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저녁 파업기금 마련을 위한 MBC 아나운서 일일주점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홍대 클럽 앞에는 행사 시작 전부터 유명 아나운서들을 보려는 인파가 30미터나 이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일일주점은 뉴스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정민 아나운서가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고 선배 박경추 아나운서가 맥주를 따르는 일을 나눠 맡는 등 30여 명의 아나운서들이 참여했다.

방송인 유재석씨의 부인이기도 한 나경은 아나운서는 류수민 아나운서와 함께 아나운서 캐리커처가 그려진 '파업 티셔츠' 판매를 맡았다. 손정은 아나운서가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는 모습도 보였다. 주점 밖에서는 오상진 아나운서가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일일주점을 앞두고 양승은 최대현 아나운서가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회사는 곧바로 보도 자료를 내고 두 아나운서의 복귀사실을 알렸다(며칠 뒤에는 배현진 아나운서도 노조를 탈퇴하고 <뉴스데스크>에 복귀했다). 인터넷에는 배신감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의 글들로 넘쳐났다.

일일주점 행사장에서 만난 김정근 아나운서는 “이탈자가 나와 당혹스럽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노조 간부이기도 한 그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총진행을 맡아 동료들의 이탈에 누구보다 마음의 상처가 큰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복귀한 동료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아나운서는 “100일을 넘는 파업이라는 건 MBC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100일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떠난 사람도 있지만 남은 사람들이 더 많다”며 “아나운서국의 결속력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들과 PD들이야 아이템을 검열 당하고 취재 제약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나운서들은 무엇 때문에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뉴스앵커를 맡은 아나운서들에게 예전과 다르게 압력이 내려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대로 앵커멘트를 할 수도 없었고, 인터넷 이슈를 골라 소개하는 것에도 검열이 들어왔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따로 불러서 얘기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김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는 취재와 편집을 하지는 않지만 뉴스의 최종 전달자라는 자부심을 모두 갖고 있다”며 “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동료들의 믿음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이라고 말했다. 공영성 훼손으로 MBC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아나운서는 이번 파업 기간 동안에 회사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2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도 받았다. 회사는 이와 별개로 그의 월급과 재산 3000만원을 가압류하기도 했다. 김 아나운서의 아내인 KBS 이지애 아나운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에 매일 놀라고, 매일 실망하는 중”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아나운서는 이 아나운서의 최근 심경을 묻는 질문에 “오빠가 하는 일이면 다 옳은 일이라는 아내의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었다”며 “반드시 공영성을 회복한 MBC를 시청자 여러분께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