 기자의 기본적인 정신과 관점에서 어울리지 않는 얘기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강력하게 이루어졌다. 그것이 대외적으로 혼란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일보 역동성, 기자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봤다.

그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편집국장을 1년 이내 면직 시킬 때 기자들의 2/3가 반대하면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합의했다. 기자들이 인사 권한을 갖게 된 것은 언론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게 마무리 했던 것이고, 마무리 된 후 임명동의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큰 지지로 내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켜주었다. 이는 이번 일이 개인적인 선호나 친소관계 때문이 아닌 명분과 가치로 기자들이 움직였다는, 집단지성이 발휘된 결과라고 본다.”

- 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 사정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경영) 측면도 있었던 것 같고, 대내외 소통의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있는데 경영상 측면이 부각된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했다. 부적절한 표현이고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다. 나도 그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고 경영진에 입장을 밝혔다.

- 대외적으로 ‘경영상의 이유’로 들어선 편집국장인 만큼 사실상 광고국장이 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기업을 위한 기사를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나는 정치부 기자만 했다. 광고관련 업무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기자로서 회사에 입사 후 스트레이트 경쟁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자로서 한국일보 간판을 내걸고 최선을 다했고 실제 내가 뛴 영역에서 타사 동료나 선후배들도 그 부분을 인정했다.

갑자기 경영상의 이유로 내가 편집국장이 되었다면, 내가 경제계 인맥이 엄청나게 많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래 정치부를 하면서 이를 통해 형성된 재계 인맥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내가 왔다고 경영상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대내외 소통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문을 만들면서 민주주의, 인권, 권력에 대한 견제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의 기업이 족벌 문제나, 부정적 상속 등 여러 문제점은 있지만 한국경제에 기여하는 가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적대시 하지 말고 긍정적인 측면은 그대로 평가하고 부정적인 측면은 비판하면서 교정 역할을 하면 된다. 나는 그 스탠스다. 소통을 넓혀 그쪽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성의는 보여도 팩트를 윤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통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2008년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다. 나는 소외된 계층,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자본 사이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보나?
“만약 삼성이라는 기업이 어두운 부분이 있다면 이는 고쳐야 한다고 본다. 세계 1류 기업으로 기여하는 점, 브랜드 가치를 높여 국내 이미지를 재고하고, 많은 세금을 내고, 많은 고용을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어두운 부분이 있다면 언론이 지적 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 이는 근거에 의해 지적할 것이고, 100% 정확한 증거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타당한 비판이 있으면 삼성도 1류 기업답게 책임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삼성과 근로자의 대립이 생겼을 때는 사안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나 기본적으로 언론이란 존재는 약자의 편에서 말을 들어줘야 한다. 특히 IMF와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된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여러 언론들이 그렇지만 우리도 어려움에 처해있다. 우리 삶의 이야기에 가까운데, 아무래도 어려운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떼가 아니라 타당한 근거와 논리가 있다면.”

- 취임이후 실제로 바뀐 경영상 성과가 있는가?
“조금 나아졌을 것이다. 국장이 바뀌면 아는 인맥들이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 나는 광고 쪽 관련 일을 해보지 않아 그런 노하우는 없다. 미디어 산업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데 우리는 콘텐츠가 있고 우수한 인재가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구조가 뭐가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외부 조력자들의 의견을 구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 한국일보를 어떻게 끌고 갈 계획인가?
“한국 사회가 진영 논리에 갇혀 있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외눈박이 기자라는 말이 나온 것도 한쪽 눈으로만 본다는 의미다. 이런 주창 저널리즘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회적인 갈등과 분노를 넘치게 한다. 진영논리에 빠진 언론이 가운데 지대로 모여야 한다. 그 역할을 한국일보가 하겠다는 것이다.

기계적 중립이나 양측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기업이건 노조건 불합리 하고 부당한 일을 할 때는 비판하는, 비판적 중도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균형을 찾겠다는 거다. 한국일보의 한 선배가 전교조에 대해 비판 칼럼을 쓰고, 이어 교총 문제를 지적하니 교총에서 전화 와서 “왜 그렇게 변했냐?”고 했다더라.

나는 여성문제에 있어 진보적인 사람도 안보에는 보수적일 수 있다고 본다. 어느 한 쪽이 100% 진리일 수 없다는 것도 이번 진보당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각각의 진영마다 옳고 그름을 따지겠다. 미리 전제된 입장을 갖지 않겠다. 상식과 앞서 언급한 기준을 갖고 당당히 비판할 것이다. 권력도 예외가 아니다.”

- 중도지의 어려움은 한국일보의 기사와 사설의 간극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기사와 사설의 논조를 맞출 것이냐, 사설이 늘 한쪽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가? 이게 저널리즘에서 논쟁이 되는 부분인데 나는 가급적 일관성이 좋기는 하지만 그런 면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전제되고 결정된 입장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의 시선이 다를 수 있다. 한 언론사에 동일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100%라고 보지 않는다. 언론재단에서 2년 전인가 여론조사를 했는데 보수언론에서 자신이 중도라는 기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기자는 자기 뜻과 다른 기사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사와 사설이 달라도 그 기자가 쓴 것이 그대로 나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편집국에서는 기자의 취재를 존중하고, 논설실도 존중한다. 따라서 프로세스는 다를 수 있다. 그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을 조율 토론할 것이다. 그 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다”

- 그동안 한국일보에서 가장 호평 받았던 면이 기획기사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비판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다음에 우리가 매일매일 일어나는 현상을 쫓는 것이 아닌 심층적으로 다뤄야 할 기획도 중요하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 노력할 것이다. 지난 한 달은 여러 가지 정리할 부분이 많았지만 이후 우리가 내놓을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적 현상 중 가장 큰 문제가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약자의 확장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감싸 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또 하나는 진보의 생존 문제로 복지가 복지로 끝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복지의 강화를 비난하는 쪽에서는 ‘포풀리즘’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것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복지의 선순환 구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기자들이 현장에서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 기자들이 한국일보에 대한,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어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현장 얘기만큼 생생한 것은 없다. 가급적이면 소통을 많이 할 것이다. 의견을 잘 걷어들여 볼 것이다.”

- 부장단 인사조치는 따로 취하는가?
“창간이 6월 9일이다. 부장단 인사는 그때 하려고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일보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가만히 있었다면 오히려 한국일보가 너무 의기소침해졌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일보 기자들이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고 편집권 독립을 위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회사가 받아들였고 임면동의절차에 합의했다.

그런 절차를 보면서 한국일보는 기자들의 집단지성으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단순히 친소나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일보의 기자정신이 살아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일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나 한국일보가 역동적인 조직이고, 이에 따라 한국일보의 콘텐츠를 신뢰해도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기자들은 명분과 가치를 위해 움직였고 그 결과도 아주 매끄럽게 이어졌다. 단계마다 기자들이 합리적인 행동과 선택을 했다. 이런 신문이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신문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 우리 신문을 통해 정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치, 뉴스를 접하기를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이번 파동은 그 산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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