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 논란을 계기로 새정부내에서 다소 위축됐던 자신들의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특히 김종필 총리가 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골프회동을 갖고 최 교수를 강도 높게 비판한 이후 조선일보의 대응 양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강한 자신감마저 내보이고 있다.

당초 월간조선이 이승복군 오보 논란(10월호), 그리고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11월호)을 제기할 때만 해도 조선일보의 ‘거사적 전략’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보다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의 개인적 성향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에 대해 시민단체, 나아가 새정부 일각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그 양상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들어 조선일보 움직임에서 주목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은 무엇보다 ‘확전’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은 지난달 24일 본지를 통해 최 교수 법적 대응에 맞서 월간조선 반론을 게재한 이후 한동안 소극적 대응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일종의 ‘휴지기’에 접어들면서 연일 최교수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부국장급으로 대책팀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조갑제부장 등이 나서 그동안 월간조선 등에 단골로 등장했던 국내외 학자들에게 관련 기사를 청탁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사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최 교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겨레, 중앙일보, 서울신문 등 조선일보 최장집 보도에 대해 이견을 보여온 신문사를 겨냥, ‘각개격파식’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조선은 한겨레의 최장집 교수 보도 태도(11월 5일자 미디어면), 중앙일보의 ‘방북목사 추방’ 보도 물의(11월 5일자 사회2면), 서울신문 고위 경영진 관련 기사(11월 7일자 미디어면) 등을 통해 해당 언론사를 자극하고 있다.

11일 제호를 변경하고 새 출발을 선언한 서울신문의 경우 월간조선이 12월호에서 기사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양측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해 최장집 교수의 사상검증을 강도 높게 비판 해온 MBC 등 TV방송사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대응을 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물론 조선일보의 경우 ‘확전 의지’를 내보이면서도 싸움의 대상은 철저히 ‘최장집 교수’문제에 국한시키려 하고 있다.
이와함께 조선일보의 주 공격 대상이 김종필 총리 발언을 기점으로 시민단체에서 정치권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특히 정형근 의원 등 친조선일보 인사들이 국정감사 등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조선일보 의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청와대의 분석에서도 어느정도 읽혀진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8일 “김 총리가 ‘조선일보’를 비롯해 보수여론을 대변하는 언론사 간부들과 잇달아 접촉하는 등 ‘내각제-보수 대연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말하자면 정치권의 복잡 미묘한 역학 관계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조선일보가 결과적으로 공동정권의 균열을 겨냥하고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반DJ=친JP’ 등식을 통해 자민련을 견인하고 국민회의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처럼 전개되는 데는 청와대의 미온적 대응이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통치권적 차원에서 최 교수 문제에 대한 뚜렷하고도 확실한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결국 조선일보가 설정한 ‘보-혁논쟁’이 급속 확산되는 사태를 빚었고 최 교수 논쟁의 주도권이 조선일보에 이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최교수 사상검증을 둘러싼 논란의 향배는 청와대의 의지에 상당부분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선일보의 사상 공세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고 최 교수 사태에 적극 대응하는 것만이 조선일보의 국정(國政) 교란 움직임을 제어할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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