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 도중 노조를 탈퇴하고 103일만에 9시 뉴스데스크 앵커로 복귀했던 배현진 아나운서가 작정하듯 MBC 노조와 동료 아나운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MBC 노조와 아나운서들은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배 아나운서가 자신의 복귀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해 논란이 예상된다.

배 아나운서는 29일 저녁 MBC 인트라넷 자유발언대에 <배현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파업 이후 업무에 복귀하기까지 소회를 밝힌 A4 4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배 아나운서는 해당 글에서 자신이 파업에 참여하게 된 경위부터 소상히 밝혔다. 배 아나운서에 따르면 MBC 기자회가 지난 1월 25일 제작 거부를 선언하고 농성에 돌입하게 되면서 뉴스 파행이 예상돼 뉴스 시간을 15분으로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배 아나운서는 "뉴스 시간 단축에 따라 co-anchor 에서 one-anchor로 대체 운영하기로 했고 당분간 제가 뉴스에서 빠지기로 협의했다"며 "그런데 보도국 제작거부 농성 첫 날 SNS상에는 '사측이 배현진 앵커를 강제 하차 시켰다'는 MBC 노조발 멘션이 활발히 리트윗 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배 아나운서는 이어 "사실이 아니었기에 노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이용마 노조홍보국장은 "몰랐다 미안하다. 확인 후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답했다"며 "모르는 사이 사측으로부터 탄압받은 여자 앵커가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배 아나운서는 제작 거부 기간 중 총파업 찬반 투표가 가결돼 파업에 돌입했고 "제작거부 기간이었기 때문에 뉴스 잔류, 하차 여부를 선택할 기회와 겨를은 없었다. 이것이 당초 제 거취를 택할 수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노조 파업에 대한 뜻을 두었기 보다는 뉴스 시간 단축으로 인해 앵커직에 하차하게 된 것이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사측의 탄압을 받은 것처럼 돼버렸고, 총파업 투표 가결 등 외부적 조건 등과 겹치면서 어쩔 수없이 파업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또한 공정 보도를 목표로 벌이고 있는 MBC 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배 아나운서는 "저는 뉴스 앵커로서 편집회의에 참석해 아이템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앵커 멘트를 직접 작성한다"면서 "적어도 저희가 외압에 굴복해 불공정 보도를 했다면 '그냥 그런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 정도가 아니라 '어느 날, 어느 뉴스' 등의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사죄드려야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다소 늦었더라도,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야하는지, 9시 뉴스데스크의 제작 현장에 있었던 제 경험에 비춰 파업의 명분을 재검토해야 하는지 확실히 해야 했다"며 "예컨대 파업의 시점과 파업 돌입의 결정적 사유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채 그저 동원되는 모양새는 수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배 아나운서는 이어 "저뿐만 아니라 파업이라는 최극단의 선택을 100% 이해 못하는 동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제작 거부를 선언했던 MBC 기자회는 김재철 사장 체제 하에 이뤄진 불공정 보도 일지를 공개하고, 노조 파업 이후에도 20건의 불공정 보도 사례를 특보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파업 직전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는 김문수 지사의 119 전화 논란 보도, 한미FTA 반대 첫 전국 동시 집회 보도, 미국 법원에서 입수해 리포트한 BBK 판결문 보도 등을 누락한 것이 있다.

대표적인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에 대한 불공정 보도 사례로는 대통령 무릎기도 사건 취재 저지, 남북경협 중단 1년 방송 중단 조치, 고엽제 매립 파문 취재 저지, 한진중공업 사태 취재 저지, 한상대 검찰총장 인사논란 취재 저지 등이 있고,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의 불공정 사례로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MC 김미화 압력 퇴출, <시선집중> 고정 패널 김종배 압력 퇴출, 고정 출연 예정 배우 김여진씨 퇴출 등이 있다.

MBC 기자회 관계자는 "배현진 아나운서 말대로 당시 앵커를 맡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충분히 실증적 사례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마 MBC 노조 홍보국장도 "김재철 사장 체제 2년 중 왜곡 편파 보도가 숱하게 나오고 있다고 비판을 했는데 본인만 귀를 닫고 있었던 것"이라며 "자신이 노조를 탈퇴하고 복귀한 것에 대해 자신을 합리화를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MBC 중견 아나운서도 "불공정 보도와 관련해 배 아나운서는 당시 뉴스를 진행하면서 더 큰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미안함이 있었다면 돌아가지도 않았겠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 갑자기 문득 불공정 보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하는 것에 뜬금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고 꼬집었다. 

배 아나운서는 또한 "야당 측 국회의원과 진보 진영의 저명인사들이 차례로 초청되었고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알려지며 여러 번 정치적 성향을 밝혀온 연예인들이 방문해 파업을 독려했다"면서 "공정방송을 지향하기 위해 언론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이 사실에 누가 이의를 달겠느냐. 그러나 비단 '진보 인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방송'과 '완벽한 언론 독립'을 기치로 내건 우리였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쪽 진영의 인사들에게 무게가 실리는듯한 모습은 다소 위태롭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배 아나운서는 이어 야당의 총선 패배 이후 노조가 '멘탈 붕괴' 상태라는 식이 소문이 돌았다면서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의사 표현과 참여는 오로지 유권자로서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저는 우리의 파업이 이 무게 중심을 잃고 있지 않나 우려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배 아나운서 이같은 소회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반박이 나왔다. 이용마 홍보국장은 "MBC 파업 초기 지지응원하는 사람은 야권 인사인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내 남경필, 유승민, 김성식 의원을 비롯한 중도 쇄신파들이 MBC 파업 지지를 표명하고, 낙하산 사장 퇴출 주장에 동의했다"며 "여권 인사라는 점에서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노조에서 관련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는데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배 아나운서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중견 아나운서도 "배 아나운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파를 위한 파업도 아니고,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이라는 것이 명확해진 시점에서 돌아간 것"이라며 "애초부터 파업에 반대를 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100일 넘어 복귀한 시점에 와서 시작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배 아나운서는 특히 파업에 동의하지 못한 자신에게 모 아나운서 선배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사실상 협박을 당했다는 것이다.

배 아나운서는 또한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나 작은 진실은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라는 선배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묻고 싶다. 공정이라는 대의를 쟁취하자고 수단이 거짓이어도 된다는 건 제 상식으론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배 아나운서는 "때로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서도 중견 아나운서는 "폭력이 있었다는 부분은 전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며 "폭력으로 억압한다고 해도 유지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몇달 월급도 못받고 가정에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누가 마음이 안 든다고 해서 때린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배 아나운서는 이 부분에 관한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용마 홍보국장도 "누가 누구를 앵커를 못하게 하는 것은 MBC 시스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 아나운서 선배라는 얘기를 빌어서 말도 안되는 시스템을 얘기하는데, 그런 시스템이라면 배 아나운서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절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배 아나운서의 글을 두고 순수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측과 교감을 통해 철저히 기획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배 아나운서의 글이 이날 저녁 MBC 시청자 홍보부를 통해 기자들에게 배포되는 형식을 빌린 것도 배경에 의문이 쏠린다.

이 홍보국장은 "사측에서는 권재홍 앵커를 통해서 노조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려는 음모가 있었는데 실패로 귀결이 됐고, 이런 상황에서 김재철 사장에 대한 엄청난 비리들이 폭로가 되면서 사측이 코너에 몰렸다"며 "사측이 복귀한 사람을 붙잡고 노노 갈등을 유발하려고 갑자기 카드를 꺼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MBC 아나운서와 MBC 노조는 배현진 아나운서의 글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공식 성명을 통해 반박하는 자체로 조합원간 갈등을 유발시키려는 사측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홍보국장은 "솔직히 배현진 아나운서가 제대로 검증받지 못하고 9시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으면서 갑자기 대한민국 9시 뉴스의 중요한 메인 인물인 것처럼 부각됐다"면서 "사측이 배현진이라는 스터성을 이용한 상품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치 체제하에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사 제목을 <배현진 아나운서 "나치 선전도구 됐다" 파문>에서 <"배현진 아나운서 나치 선전도구 됐다" 파문>으로 따옴표 위치를 수정합니다. 5월30일 오전 11시7분. 편집자주.)

 

배현진 아나운서가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

103일간의 파업 후, 노조 탈퇴,

방송에 복귀한 후 동료들이 SNS상에 남긴 멘션들이 여럿 기사화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 개인적인 고민과 결단에 의해 현업에 복귀하겠다 밝혔을 뿐인데 제 의지보다 더 폭넓은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신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던 그 간의 제 고민에 대해 정직하게 밝히는 글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일련의 상황을 낱낱이 이야기 하며 제 결정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안타깝습니다.


● 파업 참여 과정, 뉴스 하차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수순

지난 1월 25일 수요일, MBC 보도국 기자회는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의 퇴임을 요구하며 사흘간의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뉴스 파행이 예상되는 비상상황에서 보도국 편집부는 수목금, 평일 뉴스데스크를 15분으로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스 시간 단축에 따라 co-anchor 에서 one-anchor로 대체 운영하기로 했고 당분간 제가 뉴스에서 빠지기로 협의했습니다. 그런데 보도국 제작거부 농성 첫 날 SNS상에는 ‘사측이 배현진 앵커를 강제 하차 시켰다는 MBC 노조발 멘션이 활발히 리트윗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기에 노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이용마 노조홍보국장은 “ 몰랐다 미안하다. 확인 후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무수히 RT가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모르는 사이 사측으로부터 탄압받은 여자 앵커가 되었고 ,이용마 국장에게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것에 제 이름 석자를 동원하지 않아주셨으면 하고 당부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토요일, 노조는 ‘1월 30일 월요일 06시부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총파업 찬반 투표는 제작거부 기간 중 함께 진행되었고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전체 노조원 939명 중 783명이 투표해 533명 찬성, 15명 무효, 235명 반대 69.4%로 찬성 가결. 이전 파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찬성률이었지만 이미 ‘가결’된 사안이었기에 원칙대로 파업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물론 제작거부 기간이었기 때문에 뉴스 잔류, 하차 여부를 선택할 기회와 겨를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초 제 거취를 택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 배현진, 왜 무엇을 고민하게 됐나

저는 뉴스 앵커로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아이템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앵커 멘트를 직접 작성합니다. 적어도 저희가 외압에 굴복해 불공정 보도를 했다면 ‘그냥 그런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 정도가 아니라 ‘어느 날, 어느 뉴스’ 등의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사죄드려야 합니다.

다소 늦었더라도,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야하는 지, 9 시 뉴스데스크의 제작 현장에 있었던 제 경험에 비춰 파업의 명분을 재검토 해야 하는 지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파업의 시점과 파업 돌입의 결정적 사유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채 그저 동원되는 모양새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들께서는 ‘입사 후 고속으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 앉다보니 할 필요 없는 걱정까지 한다. 생각을 간단히 하라. 여자들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조직의 생리를 모른다. 그냥 따라와라 ’며 저의 고민을 일축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파업이라는 최극단의 선택을 100% 이해 못하는 동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입사 5년 차이고, 파업은 네 번째입니다. 연이은 파업 피로를 덜기위해 많은 문화행사가 기획됐고, 마치 대학 축제 같은 즐거운 파업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먼저 황급했던 파업돌입의 이유 등을 공유할 만한 장이 마련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우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하여-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 생각임을 먼저 밝힙니다.

적극적인 집회 참석을 유보해오던 중 아나운서 동료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은 큰 충격과 박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여지를 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제게도 집회에 성실히 참여해 달라는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나가도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야당 측 국회의원과 진보 진영의 저명인사들이 차례로 초청되었고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알려지며 여러 번 정치적 성향을 밝혀온 연예인들이 방문해 파업을 독려했습니다. 초청 인사들의 말씀은 모두 지당한 말씀이었습니다. 공정방송을 지향하기 위해 언론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이 사실에 누가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러나 비단 ‘진보 인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방송’과 ‘완벽한 언론 독립’을 기치로 내건 우리였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쪽 진영의 인사들에게 무게가 실리는 듯한 모습은 다소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집행부인 한 아나운서 선배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실책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 것이라면 다시 일어서는 것도 반드시 스스로여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힘을 빌리거나 특정 진영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배의 대답은 제 의도를 비껴갔습니다.

“보수진영 정치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우리 파업에 지지의사를 보내준다면 당연히 초청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못 부르는 것일 뿐”

진보건 보수건 간에 ‘이미 자립 의지를 잃은 것인가. 허탈했습니다.

4.11 총선 후 노조의 행보는 이전에 비해 고요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야당의 총선 패배로 노조가 소위 멘탈 붕괴 상태라는 식의 소문이 돌고 돌아 제게도 들어왔습니다. 물론 노조는 곧 사실무근이라며 공식 반박했습니다. 정말 소문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의사 표현과 참여는 오로지 유권자로서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파업이 이 무게 중심을 잃고 있지 않나 우려됐습니다.


● 선배의 엄포, 진실의 무게는 과연 잴 수 있는가 의문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2월의 마지막 날, 모 아나운서 선배와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습니다.

이미 많은 선배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저를 염려했었기에 같은 이유시냐 물었습니다.

“선배님 저 혼란스러워서 제 이름과 얼굴 걸고 당당히 참여하기 힘듦니다. 뉴스 앵커고 공명선거 홍보대사인데 정치적 색채를 가진 구호를 외치거나 그런 성격의 집회 자리에는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보에 사실확인이 명확히 되지 않은 채 실리는 내용들도 영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 화가 나서 부른거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나 작은 진실은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

“그런 논리라면 계속해서 진정성에 의심 갖는 제가 이쯤에서 더 귀찮게 묻지 않고 그만 두는 게 맞겠네요”

“...... 그건 안돼. 그렇게 되면 노조가 안 된다. 그리하겠다면 지금 내가 무릎 꿇고라도 말려야 한다. 휴......그만 가자. 소화 안 된다”

만남은 아무 소득없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란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묻고 싶습니다. 공정이라는 대의를 쟁취하자고 수단이 거짓이어도 된다는 건 제 상식으론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 이해하기 힘든 동료간 인신 공격. 어떻게 가능해졌나

사상 유례없는 끝장 파업. 최장 파업 기록 갱신.

한 달 두달 월급을 못 받고 상황이 악화 될수록 조직 안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방송에 복귀한 뒤 '원래 행태', '뒤통수를 치는 구나' 또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등 자극적인 SNS 멘션들이 같은 회사 동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의 방증이라 생각합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이의제기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민주적 절차를 실천해야 할 노조 내에서 절대로 목격되어선 안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 아닌 누구라도 어떤 일에 참여의 의미가 없다 판단될 때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것, 아파도 이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두거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고쳐나가자는 건강했던 마음이 일부 변질되고 있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 마지막 고백과 약속

저 또한 바른 방송인, 바른 언론인의 화두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업 내내 고민한 것입니다. 다수가 속한 조직에서 나오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파업은 언젠가 끝납니다. 상황을 지켜보며 눈치껏 참여하다보면 더 환영받으며 복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더 의의를 잃어가고 있는 제가 눈치 보는 것 또한 비겁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 소신에 의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의 뜻, 존중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신분은 비노조원인 MBC 아나운서입니다. 노조에서 나왔다고 어느 정권 편이니 사측이니 하며 편을 가르려는 시도, 그 의도 매우 불쾌합니다.

여전히 제게 가장 준엄한 대상은 시청자뿐입니다.

진정성 있는 대의명분과 정당한 수단을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한 두려움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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