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을 치른 지 한 달가량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총선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주목할 대목은 19대 총선에서도 여론조사는 여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실제 선거와는 다른 ‘엉뚱한 예측’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선 막판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개표 결과와 어느 정도 일치했을까. / 편집자 주

‘숨은표’의 전통적인 의미는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는 ‘표심’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와의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특정 정당 후보 쪽 지지율에서 몇 %포인트를 빼야 실제 개표 결과와 유사할 것이라는 관측, 그것이 바로 숨은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명박-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 정권은 숨은표를 둘러싼 쓰라린 경험이 있다. 주요 선거 결과를 보면 여론조사는 분명히 앞섰는데, 심지어 여유 있게 앞섰는데 실제 개표 결과는 초박빙 승부를 벌이거나 심지어 뒤집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다. 선거를 정확히 엿새 앞둔 5월 27일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당시 MBC 뉴스데스크 메인 뉴스 제목은 <수도권, 한나라 초강세>로 뽑혔다.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50.4%,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32.6%로 오 후보가 17.8%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고, 인천광역시장은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가 11.3%포인트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표본오차는 ±3.1~3.5%포인트 수준이었으니 오차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격차였다. 그것도 언론의 공표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여서 여론에 미치는 충격파는 더욱 컸다.

그러나 개표 결과를 보면 서울시장 선거는 불과 0.6%포인트 차이로 오세훈 후보가 박빙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천시장의 경우 거꾸로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8.3%포인트 앞선 개표 결과가 나왔다. 결국 방송 3사 여론조사는 실제 개표 결과와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17.2%포인트의 오차, 인천광역시장은 무려 19.6%포인트의 오차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은 각종 선거 때마다 ‘숨은표’ 노이로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19대 총선 역시 선거 막판까지 숨은표가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이혜훈 종합상황실장은 19대 총선을 3일 앞둔 4월 8일 회의에서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여론조사 결과에서) 많게는 8%, 어떤 지역은 10% 이상 빼야 한다는 분석이 전문가의 중론”이라며 “일부 수치가 좋다고 선거 결과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근거가 전혀 없다. 새누리당은 아직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쪽을 부풀린 여론조사 결과, 즉 야권 성향의 숨은표는 어떤 수준이었을까. 방송 3사가 3월 31일~4월 1일 조사해 4월 2일 발표했던 서울 지역 21곳 총선 여론조사와 해당 지역의 총선 실제 개표결과를 분석해 보면 전체적으로 새누리당 쪽 후보들이 여론조사 덕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여야 득표율(지지율) 격차를 기준으로 볼 때 새누리당은 21곳 중 17곳에서 개표결과보다 여론조사에서 훈훈한 결과가 나왔고, 야당 쪽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4곳에 불과했다. 새누리당이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게 나와도 실제 개표는 박빙 승부인 경우가 많았으며,  뒤집힌 곳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울 서대문갑의 경우 이성헌 새누리당 후보가 우상호 민주당 후보를 8.5% 포인트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실제 선거에서 득표율은 우상호 후보가 8.8%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17.3% 포인트 오차가 발생한 셈이다. 영등포갑 역시 새누리당 후보가 4.8% 포인트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실제 개표결과는 민주당 후보가 7.2%포인트 앞서면서 12.0% 포인트의 오차가 발생했다.

방송 3사의 서울 21곳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평균적으로 새누리당 쪽 후보 지지율에서 5.3%포인트를 빼면 실제 개표결과와 유사한 여야 득표율 격차가 나왔다. 쉽게 얘기해서 새누리당 쪽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5% 포인트 정도 앞선다고 해도 실제 개표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는 얘기다.

방송 3사가 4월 1~2일 조사한 경기도·인천광역시 12개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결과의 경우 새누리당 쪽 후보의 지지율에서 평균적으로 3.5% 포인트 정도를 빼면 실제 여야 득표율 격차와 유사한 결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각각 여론조사 공표 마감 시기인 4월 5~6일자 지면을 통해 발표했던 여론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조선일보의 수도권 지역 13곳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에서 평균적으로 3.4% 포인트 정도를 빼면 실제 여야 득표율 격차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의 경우 11곳의 수도권 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볼 때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에서 평균적으로 5.5% 포인트 정도를 빼면 실제 여야 득표율 격차와 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19대 총선에서 방송 3사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발표한 수도권 여론조사에서는 여야 득표율 격차를 기준으로 볼 때 3~5% 포인트 정도의 야권성향 숨은표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방선거에서는 보통 7~8% 포인트, 많게는 10% 포인트 이상의 숨은표가 존재한 것으로 인식됐던 것과 비교해보면 줄어든 수치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조사방식의 차이라고 봐야 하는데 과거 여론조사에서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표본에 의존하는 회사는 많게는 10~20%포인트까지 격차를 보이기도 했지만, RDD 방식이 보편적으로 도입되면서 숨은표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거 보편적으로 활용하던 KT 전화번호부 등재 여론조사는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의 결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도록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의 여론조사가 도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오차는 줄어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수도권을 기준으로 볼 때 평균적으로 3~5% 포인트 수준이라는 것이지 지역구로 들어가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서대문갑이나 영등포갑의 경우처럼 실제 개표 결과 10.0% 포인트 이상의 숨은표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면 여론조사에서 실제 바닥 민심보다 지지율이 낮게 나온 야권 후보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 출마해 여당의 유력 후보와 맞섰던 민주통합당의 한 후보는 “바닥 민심은 나쁘지 않은데 여론조사는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으로 나와서 애를 먹었다. 당에서도 지는 것으로 판단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서 당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개표 결과, 해당 지역의 여야 득표율 격차는 1.0% 포인트도 되지 않는 초박빙 승부였고, 새누리당 쪽이 신승했다.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선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숨은표 논쟁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사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19대 총선의 주요 언론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야당 성향 숨은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서울 강남 서초 지역구와 영남의 경우 여론조사는 야권이 선전하는 결과가 나와도 실제 개표는 새누리당 쪽에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서초갑과 강남을의 경우 방송 3사 여론조사의 여야 ‘지지율’ 격차보다 개표 이후 드러난 여야 ‘득표율’ 격차는 5.0% 포인트 가량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19대 총선 최대 관심 지역이었던 부산 사상구의 경우 방송 3사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22.7%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개표 결과는 11.2% 포인트 격차에 불과했다. 조선일보가 4월 6일 발표했던 부산 북·강서을 지역의 경우 민주당 문성근 후보가 6.3%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개표 결과는 새누리당 김도읍 후보가 7.9%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나 오차가 14.2% 포인트에 달했다.

민주당 유력 후보들이 부산 여론조사에서 11~14%포인트 정도 앞서도 실제 개표 결과를 보면 박빙 승부를 연출했다는 얘기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20% 포인트 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왔던 문재인 후보는 당선된 반면 5~10% 포인트 정도 앞서는 것으로 나왔던 문성근 후보는 새누리당 쪽 상대 후보에게 역전당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민주통합당 텃밭인 호남권 역시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선전하더라도 실제로는 민주당 쪽 후보가 유리한 선거결과가 나왔다는 얘기다. 이는 대선 여론조사에서 교훈이 될 수 있다.

김남수 한백리서치 대표는 “총선 결과를 보면 숨은표는 기존 야권 지지성향은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새누리당 지지성향이 더 강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재보궐선거 결과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선 역시 지역에 따라서 숨은표에 대한 분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영남 쪽은 새누리당 숨은표, 호남 쪽은 민주당 숨은표가 여론조사에 반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