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심의를 담당하는 위원이 선거법 위반 사범이라고?

엄광석 방송통신심의위원이 지난해 선거법 위반 행위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격 논란이 일고 있다.

엄 위원은 지난해 8월 인천 옹진군의 한 식당에서 영흥면 주민 19명에게 70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당시 박근혜 의원 지지 모임인 인천희망포럼 가입을 권유하고,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 경선에 출마할 때 도와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기소를 당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2일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송경근)는 엄 위원이 ‘인천희망포럼’의 고문이라는 점을 들어 "18대 대선에 출마하려는 박 비대위원장을 위해 희망포럼을 홍보하고 주민들을 가입시키기 위해 식사를 대접한 것"이라고 판결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엄 위원은 지난해 5월 여당 추천 위원으로 방통심의위원으로 위촉됐는데, 위원 활동을 하는 중에서도 정치 활동을 한 셈이다. 방통심의위는 객관성, 공정성 심의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엄중히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 위원의 선거법 위반 행위가 부적절하며 위원 자격 상실에 준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광석 위원의 선거법 위반 내용은 정치권과 방통심의위 노동조합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4일 열린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 엄 위원의 자격 논란에 대해 개인 신상과 관련된 문제로 제한하고 아직 최종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며 관련 내용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야당 추천 김택곤 위원은 "특정 위원과 관련된 일이라 안타깝지만 심의위 중립성, 공정성 위상에 관련된 사안이 개인 신상 문제로 인해 발생한만큼 해당 위원이 설명 하는 것이 좋다"며 공개적인 입장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만 위원장은 엄광석 위원 본인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공개적인 회의 석상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박 위원장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서 확정이 안 된 재판 중에 있고, 벌금형 선고를 받았는데 우리 심의위원 자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사실상 공개 입장을 거부했다.

박 위원은 "우리 위원들이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있어서 우리가 정치적 중립에 대해 손상을 가져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재판이 안 끝난 상황에 대해 본인(의사에 따라) 스스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좋지만 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야당 추천 장낙인 위원은 이에 대해 "여러가지 위원회 안팎에서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번 전체회의를 통해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만 위원장은 하지만 "공개하는 것을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얘기를 할 수 없다"며 "엄 위원이 회의 끝나고 위원들에게 설명하도록 한다고 했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강요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엄 위원은 박만 위원장과 야당 추천 위원들간 공방을 지켜볼 뿐 침묵을 지켰다.

박만 위원장은 1심 재판이 끝나고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본인의 입장을 묻고 심의위원 자격을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공정성 심의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인사가 심의를 하고 있다는 자체로 하나만으로 방통심의위 신뢰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선거법상 벌금형 100만원을 선고 받으면 공직 자격 상실 요건이 된다. 80만원 벌금형 선고는 법상 공직 자격을 박탈하지는 못하지만 방통심의위의 성격과 위상을 고려할 때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선거법 위반 내용이라면 스스로 자진사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 방통심의위 안팎의 거센 목소리다.

방통심의위 한 관계자는 관련 사실을 전하면서 "이런 심의위원이 방통심의위에 남아있다면 결국 방통심의위 신뢰성을 상실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특정 정당의 정치행위를 해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정치적 중립성이 엄격히 요구되는 심의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성토했다.

과거 박경신 위원이 심의위 자체 징계를 받은 경우에 비춰봐도 엄광석 위원의 입장조차 공개적으로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박만 위원장은 박경신 위원의 예를 들어 "우리 직무와 관해서 처리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라며 엄광석 위원과 차별성을 뒀지만, 정치적 중립성 위반 여부로 볼 때 오히려 박 위원보다도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하는 사안이다.

박 위원은 자신의 블로그 <검열자 일기>에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남성의 성기 사진을 올렸고 이후 미디어오늘 등에 기고한 글에서 막무가내 검열을 하고 있는 방통심의위를 깡패에 빚대는 등 언론 매체에 기고와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아 지난해 8월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위원회의 명예를 실추하고, 위원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면 "유사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단호히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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