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100일을 넘기며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돌아가겠다며 파업현장을 떠난 배현진 아나운서가 뉴스에 전격 복귀했으나 지난 한 달 여 동안 평일 뉴스진행을 했던 계약직 앵커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뉴스데스크 화면에서 사라졌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 뿐 아니라 자신들이 어려울때 부랴부랴 계약직으로 채용했던 앵커에 대한 인간적 예의도 저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배현진 아나운서의 결정을 두고도 배 아나운서 보다는 그를 그동안 설득하고 앵커복귀를 거듭 제안했을 MBC 보직간부와 선배들이 더 큰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지난 11일 파업 103일을 맞아 “더 이상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며 앵커복귀를 선언하는 글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이날 밤 뉴스데스크부터 방송진행을 시작했다. 배 아나운서는 이날 밤 첫 뉴스에서 “뉴스앵커의 책임감과 신뢰 다시 단단히 쌓아가겠습니다”라고 밝히고 뉴스진행을 시작했다.

이를 본 나준영 MBC 카메라 기자(전 노조 부위원장)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시청자 이외의 어떤 것도 보지 않겠다’는 배 아나운서의 발언을 들어 “다 이겨가는 싸움의 끝을 조금 더 참지 못하고 튀어나간 배 아나운서의 결정을 보며 그녀가 외쳐온 공정방송은 무엇이었나를 다시 고민해본다”며 “자신의 앵커자리를 향한 애착을 ‘시청자를 위한 마음’으로 포장하고 그녀의 이기심을 합리화하고 있는건 아닌지”라고 안타까워했다.

나 기자는 또한 “그녀의 복귀 만큼이나 이런 결과를 위해 밤낮으로 회유했을, 그러나, 종국에는 배현진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할, 반드시 망쳐버리고 말 보직자들과 회사선배들의 모습에 화가 난다”고 성토했다.

선배 아나운서인 김완태 MBC 아나운서도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마지막까지 뒤통수를 치는구나. 혹시나 혹시나하고 믿었던 우리가 순진하고 바보였던건가..."라고 안타까워하면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MBC 아나운서들은 요즘 더 단단해졌고 더 똘똘 뭉쳐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아나운서는 "또 새로운 마음으로 모여 한 주를 계획하고 시작할텐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기에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견뎌내렵니다"라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지난 11일부터 배 아나운서의 평일 뉴스데스크 진행에 따라 그동안 뉴스 후반부에 단신뉴스 등의 진행을 해온 계약직 앵커는 아무 설명도 없이 TV 뉴스에서 사라진 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배 아나운서의 앵커복귀는 자신이 이날 오후 사내게시판에 입장을 발표했다는 글을 MBC가 보도자료를 통해 배포하고서 곧바로 이날 밤부터 뉴스에 투입되는등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또한 방송에서 자신이 어떤 과정에서 뉴스앵커에 복귀하게 됐으며, 그동안 해온 앵커는 어떻게 하게 됐다는 설명 일체가 없었다.

MBC는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총선 직전인 지난달 9일부터 뉴스데스크 후반부 단신뉴스 등에 대한 진행을 박보경 앵커가 맡게 했다. MBC는 당시 박 앵커가 뉴스 앵커를 맡게 됐다는 설명도 없었지만, 이번에 배현진 아나운서 복귀로 박 앵커가 빠지게 됐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다. 박 앵커는 MBC가 파업사태 이후 뽑아온 계약직 앵커 가운데 한 명이다.

이를 두고 나준영 기자는 이렇게 개탄했다.

“배현진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계약직 아나운서를 메인 앵커로 앉히며, 대대적으로 뉴스정상화를 홍보하다, 자신들이 선전하기 더 좋은 진짜 메인앵커가 돌아오자마자, 갈증을 채우고는 미련없이 휙 버려버리는 자판기의 음료수깡통처럼 아무런 배려도 시청자에 대한 사과도없이 계약직 앵커를 잘라버리는 모습을 보며, 김재철 사장이 임시방편으로 뽑은 계약직 사원들의 운명이 결국은 어떻게 될 건지 확신하게 된다. 그들의 적정성을 떠나, 최소한 인간적인 양심이 있다면, 자신들의 어려운 시기에 역할을 해준 이들에 대해 인간적인 예의는 지켜야하는게 아닌가?”

나 기자는 “지금의 ‘김재철 MBC’에 남은 자들의 모습은 이상적 방송관이나 철학이 아닌 그저 현재의 삶, 이익을 지켜내기 위한 야비한 생존본능의 끈끈한 연대감 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지”라며 “배현진의 복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변화와 ‘김재철MBC’를 위해 막장을 거듭하고 있는 ‘김재철키즈’들의 밑바닥을 확인하며, 이 파업을 더 열심히 하고, 반드시 이겨야하는 이유를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고 다짐했다.

이상호 MBC 기자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종교적 이유로 파업 100일을 앞두고 노조를 탈퇴한 뒤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기용된 양승은 아나운서와, 배현진 아나운서에 대해 “오늘날 그대들이 ‘앵무새’가 아니라 ‘언론인’이라 예우받는 건 ‘뱃속 아기의 미래를 위해 파업현장을 지킨다’는 방현주 같은 선배 아나운서들의 각성과 헌신 덕분임을 깨닫기 바랍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전종환 MBC 기자는 배 아나운서의 사내게시판 글에 대해 “파업을 접는 배현진 앵커의 변을 보고 처음엔 화가 나다 다시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라며 “‘혼란스러웠다’, ‘처음으로 선택을 한다’ 등의 문장들이 그랬다. 그녀는 애당초 앵커자리를 비우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기자는 ‘사실과 진실의 촘촘한 경계에서 혼란스러웠다’는 배 아나운서 글 대목에 대해 “(그런) 수사학적 발언은 화려한 언어로 본인의 명분을 쌓고자 함이 느껴져 못내 아쉽다”고 평했다. 이어 ‘시청자만 보고 가겠다’는 발언에 대해 그는 “앵커자리를 놓고 싶지 않던 그녀의 마음은 이 문장에서 그 절정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쟁이에게는 신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 시청자의 권위에 안겨 앵커석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커밍아웃의 후련함마저 느껴진다”고 촌평했다.

이와 함께 박소희 MBC 기자는 계약직 앵커가 조용히 하차한 사실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 “올라간 아나운서의 입장발표가 이기심을 포장한 거짓이라는 증거들을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제 트친님들께 더 하고 싶은 말은 사측이 소위 전문가라며 고용한 계약직 앵커들이 그들의 복귀와 함께 가차없이 잘려버렸단 사실”이라며 “사람을 일회용처럼 쓴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 트위터 글은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리트윗을 하면서 널리 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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