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3석, 괜찮은 성적이었다. 울산과 창원이라는 ‘노동자벨트’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건 뼈아픈 실책이었지만 야권연대로 통합진보당은 그 여느 때보다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관악을 후보 경선에서 ‘문자 논란’이 제기됐지만 그간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약자를 위한 정치와 진보정치가 보여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가 ‘4번’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 진보정치가, 통합진보당이 최대 위기에 빠졌다. 비례대표 경선에서 유령당원 투표, 대리 투표, 중복 투표 등 진보정당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을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린 건 당권파의 태도였다. 당 운영위원회는 ‘당대표 및 비례대표 총 사퇴’를 결의했지만 당권파는 “경선 부정 조사는 오류”라고 반발하며 책임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 동안 진보정당에 닥친 위기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색깔론적 공격에서 비롯됐다. 이번엔 다르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상식’을 깨트린 결과 일어난 사태다. 지켜보던 진보진영의 시선도 싸늘하기만 하다.

진보진영의 인사들을 인터뷰 요청에는 인색했다. ‘말을 보태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인 듯 했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의 맏형’인 통합진보당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 공개적으로 제기될 때 이번 사태가 ‘상식’의 선에서 제대로 해결될 것이란 견해도 있는 듯 했다. 서울대 조국 교수가 그런 케이스다.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조국 교수는 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선거 부정 사태에 대해 “진보정치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심각하게 바라봤다. 그는 “자신이 당권파라 할지라도 자신과 정당을 위해 당권파의 요구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리고 정당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번 일을 두고 “참담하다”는 심정을 거듭 드러냈다. 그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깨졌다”며 “다른 정당도 아니고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참담한 심정이다”고 했다.

조국 교수 역시 이번 비례대표 경선을 “총체적 부정부실선거”라고 규정지었다. 그는 “통합진보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하는데도 운영방식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당시의 서클주의적이다”며 “자기 정파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차적 하자는 별 거 아니라는 의식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부정 사태가 ‘자기 정파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또 “진보 내에서도 NL(민족해방)이든 PD(민중민주)든 이념과 정책, 비전이 맞는 이들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특정 세력이) 진보나 진보정당을 독식하고 독점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정파나 그룹들이 국회의원 혹은 간부를 뽑는 선거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사고가 과잉되면서 각종 불법이 일어난 것”이라며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 교수는 ‘부정선거였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당권파의 반발에 대해서는 “해당행위”라며 강경하게 비판했다. 그는 “선거관리를 당권파가 다 책임졌는데 갑자기 이번 사태에서 터져 나온 것이 허위인가”라며 “(조작여부를) 세세한 것을 따지는 것은 법률가적 사고다. 지금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들이 의구심을 느끼는 또 다른 부분은 책임을 통감하기보다 격렬하게 반발하는 당권파의 태도다. 그들은 사퇴 안건을 결의한 당 중앙운영위원회가 열린 지난 4일 회의장 출입문을 몸으로 막으며 회의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조 교수는 그 배경을 “당권파는 통합진보당을 자신들의 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당권을 가져도) 잘못을 하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당권을 넘겨주는데 이들은 당권을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집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당권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사고는 정당보다 정파를 우위에 두는 것”이라며 “통합진보당을 정당으로 보지 않고 정파의 당으로, 외피로 보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 “정당 투표에서 통합진보당 찍은 사람들이 이 꼴 보려고 4번을 택한 게 아니다. 수가 많다고 하여 계파의 이익이 당의 이익을 압도, 지배하는 것, 정당 바깥 진보적 대중의 눈을 외면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태 해결보다는 당권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처 입은 ‘진보의 아이콘’ 이정희 공동대표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심정을 드러냈다. 조 교수는 “대중적 정치인으로 더 클 수 있는 사람이고 기대가 컸다. NL이든 PD든 그만한 인물을 키워내기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진보정당은 첫째는 진보적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전체 국민의 지지도 받아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를 실망시켰다”며 “자신이 당권파라 할지라도 자신과 정당을 위해 당권파의 요구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리고 정당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해야 한다”며 지적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진상위 조사 결과에 대해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도, 초보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다”고 정면 반박한 바 있다.

조 교수는 이 대표를 비판하면서도 통합진보당이 어떻게든 이번 사태를 수습해서 다시 진보정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운영위원회 결정대로 신속하고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서 당대표를 새로 뽑아야 한다”고 했다.

당내 조직문화도 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운동권 문화가 비합법적 문화인데 이제는 비합법 활동이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 모든 정당 활동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번 사태에 “진보정치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보면서 “이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회의원 몇 석은 남겠지만 진보정치는 10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다. 향후 야권연대에서의 발언력도 매우 떨어질 것이고 그 이후 대선,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당세가 위축될 것”이라고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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