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저녁 MBC 9시 뉴스데스크의 첫 뉴스는 권재홍 MBC 보도본부장에 대한 소식이었다. 권재홍 앵커를 대신해 임시로 메인 앵커를 맡은 정연국 앵커는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어젯밤 10시20분쯤 본사 현관을 통해 퇴근하려는 순간 파업 중인 노조원 수십명으로부터 저지를 받았다”며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 20여 분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18일 MBC 노동조합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권 본부장은 이날 저녁 1층 로비에서 노조원들을 맞닥뜨렸지만 청원경찰에 둘러싸여 별다른 충돌 없이 정문 현관 쪽으로 이동해  승용차에 올랐다. 노조원들이 “권재홍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따라갔지만 권 본부장과는 5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멀쩡하게 걸어간 사람이 뉴스 진행을 못할 정도로 충격을 입었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뉴스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권 본부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발을 헛디뎌서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물론 노조가 제시한 동영상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방송을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은 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민주통합당이 논평을 내고 “노조가 에워싼 것은 맞지만 청원경찰 40여명의 호위를 받고 퇴근한 권 본부장이 별다른 충돌도 없었으면서 헐리우드 액션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노조의 기자회견 이후 MBC는 말을 바꿨다. MBC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권재홍 앵커가 지난 16일 파업 중인 MBC 기자들의 항의 시위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오늘(18일) 병원에 입원했다”면서 “권재홍 앵커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두통과 탈진증세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며, 입원 기간은 상태 경과를 보고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BC는 처음에는 권 본부장이 넘어졌다고 했다가 차량 문에 허리 등이 끼었다고 말을 바꿨다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만약 권 본부장이 신체적으로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허리 부상 때문에 방송 진행을 못하게 됐다던 17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의 첫 뉴스는 명백한 오보가 된다.

권 본부장의 허리우드 액션이나 MBC 뉴스데스크의 오보보다 더 심각한 건 MBC가 이 사안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MBC는 허위 보도를 이용해 노조를 압박하고 있는데 이는 왜곡보도일 뿐만 아니라 뉴스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최근 노조를 탈퇴하고 복귀한 배현진 아나운서도 허위 보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MBC 뉴스데스크는 정작 노조원들이 그날 왜 권 본부장을 만나려 했느냐는 대목은 빼놓고 있다. MBC는 최근 ‘시용기자’라는 이름으로 계약직 기자 채용 공고를 낸 바 있다. MBC는 ‘1년 근무 후 정규직 채용’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MBC는 이번 파업이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 등이 쟁점이 아니라서 불법파업이라는 입장이지만 편집·편성권 독립을 요구하는 공영방송 기자·PD들의 파업은 단순히 파업 요건을 갖췄느냐 여부로 합법·불법을 따질 사안이 아니다. 불법 파업을 감수하고 넉 달 가까이 파행 방송을 계속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봐야 한다.

권재홍 앵커의 어처구니 없는 와병과 뉴스데스크의 왜곡 보도는 MBC 뉴스의 사유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거짓 뉴스를 내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공영방송을 점령하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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