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내용이 IMF체제 이후 해체위기에 몰린 가정의 고통스럽고 아픈 사연들인데, 상을 받았다고 기뻐할 수도 없고…”

지난 4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상 시상식에서 라디오 대상(정보 프로그램 부문)을 받은 MBC AM ‘여성시대’의 정찬형 차장(라디오국 제작1부·40)은 수상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 끝을 흐렸다.

정차장이 이렇게 멋적게 소감을 말한 것은 수상작인 <벼랑 끝에서 하늘을 보다>가 IMF체제 이후 기업 부도와 실직 등으로 해체 위기에 내몰린 가정들의 서글픈 사연을 소개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9년전 이민을 떠났다가 세자녀를 그대로 둔 채 다시 귀국해 시작한 사업이 IMF한파로 부도를 맞아 자녀들과 전화 연락조차 제대로 못하는 한 ‘IMF 이산가족’의 사연, 실직한 남편이 가출하자 생계가 막막해져 두딸을 고아원에 보내려고 114 전화번호 안내를 찾았다는 30대 주부와 통화하던 교환원이 ‘엄마 고아원 안갈래’라고 보채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는 사연, 한밤중 찾아든 도둑이 귀중품은 그대로 둔 채 쌀과 반찬통만을 훔쳐가며 ‘죄송하다’는 쪽지를 남겨둔 것을 보고 실업문제의 실상을 절감했다는 한 주부의 사연 등 IMF로 상처받는 서민들의 모습을 실감있게 전해주고 있다.

“IMF가 터진 뒤 책임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래서 IMF의 피해자인 국민들, ‘민초’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를, 지금의 위기가 어떤 수준인가를 보여주면서, 과연 이 문제가 그들의 책임인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정차장이 밝힌 <벼랑 끝에서…>의 제작 취지이다.

실제 IMF 이후 ‘여성시대’로 보내온 하루 300여통의 편지 가운데 이런 애달픈 사연이 30% 이상을 차지한다.
“실직자와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분노는 자칫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희망’을 일구기 위해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보다 빨리 진행돼야 하고, ‘여성시대’가 이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정차장은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인지 ‘여성시대’는 IMF 이후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주의를 돌리고 있다. 개혁의 과제는 물론, 이를 위한 보통 사람들의 몸짓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광복절 특집으로 꾸며진 엿세 동안의 연속 방송 ‘시민운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의 박원순 사무총장 등 6명의 시민운동단체 대표자들을 초청, 시민단체들의 활동과 전망 등을 소개한 특집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엔 실업대책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살피는 기획을 내보냈고 5월엔 의료보험제도의 허와 실을 다루기도 했다.

“비록 나라는 가난해졌지만 일한 만큼 대우받는 사회, 정의로운 사람이 인정 받는 사회, 한 마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성시대’가 IMF 이후 많은 청취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데는 이처럼 ‘자갈밭 같은 현실에서 모래알 같은 희망찾기’에 나선 정차장의 바람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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