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능력이 부실해 방송사를 운영하기 힘들거나, 일부 심사위원들이 부적격 판단을 내린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 신청 사업자들이 무더기로 사업 승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오늘이 단독 입수한 ‘종합 편성·보도 전문 PP 승인 백서’(종편 백서)를 31일 분석한 결과, 종편 승인을 받은 채널A·JTBC·TV조선(당시 CSTV)·MBN(당시 MBS) 등 4개 채널은 전체 44개 세부 심사항목 중 수치로 계량화가 가능한 9개 항목 대다수에서 탈락된 사업자(한국경제의 HUB, 태광의 케이블연합종편 CUN)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앞서, 지난 2010년 12월31일에 종편 채널에는 이들 6개 신청 사업자 중 4곳이 방통위로부터 승인 받았고, 보도 채널에는 5개 신청 사업자 중 1곳 뉴스Y(당시 연합뉴스TV)가 통과됐다.

4개 종편이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 대다수는 ‘재정적 능력’·‘자금출자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재정적 능력’ 3가지 항목(자기 자본 순이익률, 부채비율, 총자산 증가율)에서 1위는 JTBC였지만 2·3위는 HUB·CUN이었다. 특히, HUB·CUN이 부채비율에서 각각 1·2위를 차지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JTBC는 3위·채널A는 4위·MBN은 5위·TV조선은 6위로 밀려났다.

자금출자 능력 3가지 항목(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 합계 대비 투자 금액의 적정성, 자기자본 대비 투자 금액 적정성, 신청법인 및 주요주주의 신용등급)에서는 CUN이 1위를 MBN이 6위를 차지했다. CUN은 ‘납입자본금’ 규모에서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종편 승인 사업자에 투자한 주주들의 신용 등급은 TV조선(3위), 채널A(4위), JTBC(5위), MBN(6위)로 탈락 사업자보다 낮았다. 최근 부실 판정을 받은 저축은행들이 종편에 투자한 것이 밝혀졌지만, 방통위는 종편 투자 주주들을 백서 등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종편 승인을 받은 사업자들은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35개 비계량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모회사로 둔 종편 신청 사업자들의 점수가 높았다. ‘재정적 능력’·‘자금출자 능력’ 6개 항목(총점 1000점에서 150점)에서 최고점과 최하점 차이가 10여 점에 불과했지만, 비계량 항목에서는 이 간격이 상당히 커졌다. 이 결과, 조중동 종편이 승인 ‘커트 라인’을 훌쩍 넘어갈 수 있었다. 

250점이 배정된 ‘방송의 공적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가능성’(공적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계획/ 지역, 사회, 문화적 기여도/ 신청법인의 적정성/ 시청자권익실현방안) 항목에서 JTBC나 TV조선이 1위를 차지해 최하점을 받은 사업자보다 30여 점 앞섰다.

JTBC나 TV조선이 ‘방송프로그램의 기획, 편성 및 제작 계획의 적절성’, ‘조직 및 인력운영 등 경영계획의 적정성’,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계획’ 등 나머지 대다수 항목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동아 종편 채널A는 ‘외주제작 계획의 적절성’, ‘시장전망 및 경영전략의 적정성’, ‘콘텐츠 산업육성, 지원계획’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보도 전문 채널의 경우에도 연합뉴스의 뉴스Y(당시 연합뉴스TV)가 ‘재정적 능력’ 등 수치로 계량화가 가능한 심사항목에서는 머니투데이 등에 뒤졌지만, 나머지 항목에서는 앞서 승인을 받게 됐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항목이 많다보니, 심사위원들 간에 탈락 여부를 두고 심사 결과가 엇갈기도 했다. 13명의 심사위원(심사위원장 제외) 중에서 4명이 MBN에 종편 탈락 점수를 줬다. 한 심사위원은 MBN에 726.54점(총점 1000점)으로 심사위원들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줬지만, 다른 심사위원이 852.54점 최고점을 줘, MBN은 심사위원들 점수를 평균한 결과 ‘커트라인’ 800점을 넘게 됐다.

뉴스Y도 심사위원 3명으로부터 탈락 점수를 받았다. 뉴스Y의 최하 점수는 742.73점(총점 1000점)이었고 최고 점수는 884.73점이었다. 반면, 머니투데이의 경우 심사위원 13명 중 6명이 승인 점수를 줬지만 탈락됐다. 머니투데이의 최하 점수는 729.38점, 최고 점수는 868.38점이었다. 심사위원들 간에 ‘널뛰기 심사’, ‘오락가락 심사’로 신청 사업자 간 희비가 엇갈린 셈이다.
 

   
 
 

이에 따라 심사소견서에서도 심사위원들 간에 이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똑같은 심사 항목인데도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정반대로 나온 것이다. 수치로 계량화 할 수 없는 항목에서 이견이 많이 나왔고, 사업자 중에서는 뉴스Y 사례가 가장 많았다.

뉴스Y는 심사소견서에서 △“자본 능력·출자 등 깨끗”-“학교법인 참여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여지지 않음” △방송발전 기여계획 “우수”-“특이성 없어 보이고, 마지 못해 준비하는 듯한 소극성”, “단편적” △“기존 보도채널과 차별화하는 점 우수”-“기획·편성이나 프로그램 수급 등에서 독창성은 별로 드러나지 않음” △“자금조달 및 운영계획 등 우수”-“다소 미흡” △“지역적 기여실적 및 시청자 권익실현방안 우수”-“다소 미흡” △“공정성 확보 방안 우수”-“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 있음” 등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MBN의 경우도 △“대부분 심사항목에서 기대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 그러므로 사업승인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음”-“전반적으로 우수” △“기획·편성 계획 적절”-“미흡”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 실현 계획 적정”-“다소 미흡” △“지역·사회·문화적 기여실적 및 계획 우수”-“미흡” △“자금조달에 문제 없는 것으로 확인”-“주주 신용등급이 신청업체들 중 가장 낮음” 등의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이 같이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심사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14명의 심사위원들은 지난 2010년 12월23일부터 31일까지 9일간 9번의 회의를 했고 종편·보도채널 사업자들로부터 각각 1번씩 의견청취를 했지만, 심사위원들 간에 사실상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이병기 심사위원장은 당시 24일 2차 회의에서 “심사 기본 원칙”이라면서 “궁금한 것이 있을 경우 위원님들 간에 개별적으로 질문하지 마시고, (방통위)심사지원반에 질의해 주셨으면 한다”고 밝혔고, 위원들도 동의했다. 이후 회의에 올라온 안건 대다수가 사실상 위원들 간 토론 없이 원안 그대로 통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심사위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며 부실하게 심사한 의혹, 방통위가 종편 4곳과 보도 채널 1곳을 엄격한 잣대 없이 승인했다는 의혹이 커질 전망이다. 심사에서 탈락된 사업자의 한 관계자는 “왜 이런 탈락 점수를 받았는지, 어떤 과정에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동안 방통위는 백서를 낸다고 말하면서 승인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이미 승인 사업자를 정해 놓고 점수를 마사지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락 사업자의 한 관계자는 “방송 공공성, 적정성 등의 비계량화 된 항목은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그동안 방통위는 사업자에게도 어떤 심사 자료도 주지 않았다”면서 전면적인 자료 공개를 촉구했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한 점의 의혹도 없어야 하는 게 기본이고, 논란이 많았던 종편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더욱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방통위가 자료를 비공개 하면 할수록 의혹만 부채질하고 사회적 혼란만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병기 심사위원장은 당시 12월31일 회의에서 “심사위원회는 근면성실하게 일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규정에 맞춰 정식으로 의결 처리하고 실행해 옮겼으며, 특히 심사 평가에 있어서 위원 한분 한분이 사업계획서를 검토파고 전문성과 독자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심사하는 정도(正度)평가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심사위원님들과 심사지원반이 코피를 흘리고 입술이 부르트는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방통위는 종편 자료 공개와 관련된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현재까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심준보)는 지난 25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해 1월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개인 정보를 제외하고, 청구된 정보를 공개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언론연대는 △방통위 전체회의 회의록 △심사위원회 회의록 및 심사자료 △심사위원회 운영 및 구성 등에 사용한 예산 집행내역 일체 △대상 법인의 특수관계자 참여 현황 △대상법인의 중복참여 주주 현황 △주요주주 출자 등에 관해 결정한 이사회 결의서 등 7개 사항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방통위가 발간한 ‘종편 백서’에는 △사업계획서 △심사위원회 속기록 △심사소견서 등이 담겼을 뿐, 정보 공개가 청구된 나머지 종편 자료는 담겨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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