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향신문 내부에서 작은 파란이 일었다. 지난해 9월 입사해 올해 3월까지 수습교육을 마친 경향 49기 수습기자 9명이 올린 공동 성명 때문이었다.

'입 닫고, 지갑 열고, 생각 멈추는 수습인가요'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이 지난 3월 29일 발행된 노보를 통해 발표되자 편집국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갓 수습교육을 마친 신입 기자들이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는 선배들도 있었고, 해당 글을 통한 문제 의식이 편집국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을 뿐 상당부분 선배 기자들도 동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입기자들은 실수에 대한 반성문 쓰기 거부, 실질적인 취재 수당 지급, 수습기자에 대한 인간적 대우, 수습기자 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요구했다.

특히 수습기자 교육 과정에서 잘못한 일에 대해 반성문 쓰기는 전통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관행이라는 데는 편집국 내부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컸다. 수습교육 중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시간 엄수와 보고, 출입처 정보 보고 등인데, 이 과정에서 실수를 할 경우 어김없이 반성문 쓰기가 '벌'로 주어졌다.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이해인 기자의 경우 보고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성문을 썼다. 문제는 30분 안에 A4 5장 분량의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것. 반성문이라는 굴욕적인 글 형식도 문제지만 도저히 물리적으로 쓸 수 없는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것에 수습기자들의 불만은 컸다.

실질적인 취재수당을 지급해달라는 요구 역시 비합리적인 관행이 계속된 문제에 해당된다. 경향 수습기자들은 아침과 저녁에 보통 관내 경찰서 3곳, 병원 2곳을 출입처로 돌면서 보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인 기자는 "일부러 이동 시간을 짧게 주는 것도 있고, 잠도 부족해서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고 전했다. 편집국 선배 차원에서 몇십만 원의 지원은 있었지만 한달 평균 150만원 가량의 차비는 수습기자들이 감당하기에는 큰 돈이었다. 이밖에 수습기자들을 향한 인신공격적 발언을 자제하고, 하루빨리 수습기자 교육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당당한 수습기자들의 요구에 편집국 내부에서도 향후 수습기자 교육 제도를 바꾸기 위한 건설적인 제언으로 받아들였다.

요구서 발표 이후 경향신문 수습기자 교육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결론적으로 지난 4월 입사한 경향 50기 수습기자들은 49기의 '반란' 때문에 큰 혜택을 받고 있다.

반성문 쓰기는 일절 금지됐다. 허위 보고와 같은 큰 잘못을 했을 때는 공식적으로 1장 분량의 경위서를 받는 것으로 대체됐다. 내용 역시 반성의 의미보다 간략히 경위를 밝히는 쪽으로 바뀌었다. 인신공격성 발언도 자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수습기자 회식 자리에 시시때때로 선배 기자들의 강압적인 발언이 없었는지 체크하는 문화도 생겼다.

출입처를 돌면서 막무가내로 '정보를 알아보라'는 요구도 없어졌다. 취재 배경을 설명해주고, 수습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선배 기자들이 취합해 기사로 작성할 때에도 취재 의도와 뜻이 변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철저히 지키지고 있다.

따로 요구하지 않았던 수습기자들의 수면시간도 보장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하루 출입처를 돌고 마지막 보고 시간이 새벽 2시 30분 정도였는데, 12시로 앞당기고 아침 보고 시간도 새벽 6시 30분 정도로 늦춰줬다. 실질적인 수면 시간을 보장해주는 차원이다.

이해인 기자도 문제 제기 후 변화 양상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이 기자는 "보통 수습기자들이 불만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수습 기간 중에 말하려고 했지만 투정으로 보일 수 있어서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공신력 있는 노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실제로 이렇게 빨리 변하고 바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현재 사건사고팀에 배치돼 경향 50기 수습기자들을 교육시키는 입장에 서 있다. 선배 입장에서 지금은 수습기자 교육을 하고 있는 이 기자의 심경은 어떨까?

이 기자는 "수습 후배 기자들을 존중하고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이다. 실제 선배 입장에서 교육을 하다 보니 선배들이 이런 마음으로 시켰구나하는 부분도 있다"면서 "기자 조직문화자체가 인권을 딱히 존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조직문화가 바뀌는 것은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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